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 가낫세 변호사의 사무실은 예루살렘 성전만큼 붐볐다.
크고 둥근 은귀걸이를 한 여비서가 살로메와 요한을 알아보았다.
“지금 기다리는 손님들이 너무 많아요.
죄송하지만, 유월절 축제 기간 끝나고 오시면 안 될까요?”
“오늘 중도금을 가지고 왔는데요?”
여비서가 곧바로 두 사람을 변호사의 방으로 안내했다.
가낫세가 그들을 반갑게 맞았고 요한이 은전 주머니를 꺼내며 조심스레 말했다.
“그럴 리는 없지만 일이 잘 안되면 중도금은 돌려주시는 거지요?”
“네, 물론이지요. 계약금은 빼고 중도금은 돌려드립니다.”
바빠서인지 가낫세의 말이 평소보다 빨랐다.
사무실을 나오면서 살로메가 말했다.
“중도금 문제는 문서로 써 달라고 해야 했는데…. 괜찮겠지?”
“네, 우리 두 사람이 같이 들었는데요, 뭐.”
저녁 만찬을 할 장소로 천천히 걸어가던 살로메 옆으로 눈에 익은 마차가 지나가며 시온 호텔로 들어갔다.
“아, 저 마차는 어제 베다니에 왔던 그 마차인데…. 잠깐 들어가 보자.
눈이 어떤지 걱정도 되고….”
마차에서 내리는 루브리아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사라가 그녀를 부축하고 있었다.
“어디 다녀오시나요? 눈은 다 나으셨지요?”
살로메가 물었지만 두 사람은 아무 대답 없이 로비로 들어갔다.
사라가 따라 들어온 요한에게 다급한 상황을 설명했다.
눈은 차도가 없고 바라바의 사형이 내일 집행된다는 말에 헤롯 궁으로 왕비를 찾아갔는데, 왕비님이 성전 시찰 중이라 못 만나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루브리아는 로비 의자에 기대었는데 곧 쓰러질 것 같아 보였고 사라도 넋이 나간 듯했다.
요한은 지난주에 바로 이곳에서 바라바 대신 잡혔던 생각이 났다.
“걱정이 많이 되겠어요.
그래도 유월절에는 사형수 중 한 사람을 특사로 풀어 주는 관행이 있으니까 그 목록 맨 위에 있으면 살 수도 있어요.”
“그 목록은 누가 정하나요?”
요한의 말에 사라가 물었다.
“빌라도 총독이지요. 직접 하지는 않겠지만…”
“그래서 왕비님이 총독 부인께 말씀해 주기로 했는데 뭔가 잘못된 것 같아요.”
사라의 목소리가 맥이 풀려 있었다.
“빌라도 총독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요.” 살로메가 말했다.
“어떻게요?” 사라와 루브리아가 동시에 말했고, 말들이 공중에서 부딪쳤다.
“예수 선생이 가르쳐 주었어요.
우리가 겨자씨만 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움직일 수 있다고요.
총독의 마음은 그보다 쉽겠지요.”
“그러니까 기도하면 된다는 건가요?”
“네, 지금 안토니아 탑에 갇혀 있는 사형수가 여러 명 있겠지만, 특사 목록의 맨 위로 올라오는 건 믿음만 있으면 기도로 될 거예요.”
“내일 사형이 집행될 예정인데 늦지 않았을까요?”
“그러니까 지금부터 기도해야지요…. 예수 선생께 기도 부탁을 하면 참 좋은데….”
살로메가 요한을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오늘 만찬 전에 기회를 봐서 말씀드려 볼게요.
어제 오신 분인데 눈도 아직 완쾌되지 않으셨고….”
“제 눈은 괜찮으니까 사형 집행만 안 되게 기도해 주세요.”
루브리아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아, 오늘 저녁 만찬은 여기서 가까운 곳에서 하니까 나중에 오시면 직접 선생님을 뵐 수도 있겠네요.
가야바 공관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이층집이 하나 있어요.
근처에 그런 집이 하나뿐이니까 쉽게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로비에 사람들이 점점 더 북적거렸다.
루브리아가 왼눈이 불편한 듯 손바닥으로 가리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예수탄생 대리석 석판, 낙소스 그리스 AD 4세기
시온 호텔을 나와 만찬장으로 향하던 살로메가 넌지시 말했다.
“근데 정말 믿음이 있으면 산이 옮겨질까?
아까는 그분들이 너무 낙심해서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을 했어.”
요한이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저도 어떤 때는 잘 모르겠어요. 선생님의 말씀이 비유가 많으니까요.”
“모세는 바다도 갈랐는데 산을 움직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
“네, 사실 선생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무슨 일을 못 하시겠어요.”
“음, 그러니까 예수 선생이 하나님의 외아들, 독생자라고 믿는 거지?”
요한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한번 보았다.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외아들이라기보다는 하나님과 같은 성품을 가진 아들이겠지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살다가 하나님 아버지에게 돌아가는 아들.”
“그렇구나. 그런 아들은 예수 선생 외에는 없겠지?”
“그래서 마태 님은 선생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났다고 기록했다네요.
마리아 이모에게 물어보면 확실히 알 수 있을 텐데.”
살로메가 무슨 말을 하려는데 뒤에서 약간 술에 취한 듯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요한 님, 만찬장에 가는 길이지요?”
엘리아셀이 식당 종업원 대여섯 명을 데리고 다가오고 있었다.
“네, 어떻게 아셨나요?”
“흐흐, 저야 예수 선생의 일정을 다 알고 있지요.
근데 오늘 무슨 중대 발표가 있나 봐요.
갑자기 왜 시내에서 모이지요?”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요한이 조금 퉁명스럽게 말했다.
“선생이 사랑하는 제자가 모르면 누가 아시나.
좋은 일 있을 때 나도 같이 옆에 있어야지요.
그럼 나중에 만나요.”
엘리아셀이 휘파람을 불며 요한을 앞서 나갔다.
“오늘 정말 무슨 발표가 있는 거니?
예수 선생의 후계자 서열이랄지….”
살로메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아니에요. 지금 선생님의 마음이 얼마나 힘든데요….
근데 저 사람이 만찬 장소를 어떻게 알았을까.”
“글쎄 말이다. 야고보가 집에 스파이가 많다더니 그런가 봐.”
헤롯 궁을 오른쪽으로 보며 가야바의 관저를 지났다.
거리에는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만찬을 위한 2층 저택이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