예수 선생은 얼마 전부터 조금씩 제자들에게 했던 말을 다시 간곡하게 했다.
“나는 곧 떠나지만 아버지께서 보내시는 성령이 오셔서, 그가 모든 것을 가르치고 그동안 내가 말한 것을 생각나게 해 줄 겁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나 내가 떠나는 것이 여러분에게 유익함은, 내가 떠나야 진리의 성령이 오시기 때문이지요.
또 여러분이 곧 다시 나를 보리니 여러분의 마음이 기쁠 것이고 그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께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갑니다.
세상에서는 여러분이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세요.
내가 세상을 이기었습니다.”
선생은 이 말을 마치고 고개를 위로 들며 기도를 시작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들을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려 하시는데, 영생은 곧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낸 줄도 믿었습니다.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입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창문으로 다시 뿌연 달빛이 비쳐 들어오기 시작했고 선생의 목소리가 계속되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입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모두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여 주옵소서.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심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이 알게 하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선생의 기도가 조용히 끝나며, 다락방에는 촛불이 거의 다 타들어 가고 있었다.
제자들은 예수 선생의 기도도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오늘 밤 그들이 모두 선생을 떠나고 배신한다는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또 어떤 제자들은 아무래도 아주 안 좋은 일이 곧 벌어질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나중에 선생이 보낸 누가 와서 어디를 가든 그건 나중 문제다.
“자, 이제 나갈까요? 오늘 밤 우리는 감람산에서 기도할 거예요.”
선생이 일어나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제자들도 말없이 따라갔다.
1층에는 벌써 사람들이 거의 다 빠져나갔고 대부분 여성 제자만 남아 있었다.
사라가 예수 선생과 눈이 살짝 마주쳤다.
별 특색 없고 피곤해 보이는 사람이 눈길을 끌 만한 광채도 없이 주위를 돌아보고 있었다.
이 사람이 예수 선생이구나, 사라가 선생에게 다가갔다.
‘바라바 님을 구해 주세요. 예수 선생님’이라는 말을 막 하려는데 바로 뒤에서 요한이 먼저 그녀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사라 님 오셨군요.
지금 우리 모두 감람산에 가서 밤새 기도할 거예요.
같이 가실래요?”
“저도 가고 싶은데 루브리아 언니 눈이 안 좋아서요….
요한 님이 바라바 님과 루브리아 언니에 대해서도 선생님께 기도 부탁드려 주세요.
루브리아 언니의 눈이 아직 안 나았어요.”
예수 선생이 앞서 나가다 돌아보며, 사라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얘기를 들은 듯했다.
그녀를 바라보는 선생의 큰 눈이 세상의 고뇌를 다 짊어진 듯 보였다.
이상하게 마음이 평안해지며 그가 사라의 간구를 모두 들어줄 것 같았다.
선생이 다시 발길을 돌려 밖으로 향했다.
“제가 따라가 볼게요. 저는 어차피 감람산에서 자니까요.”
네리가 사라와 요한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고 이번에는 이 집의 젊은 청년 마가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급히 베드로를 따라서 그들과 같이 나갔다.
실로암을 돌아서 가야바의 관저를 지나는 예루살렘 시내의 밤길은 밝은 달빛으로 어둡지 않았고 누군가의 입에서 찬미가가 나오자 모두 따라 불렀다.
오랜만에 배불리 먹은 유월절 음식과 선선한 밤공기가 다시 그들을 기분 좋게 만들었다.
요한은 선생이 조금 전 하신 말씀과 기도를 속으로 외우면서 그 뜻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잘 알 수 없는 대목은 큰 환난을 앞두고 선생과 아버지가 서로 영화롭게 하며 영광을 받는다는 것이다.
예수 선생은 당신을 인자라고 했다.
사람이라는 역할을 하는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다.
그는 사람의 아들로서 모든 연기를 거의 다 마쳤고 이제 마지막 아버지께 돌아가는 장면만 남겨 두었다.
인자의 연기에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셨는데, 선생이 하나님의 근본 성품을 나타냄으로써 영광을 받으셨기 때문이리라.
또 생각나는 것은 우리도 선생이 하는 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리라는 말씀인데 그렇다면 우리도 모두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성품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면 그분께서도 우리에게 영광을 주시는데, 그것은 우리를 하나님께 가까이 불러들이는 일이다.
하나님과 둘이 아닌 것 이상의 영광과 기쁨이 어디 있겠는가.
오래 집을 떠났다 돌아가는 기쁨을 아버지가 주시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예수 선생은 우리와 작별을 하실 것이고, 그 후의 말씀은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네리의 그림자가 뒤에서 요한을 따라오고 있었고, 헤롯 왕궁 근처를 지나니 창을 든 성전 경비대의 모습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찬미가의 소리가 끊어지면서 그들의 발걸음은 성전의 남쪽 벽을 지나 키드론 계곡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 계곡을 지나면 감람산으로 올라가게 된다.
뒤에 오던 일행 중 몇 사람이 수군거리더니 베다니로 가는 오른쪽 길로 빠져나갔다.
그중 제자들도 두세 명 있었는데 술을 많이 해서 졸리기도 하고, 오늘 밤 아무래도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 일단 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예수 선생 일행은 키드론 골짜기를 건너서 감람산 북서쪽의 작은 동산인 게세마네로 천천히 올라갔다.
‘게세마네’라는 이름은 ‘기름을 짜는 곳’이란 뜻인데 옛날에 올리브 기름을 많이 생산해서 그렇게 불리었다.
그들은 비교적 평평한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올리브 나무숲 사이로, 달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예루살렘 성전이 내려다보였다.
이미 밤이 깊어 유월절을 위해 모여든 순례자들은 여기저기에서 잠자리에 들었고, 성전의 높은 성벽만이 어둠 속에 거무스름하게 솟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