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잔과 누보는 식당 구석 테이블에서 이세벨을 기다리고 있었다.
식당 주인이 온다는 소리에 두스가 바닥을 청소하고 테이블 정리에 신경을 쓰며 분주히 움직였다.
카잔은 얼마 전 이 자리에서 올리브 빵을 맛있게 먹던 미리암의 얼굴이 떠올랐다.
파란 리본을 달고 귀엽게 웃는 그녀의 모습, 눈을 감고 미리암을 생각하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데 바로 그 미리암의 모습이 실제로 눈앞에 나타났다.
눈을 다시 한번 감았다 떠보니 그녀의 뒤로 이세벨과 사벳이 걸어오고 있었다.
카잔과 누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오세요. 부 교주님,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는 카잔을 보고 이세벨이 반가워했다.
“아, 바로 이분이시구나!
얼마 전에 새로 등록하시면서 청약수 드셨지요?”
“네, 대표로 제가 마셨지요. 하하.”
모두 자리에 앉자 두스가 얼른 와서 주문을 받았다.
미리암은 올리브 빵을 시켰고 이세벨은 가격과 상관없이 가장 싱싱한 재료로 주방에서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음식을 가져오라고 했다.
“우리 미트라교에 큰 헌금을 하실 분인데 식사라도 제가 잘 대접해야지요.
얘는 제 딸이에요.
오늘 여기서 식사한다고 했더니 자기도 오고 싶다고 해서 데리고 왔어요.”
‘미리암은 내 딸인데요’라는 말이 카잔의 입안에서 굴렀다.
그녀는 카잔을 바라보며 고개만 까딱 숙였고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지난번 사벳과 나와서 식사한 일은 이세벨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다.
“네, 아주 이쁜 따님이네요.”
카잔의 말에 미리암의 뺨이 살짝 발개졌다.
“우리 아이가 공부도 잘해요. 사벳 선생이 잘 가르쳐 준 덕분이지요.
그런데 이분도 그날 같이 등록하신 분 아닌가요?”
이세벨의 파란 눈이 누보를 보며 물었다.
“네, 맞습니다. 정말 기억력이 좋으시네요.”
그런데 두 분이 이렇게 헌금을 하신다니 대단히 감사합니다만, 어떻게 신도가 되자마자 그런 결심을 하셨나요?”
이세벨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카잔이 콧수염을 한 번 쓰다듬은 후 천천히 말했다.
“지난번 대강당 집회에서 교주님 말씀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무장하지 않은 선지자는 반드시 처형당한다’라고 하셨지요.
올해 예산이 조금 부족해서 수비대 월급과 교인 식품 보조비 중 하나를 삭감하려 했는데 정말 잘 되었습니다. 호호.”
“그러셨군요. 어느 종교단체나 신도들의 생활 안정이 대단히 중요하지요.”
“맞습니다. 미트라교 교인들은 적어도 가난해서 굶는 일은 없을 겁니다.”
미리암의 까만 눈동자가 카잔과 이세벨의 대화를 관심 있게 따라다녔다.
두스가 올리브 빵 바구니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자 미리암이 얼른 손을 내밀었다.
이세벨이 그녀를 살짝 꾸짖고 바구니를 들어 카잔에게 먼저 권했다.
카잔이 빵 두 개를 집어 한 개를 미리암에게 주었고 그녀의 눈이 웃었다.
심지어는 가난해야 복이 있다는 사람도 있는데 정말 이해가 안 돼요.
그런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거예요.”
“그들은 가난을 찬양하는 설교를 늘어놓지만, 속으로는 풍요로운 삶에 대한 강렬한 욕구가 쉴 틈 없이 솟아나고 있지요.
듣는 사람들도 처음에는 욕심이 좀 없어져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듯하지만, 하루 이틀만 지나면 그게 아니란 걸 알게 되지요.
억지로 자기의 마음을 돌리려는 건 스스로를 기만하는 일이라 결코 성공할 수 없어요.”
카잔과 누보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두스가 생선 요리를 들고나왔다.
“그럼요. 티베리아에 우리 선교본부가 있어요. 아직 규모는 작지만….”
이세벨이 직접 생선 위에 양파가 섞인 간장 소스를 뿌린 후 누보에게 먼저 권했다.
미리암이 입맛을 다시면서 카잔을 보고 다시 살짝 웃었다.
잠시 생선을 먹는 소리가 대화를 대신했고 사벳이 가시를 발라 생선 한 토막을 미리암에게 주었다.
“우리 미트라교에 아름답고 신앙 좋은 처녀들이 많아요.
“아, 그러고 보니 사벳 선생도 훌륭한 신붓감이네요. 호호.”
“부교주님, 실은 제가 개인적으로 알던 여자를 찾고 있는데 카멜 수용소 어디에 있다고 들었어요.
카잔이 누보와 만족한 눈웃음을 교환하는데 옆에서 갑자기 소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얼굴이 발개져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미리암에게 마르스가 다른 물건을 건네주었다.
“이번에는 멋있는 지팡이야. 중간에 칼도 들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