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암을 만나고 카잔은 급히 유리가 어제 이사한 집을 찾아갔다.
황소와 마나헴이 여기 나타났다는 것을 알려주니 유리와 레나가 겁에 질려 어쩔 줄 몰라 했다.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왔는지 알 수 없었다.
혹시 오반이 마나헴에게 가서 모든 것을 말했나 싶었다.
카잔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럴 리는 없을 거요.
오반이 마나헴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 텐데….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당분간 집에만 콕 박혀 있으면 놈들이 찾을 수 없어요.
마나헴이 여기 오래 머물 수도 없을 거고….”
“정말 아슬아슬하게 이사를 했네요.
두스가 자꾸 재촉하는 바람에…. ”
유리가 약간 여유를 되찾았다.
“지금쯤 놈들이 두스에게 다시 와서 유리의 행방을 묻고 있을 거예요.”
“설마 두스가 얘기하지는 않겠지요?”
“그럼요. 일단 청약수를 많이 마시게 해서 기분 좋게 만들라고 했어요.”
“네, 역시 카잔 님이 계셔서 마음이 놓이네요.
근데 미리암은 잘 만나셨나요?”
레나가 물었다.
“네, 너무 이쁘게 자랐더군요.
틀림없이 우리 미리암이 맞아요.”
카잔이 더 이상 말을 못 하고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카잔 님도 너무 걱정은 마세요.
일단 미리암을 찾았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면 좋은 방법이 나올 거예요.”
“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애를 데리고 와야지요….”
카잔의 입가가 굳게 다물어졌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누보가 장바구니를 들고 들어왔다.
“카잔 형님, 오셨네요. 지금 중앙시장에서 신선한 채소 사 오는 길이에요.
저녁 드시고 가세요.”
누보가 상추와 오이를 꺼내며 말했다.
카잔이 누보에게 마나헴과 우르소가 중앙시장에 갔는데 혹시 못 보았느냐고 물으니 누보가 싱긋 웃었다.
웬일로 카잔이 농담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유리와 레나의 표정을 보고 곧 사실인 것을 알았다.
자세한 설명을 듣고 누보가 입을 열었다.
“우리도 운이 좋았지만 마나헴도 그러네요.
바라바 님이 하루만 늦게 떠났어도 놈들이 여기서 무사할 수는 없었을 텐데….”
“내가 전에 마나헴에게 십 년 대운이 들었다고 했는데 사실 그의 별자리가 꽤 힘이 강해요.
그런 때는 그냥 피하는 게 좋아요.”
레나가 카잔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실은 저도 이번 기회에 놈들을 혼내줄까도 생각해 보았는데 황소 놈이 워낙 괴력이고, 없애버리지 않는 한 부작용이 날 것 같아서 망설이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실 것 같아서 말씀드린 거예요.
마나헴이 곧 예루살렘으로 가야 할 테니까 그냥 놔두는 게 좋아요.”
“엄마는 카잔 님이 걱정돼서 하시는 말씀이네”
레나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근데 카잔 님!”
유리의 말이 계속되었다.
“지금도 이모 집에 계실 필요는 없잖아요.
여기 1층에 큰방이 두 개 있으니 하나를 쓰세요.
2층에 누보 씨와 어머니가 쓰시고, 우리 모두 같이 지내도 충분히 큰집이에요.”
“아니야. 내가 있으면 어머니가 불편하실 텐데….”
“호호, 안 불편하게 두 분이 더 친해지시면 되잖아요.”
카잔이 어색하게 웃었다.
니고데모의 저택 회의실에서 로고스클럽이 다시 모였다.
간단히 칵테일을 한잔하면서 그동안의 안부를 묻는 대화를 한 후 회의가 시작되었다.
니고데모가 자리에서 일어나 참석인원을 확인했다.
“전체 회원 9명 가운데 6명이 참석하셔서 회의가 성립되었습니다.
못 나오신 분은 가말리엘 선생님과 빌립 선생님 그리고 요안나 님이시고 참석하신 분은 부회장 요나단 님, 마티아스 님, 요셉 님, 사울 님, 가말리엘 2세님 그리고 저, 이렇게 되겠습니다.”
마티아스가 손을 들고 발언권을 신청했다.
“연세 높으신 두 분은 알겠는데 요안나 님은 왜 불참했나요?”
“남편 되시는 구사 대신과 함께 갈릴리의 티베리아로 가셔서 연락이 안 되었습니다.
제가 미리 연락해야 했는데 제 불찰입니다.”
“아닙니다. 저는 그저 궁금해서 물어본 겁니다.”
“아, 그리고 마티아스 님, 대단히 축하할 일이 있으시더군요.
얼마 전에 득남하셨다고요.”
니고데모의 말에 마티아스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네, 늦둥이를 하나 보았습니다.
40이 넘어서 주책이지요.”
“천만에요. 건강과 다복의 상징이지요. 이름은 지으셨나요?”
“네, *요세푸스라고 했습니다.
제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 민망하지만, 갈릴리에서 아이가 태어난 날, 로마에서 온 점성술사가 앞으로 요세푸스라는 이름을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기억할 거라고 했습니다.
장군이나 역사학자가 된다면서요. 허허.”
요세푸스 (Flavius Josephus), AD 37년 경 ~ 100년 경
“자, 그럼 이제 정식으로 로고스 클럽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지난번 준비모임에서 말씀드렸듯이, 우리 모임의 취지는 서로 조금씩 다른 교파가 모여서 대화를 통한 이해와 화합을 이루는 데 있습니다.
로고스라는 뜻도 이런 가운데 찾을 수 있는 지혜 혹은 진리에 해당하겠습니다.”
니고데모가 말을 멈추고 주위를 한번 둘러본 후 계속 이어나갔다.
“지금 이 땅에 선지자와 예언자들이 넘쳐나고 있는데 그들 중 어떤 사람은 병을 낫게 하고 심지어는 하늘에서 당장 비를 불러오는 신통한 능력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우리가 먼저 어떤 것이 모세의 율법을 벗어나는 ‘이단’인가 하는 의견을 나누어 본다면 자연히 우리 스스로의 정체성이 확립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그러니까 먼 데서부터 차근차근 정리해 보는 의미에서 오늘의 토의 주제는 ‘이단이란 무엇인가’로 정했습니다.
좋은 말씀 많이 해주시기 바랍니다.”
니고데모가 자리에 앉았고 잠시 후 사울이 목을 가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우리 유대교를 위협하는 가장 큰 이단은 황제숭배입니다.
예루살렘에서도 황제의 건강을 기원하는 제사를 공공연히 드리는 제사장들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두 번째는 얼마 전 십자가에 처형된 나사렛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는 소문이 요즘 갑자기 퍼지고 있습니다.
어이없는 일입니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근거 없는 이야기를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루속히 내부 단속을 강화해 이런 이단이 더 이상 퍼지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사울이 동의를 구하듯 요나단을 바라보았다.
*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 에 예수를 메시아로 선언하고 본디오 필라도에 의해 처형된 현인으로 언급한 내용이 나온다.
이에 대해 후대의 기독교인들이 이 내용을 삽입했다는 논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