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의 작은 창문으로 달빛이 허옇게 들어와 예수 선생의 얼굴을 비추었다.
제자들은 오랜만에 푸짐한 식사를 맘껏 즐기며 향기 좋은 포도주도 여러 잔 했다.
배가 부르자 그들은 선생이 곧 무슨 말을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음식과 술이 거의 다 없어진 후 자연스레 식탁 주위가 조용해지며 선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내가 주는 이 빵을 먹어요. 이것은 내 살입니다.”
선생은 자기 앞에 그대로 남아 있는 빵을 집어, 제자들에게 조금씩 나누어 주었다.
또 가득 찬 그의 포도주잔을 한 입씩 돌려 마시게 했다.
“이것을 마셔요. 이것은 내 피입니다.”
다섯 갈래 촛대의 촛불이 흔들렸다.
제자들은 무슨 소리인지 모르고 일단 마셨고 분위기가 엄숙해졌다.
잠시 후 요한이 선생의 가슴에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선생님, 이제 곧 우리를 떠나시나요?
그래서 살과 피를 우리에게 주신 거군요.”
술을 몇 잔 마신 요한의 머릿속 생각이 그대로 입 밖으로 나왔다.
역시 모든 것은 잘 진행되고 있었다.
유대인의 ‘욤키프림’이라는 속죄의 날에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처럼, 요한은 선생이 당신의 몸을 드리는 방식으로 제자들과 이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살과 피를 제자들이 먹으면 선생의 정신과 가르침이 제자들에게 남아 있을 것이다.
참으로 예수 선생다운 마지막 인사법이었다.
이때 예수 선생의 눈이 유다와 마주쳤다.
유다는 들을 준비가 되었고, 선생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내가 진실로 이르노니 여러분 중 한 사람이 나를 팔 것이오.”
갑자기 엉뚱한 말에 제자들 모두 당황하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선생이 떡 한 조각을 유다에게 적셔 주며 ‘어서 할 일을 하라’고 하셨는데 다른 제자들은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드디어 선생의 지시가 떨어졌다.
유다는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돌층계를 다 내려가기도 전에 1층에 있는 사람들의 집중된 시선을 느꼈다.
몇 사람이 유다에게 몰려왔다.
“유다님, 어디 가시는 거예요?
좋은 포도주 여기 좀 남았는데 더 드릴까요?”
수산나의 질문에 유다가 고개를 저었다.
술 냄새를 풍기며 굵은 목소리로 엘리아셀이 물었다.
“지금 2층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지요?
예수 선생이 몸이 하얗게 변해서 메시아라는 선언을 하거나, 아니면 유대의 왕으로서 하늘의 군대들을 동원할 계획이 발표되지 않았나요?”
모든 사람의 시선이 유다의 입에 꽂혔다.
잠시 후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발을 씻어 주었어요.”
무슨 소리인지 선뜻 알아듣는 사람이 없었다.
“선생님이 우리의 발을 씻어 주었어요.”
유다가 중얼거리듯 다시 한 번 말하고는 멍하니 서 있는 사람들을 가르며 문밖으로 나갔다.
사방이 어두웠고 보름달도 구름에 가려 있었다.
유다는 침착하게 긴 숨을 내쉬고, 할 일을 하기 위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가 나간 후 집안의 분위기가 술렁거렸다.
여성 제자들은 수군거리며 이 시간에 갑자기 유다가 왜 나갔는지, 혹시 명절에 우리가 같이 쓸 물건을 사러 갔는지, 혹은 가난한 누구에게 무엇을 주러 갔는지, 한마디씩 했다.
예수 선생에게 기대를 걸고 베다니에서부터 따라온 사람들과 엘리아셀 일행은 다시 한 번 실망과 환멸을 느꼈다.
예전에 갈릴리 호숫가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축복하는 어이없는 말을 하더니, 오늘은 겨우 하는 일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고 있다니.
나사렛 예수라는 사람에게 걸었던 기대가 증오심으로 바뀌었다.
“나사렛 예수가 끝까지 우리를 속였네. 이렇게 무능하고 한심한 사람인 것을 이제 확실히 알았소.”
엘리아셀이 여자들에게 내뱉듯 말하고, 같이 온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 버렸다.
2층 다락방에서는 유다가 일어나 내려간 후 선생의 말이 계속되고 있었다.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어요.
내가 아직 잠시 여러분과 함께 있겠으나 곧 떠나겠고, 내가 가는 곳에 여러분은 올 수 없어요.
이제 새 계명을 여러분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세요.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사람들이 여러분이 바로 내 제자인 줄 알 거예요.”
“선생님, 어디로 가시나요?”
베드로가 붉은 얼굴을 앞으로 내밀며 물었다.
“여러분은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고 모두 나를 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갈릴리로 먼저 갈 거예요.”
“다 버릴지라도 나는 절대 그리하지 않겠습니다.”
베드로가 흥분해 눈이 커졌다.
“베드로여, 당신은 오늘 이 밤, 닭이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부인할 거예요.”
너무 충격적인 말에 분위기가 썰렁해졌고 제자들의 얼굴이 모두 굳어졌다.
선생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여러분은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요.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세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 거예요.”
제자들은 슬슬 술이 깨기 시작했다.
즐거운 축제 만찬에 선생이 하는 말씀이 계속 심상치 않았다.
유다 옆에 앉은 도마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선생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모르는데 그 길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사람이 없어요.”
엄청난 말에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선생은 길을 물어보는 질문에 당신이 길이라고 했다.
무슨 뜻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선생의 몸에 지도를 새긴 문신이 있지는 않을 거고, 선생이 다시 올 때 그를 따르면 아버지 집에 갈 수 있다는 의미인 듯했다.
또 진리요 생명이라고도 하셨는데 아버지께 가는 길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
여하튼 아버지의 집은 대단히 큰 집일 텐데 문제는 그 집이 아무래도 이 땅에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이번에는 빌립이 용기를 내어 예수께 물었다.
“선생님,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세요. 그러면 참 좋겠습니다.”
선생은 안타까운 듯 그를 바라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나를 본 자는 이미 아버지를 보았어요.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어요.
그렇지 못하겠거든 내가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도록 해요.”
선생의 말은 파격적이었다.
그가 아버지와 하나라는 말은 그동안도 몇 번 들었지만,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돌멩이 세례를 받을 뻔했지만, 그것을 못 믿는다면 선생이 행한 일을 보고 믿으라는 말은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이 악한 시대는 기적만을 찾는다고 꾸짖은 선생이 아니던가.
요한은 선생이 혹시 술에 취했는지 살짝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았다.
그의 얼굴은 해쓱했고 입술은 말라 있었다.
곧 선생의 입에서 나온 말은 더욱 놀라웠다.
모두 그를 쳐다보게 되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여러분께 말합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할 거예요.”
그 말을 들은 요한은 이상하게 선생과 그가 둘이 아닌 것처럼 느꼈다.
무언가 가슴이 뜨거워지며 아버지와 선생이 하나라는 말도 이해가 되었다.
선생이 제자들에게 걱정도 두려움도 없는 평안한 마음을 심어 주고 있다.
요한은 옆에 있는 예수 선생의 사랑이 가슴에 뜨겁게 전달됨을 느끼며 이번에는 속으로 말을 삼켰다.
‘선생님, 선생님은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된 줄 아시면서도 세상에 있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끝까지 사랑하시는군요’.
요한의 눈시울이 붉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