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유월절을 성전에서 보내려는 마지막 인파가 예루살렘 가는 길을 메웠다.
사라는 천천히 걸으며 네리에게 독수리 깃발이 잘못된 얘기를 해 주고 바구니에서 대추야자 열매 큰 것 하나를 꺼내 까 주었다.
옆에서 스치듯 같이 걷는 순례객들이 부러운 눈으로 네리를 바라보았다.
네리가 후다닥 열매를 다 먹은 후 말했다.
“아까 그분이 살로메 님이지요?
“맞아요. 어떻게 알았어요?”
“제 고향이 나사렛이잖아요.
저도 잘 생각이 안 났는데 야고보 님 말씀을 듣고 기억났어요.
어릴 때 몇 번 만난 동네 형이거든요.”
네리가 저절로 대추야자에 손을 뻗었다. 사라가 얼른 하나 더 까 주었다.
길이 붐비기는 했지만, 어제보다는 인파가 덜했다.
벌써 거의 다 와 간다.
어제는 마차를 탔지만, 오늘은 걸어서 그런 느낌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사라 님, 저 왼쪽 낮은 언덕이 감람산 입구인데 안 바쁘시면 저의 숙소에 잠깐 들렀다 가시지요.
아몬 님이나 헤스론 님이 반가워하실 거예요.”
“아, 그래요. 좋은 생각이네요.”
두 사람이 걸음을 재촉했다.
이름 그대로 감람나무가 우거진 숲을 조금 지나서 올라가니 순례객들이 천막을 치고 야영하는 평편한 기슭이 나왔다.
지대가 조금 높아서 그런지 시원한 바람이 사라의 이마를 스쳤다.
사라는 네리를 따라 구석에 있는 작은 천막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몬과 헤스론이 고개를 숙이고 식사하는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그들도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아니, 이게 누구야.”
헤스론이 벌떡 일어나서 다가와 사라를 포옹했다.
그의 얼굴이 많이 말랐다.
“잘 왔네. 이리 앉아서 무교병이라도 좀 먹지.”
아몬이 옆자리를 치우며 말했다.
사라가 바구니 속에서 대추야자를 한 움큼 꺼내 놓고 앉았다.
“아니, 어떻게 된 거야?
어제는 바라바가 나올 줄 알았는데…”
사라가 그동안 있었던 일을 아몬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의 얼굴이 어두워지면서 걱정스레 말했다.
“그럼 그 소문이 설마 사실일까….
조금 전 시내에 있는 동료 한 사람이 와서 말했는데, 곧 바라바의 사형이 집행될 거라고 로마 병사에게 들었다더군.”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어요. 루브리아 아가씨가 왕비님께 단단히 부탁했는데요…”
“아무래도 안 되겠다.
우리 동료가 지금 이백 명은 족히 되니까 그런 사태가 일어난다면 마지막 방법으로 감옥을 일시에 기습해서 바라바를 빼 와야지.”
이렇게 말하는 헤스론의 얼굴이 약간 상기되었다.
“응, 모레는 안식일이니까 그런 집행은 없을 거고, 그 다음 주도 축제 기간이니까, 한다면 내일인가...”
아몬의 말을 들으니 사라의 가슴이 다시 쿵쿵 뛰기 시작했다.
“이번에 그 마나헴 놈이 또 근처에 보이면 겸사겸사 완전히 끝장을 내야지.”
“아, 헤스론 오빠 상처는 좀 어때요?”
“마나헴이 단도로 찌른 옆구리는 피가 많이 났었지만, 다 아물었어.
검은 황소 놈에게 붙잡힌 허리가 아직도 좀 뻐근한데, 그놈도 목이 성치는 않을 거야.”
“이 대추야자 다 드시고 힘내세요.
나는 걱정이 돼서 이제 호텔로 돌아가서 루브리아 언니께 알려야겠어요.”
사라가 얼른 일어나니 네리도 따라 일어났다.
“그래, 그 여자가 힘을 좀 써야 할 텐데…. 눈은 다 나았니?” 아몬이 물었다.
“아니, 아직요.”
“음, 여하튼 내일만 일단 잘 넘기면 좋겠는데…. 그럼 네리가 같이 가서 우리에게 연락할 일 있으면 알려 줘.”
