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는 마차 안에서 바라바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았다.
마차꾼이 나발에 대해 한 말이 은근히 신경이 쓰였고 바라바도 그런 표정이었다.
일단 안토니아 요새에 있는 로벤과 동료들이 풀려난 후에 이야기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바라바 오빠도 장래 문제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사라가 보기에 아직 그는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즉 이 땅에서 계속 열성단을 이끌어 나갈지 아니면 전혀 미래를 알 수 없는 로마로 가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지 망설이고 있는 듯했다.
물론 로마로 간다 해도 억지로 따라갈 수는 있겠으나, 이미 그것은 바라바 오빠가 루브리아 언니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뜻이리라.
누보는 흔쾌히 변호사비와 보석금을 지원해 주었다.
놀라운 사실은 설마 했던 마나헴과 우르소가 바라바와 하루 사이로 세겜에 왔다가 간 것이다.
누보와 유리도 발견되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바라바 오빠의 눈에 띄었다면 큰 충돌이 있었을 텐데 묘하게 비껴갔다.
마나헴도 운이 좋았던 것이다.
사라는 공원 벤치에서 땅을 바라보며 말이 없던 미사엘의 모습이 떠올랐으나 곧 고개를 흔들어 지워 버렸다.
아빠가 살아계셨으면 지금 자신에게 어떤 조언을 하셨을지 궁금했고 너무나 아빠가 그리웠다.
나병 모녀의 얼굴도 떠올랐다.
아빠의 장례식에도 왔었다는 한나의 슬픈 미소가 누구를 닮았는지 갑자기 생각났다.
나사렛 예수가 마가의 집에서 만찬을 끝내고 나가면서 사라를 돌아보았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혹시 부활한 예수 선생이 한나의 마음속으로 들어왔는지도 모른다.
네리도 엠마오 가는 길에서 만난 행인이 바로 예수 선생이었다고 확신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상한 것은 선생의 제자 중 도마는 선생이 생전의 모습 그대로 나타났는데도 그를 만져보고 상처에 손을 넣어보고서야 확신했다고 한다.
너무 놀라운 일이 생기면 믿기가 어렵지만 그래도 일단 자신의 눈을 믿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그런데 또 인간의 마음은, 시간이 지나면 그때의 감격이 희미해지고 그게 사실이었나 아니면 환상을 보았나 의심하게도 되는 것이다.
어떤 사실이나 광경을 처음 직접 본 사람보다, 소문을 듣고 그 소문이 전파될 때 더 많은 사람이 확신을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라는 막달라 마리아를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자신의 무덤에서 막 살아난 선생을 가장 먼저 만난 여인이 아닌가.
그녀도 처음에는 그분이 선생인지 몰랐다는데 지금 고향 막달라에 돌아와 있다고 한다.
베다니에서 인사는 한 듯한데 여러 사람과 섞여 있어서 잘 기억나지 않았다.
거기 있던 사람 중에는 선생의 친동생인 야고보의 인상이 제일 뚜렷했다.
그는 바로 위의 형인 선생이 메시아라는 것을 별로 인정하지 않은 듯했고, 기회가 있으면 큰 사고가 나기 전 형을 갈릴리로 데려가야 한다는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
그들의 어머니인 마리아 님도 마찬가지였다.
큰 사고가 나긴 났는데 그 후 상황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네리의 말에 의하면 예수 선생이 부활했다고 믿는 제자들은 그의 친동생인 야고보 님을 자연스럽게 그들의 다음 지도자로 세웠다고 한다.
선생의 사촌인 요한 님도 덩달아 위상이 올라갔을 것이다.
사라는 곧 예루살렘에 가서 요한 님을 먼저 찾아갈 생각이다.
가낫세 변호사는 워낙 바빠서 요한 님처럼 얼마 전 고객이었던 사람의 소개장이 없으면 만나기도 어렵다고 한다.
더욱이 바라바 오빠와 같이 갈 텐데 고객의 신분을 캐묻기 시작하면 곤란해질 수도 있다.
“사라 님, 내려와서 식사하세요.”
두스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렸다.
“네, 곧 갈게요.”
구석 식탁에 누보와 요남이 앉아 있는데 안색이 별로 밝지 않았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는 듯했다.
사라가 그들의 앞에 앉자 누보가 요남을 슬쩍 한 번 바라본 후 말했다.
“나오미 양을 찾기 어렵게 되었어요.
조금 전 사벳이 왔다 갔는데 나오미가 한 달 전 카멜 수용소에서 풀려났대요.
이세벨 부교주가 수용소장에게 알아본 정보니까 틀림없겠지요.”
“어머, 그럼 잘된 거 아닌가요?”
그녀의 말에 두 사람 다 얼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요남이 앞에 있는 술잔에 든 백포도주를 한입에 삼킨 후 침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떤 남자가 보석금을 내고 석방했는데 그 남자가 애인이래요.”
뭐라 할 말이 없어진 사라가 잠시 후 대화를 이었다.
“요남 씨가 연락을 못한 지 얼마나 되었나요?”
“한 2년 되었지요. 안토니아 감옥에 갇혀 있었으니까.”
“그 남자가 애인이라는 건 어떻게 알았나요?”
요남이 술잔을 다시 들어 마시는데 술은 거의 들어 있지 않았다.
누보가 설명했다.
“보석금을 낸 사람의 신원이 적혀 있는 서류에 그렇게 돼 있고, 출소 후 계획에 의하면 예루살렘에 가서 곧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래요.”
사라가 더 이상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바라바가 내려와 식탁에 앉았다.
누보가 사라에게 한 말을 그대로 반복했다.
요남의 얼굴이 분노와 허탈을 오갔다.
“나오미가 무슨 말 못 할 사연이 있는 거 아닐까…”
바라바가 위로의 말 비슷하게 한마디 했다.
“그래도 이럴 수는 없지요. 분명히 기다린다고 약속했는데…”
바라바를 보니까 감정이 복받치는지 울먹이는 소리로 계속 말했다.
“안토니아 감옥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기도를 했는데…."
모두 고개를 숙이고 아무 대답을 못 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눈치챈 두스가 포도주 한 병을 아무 말 없이 더 가져왔다.
“바라바 님께 죄송해요.
어렵게 여기까지 같이 오셨는데 별 도움도 못 돼 드리고….”
“천만에…. 그런 생각할 거 없어.
그런데 그게 사실이라면 누가 나오미를 데리고 나갔는지 전혀 짐작 가는 사람이 없는가?”
“네, 전혀 없어요. 저는 지금도 믿어지지 않아요.”
“누군지는 모르지만 사마리아 사람은 아니겠지요.
예루살렘에서 결혼식 한다면 어쩌면 지금쯤 예루살렘에 있겠네요.”
누보가 조심스레 계속 말했다.
“그리고 상당히 부자겠지요. 막대한 보석금을 낼 정도면….
그런데 수용소장이 이름은 알려주지 않았대요. 규정상 절대 안 된다면서….”
“저는 여하튼 나오미의 얼굴을 직접 보고 그녀의 말을 듣기 전에는 포기할 수 없어요.”
요남이 붉은 포도주를 빈 잔에 가득 따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