사라가 두 사람에게 눈인사를 건네고 걸음을 재촉했다.
오랜만에 편안하게 늦잠을 잔 누보는 기분이 상쾌했다.
그동안 계속 긴장해서인지 눈을 떠 보니 벌써 점심때가 다 된 듯했다.
오반을 잡아 돈을 되찾은 후 유리와 결혼을 하면, 매일 아침 아름다운 그녀가 바로 눈앞에 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짜릿하고 절로 입이 벌어졌다.
문이 살며시 열리며 엄마가 젖은 옷들을 들고 들어왔다.
“세상모르고 자더라.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으면…”
“정말 오랜만에 잘 잤네요. 빨래하고 오셨나 봐요.”
누보가 옷들을 받았다.
“그래, 방에 햇빛이 잘 드니까 잘 펴서 널어 놔, 한나절이면 다 마를 거야.”
“네, 널어 놓고 점심 먹으러 내려가지요. 시장하시겠어요.”
식당에 내려가니 유리와 유리 엄마가 벌써 내려와 앉아 있었다.
유리도 잠을 잘 잤는지 얼굴이 뽀얗고 생기가 넘쳐 보였다.
음식을 간단히 시키고 누보가 말했다.
“이제 내일이면 우리가 찾는 오반을 잡을 수 있을 거예요.
신입 교인 교육을 한다니까 틀림없이 나오겠지요.”
“그래, 그래야지…. 근데 그동안 들어 보니까 오반이라는 사람이 만만치 않은 것 같더라.
감쪽같이 여러 사람을 속이는 것을 보면….”
누보의 엄마가 걱정되는 듯 주위를 돌아보며 말했다.
“네, 어머니 말씀이 맞아요.
그리고 오반의 사촌 동생도 같이 있을 거니까 조심해야지요.”
유리가 얼른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래, 우리 유리 아가씨가 총명해서 내가 마음이 놓여요.”
엄마의 칭찬에 누보의 입이 귀에 걸렸다.
“잘 쉬셨네요. 별일 없으셨지요?”
여로암이 들어오면서 인사를 하는데 뒤에 이쁘장한 아가씨가 같이 왔다.
어디서 분명히 본 여자인데 언뜻 생각이 안 났다.
“안녕하세요? 어제 뵈었지요.”
그녀가 누보와 유리에게 상냥하게 인사를 건넸다.
미트라교 성전에 들어갈 때 몸을 수색하던 여자였다.
그때는 삼엄한 분위기여서 잘 몰랐는데 오늘 보니 웃을 때 보조개가 생기며 통통한 몸매에 상당히 미인이었다.
여로암이 소개했다.
“미트라교 성전 보안요원 사벳인데 요 앞에서 우연히 만나서 잠깐 같이 들어왔어요.”
“잘하셨어요. 여기 앉으세요.”
유리가 말하자 그녀가 자리에 앉으며 어른들께 인사를 했다.
“사벳 님, 안 바쁘시면 여기서 같이 식사하시지요.”
누보가 말했다.
“아니에요. 어제 만난 분들이 계신다고 해서 잠깐 인사만 하러 들어왔어요.”
사양하는 그녀의 태도가 다소곳하고 여성스러웠다.
“그럼 내일이 유월절인데 달걀이라도 한 개 드시고 가세요.”
누보가 주방에서 나오는 두스를 불러 달걀을 시켰다.
“내일 신입 교인 교육에는 전부 몇 명쯤 나오나요?”
유리가 넌지시 물었다.
“아마 일고여덟 명 정도일 거예요.
한 달에 두 번 하는데 요즘 신입 교인이 예전처럼 많지는 않네요.
내일은 어제 온 남자 두 분 빼고는 모두 여자들이에요.”
“저하고 같이 갔던 남자분 말고는 모두 여자라고요?”
누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네, 사마리아는 성인 여자가 남자보다 훨씬 많아요.
유대와 치른 전쟁에서 남자들이 많이 죽었고 또 일할 수 있는 남자들은 돈을 벌러 외부로 빠져나갔기 때문이지요.”
누보의 얼굴이 굳어지며 유리와 시선이 마주쳤다.
오반이 여기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