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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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바 278화 ★ 우울한 소녀

wy 0 2024.04.10

 

11살 먹은 소녀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에 두 볼이 우유처럼 뽀얗다.

 

크고 까만 두 눈은 초롱초롱했고 오뚝한 코에 있는 작은 까만 점이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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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볼 때마다 엄마는 뿌듯한 보람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속 갈등이 적지 않았다.

 

미리암이 몇 달 전부터 갑자기 무슨 충격을 받았는지, 말수가 줄어들고 우울한 소녀가 된 것이다.

 

사춘기가 일찍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아빠의 말을 순종하고 잘 따르며, 양의 정강이뼈로 신의 마음을 읽는 신녀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던 그녀가, 이제는 아빠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지고 어딘지 슬픈 느낌마저 들었다.

 

양 뼈를 던지는 신탁은 어차피 10살이 넘어서 중단시켰고, 요즘은 집에서 선생을 불러다 수학과 음악을 가르치고 있는데 공부에 열중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식사를 안 하는 날도 많았다.

 

며칠 사이 아이의 눈이 동그랗게 더 커진 성싶었다.


미리암, 오늘 저녁은 좀 해야지. 어제부터 별로 먹은 게 없잖아.”

 

입맛이 별로 없어요.”

 

그래도 그렇게 안 먹으면 쓰러져요. 눈이 때꾼한데.”

 

엄마가 그녀의 손을 붙잡고 식탁으로 데리고 나와 앉혔다.

 

청약수 한 잔 마시면 안 돼요?”

 

안돼. 그건 신탁 점을 칠 때만 마시는 거야.”

 

소녀의 입술이 비쭉 나왔고 천천히 노란 호박 수프를 한 입 떠먹기 시작했다.

 

미리암은 한 달에 한 번 보름달이 뜰 때 신탁 점을 쳤고 양의 정강이뼈를 던지기 전에 청약수를 두 잔 마셨다.

 

그 물을 마시면 기분이 묘하게 좋아지며 사람들이 모두 예뻐 보였다.

 

신이 나니까 양의 정강이뼈를 더 높이 던질 수 있었고, 그런 그녀의 모습에 사람들은 작은 비너스 여신이 내려온 듯하다고 경탄했다.

 

올해 들어 점을 안 치고 서너 달 청약수를 안 마시니까 은근히 그 물맛이 생각났다.

 

일곱 살 때부터 시작해서 삼사 년을 먹은 물이라 그럴 것이다.

 

나는 언제부터 청약수 마실 수 있나요? 어른들은 다 마시잖아요.”

 

소녀가 숟가락으로 수프를 한 입 더 떠먹으며 물었다.

 

, 우리 미리암은 열다섯 살이 되면 마실 수 있어.

 

그때는 시집도 가야 하니까 마셔도 괜찮아.”

 

엄마가 그녀 앞으로 양 갈비찜을 밀어 놓으며 대답했다.

 

미리암이 작은 갈비 하나를 천천히 칼로 자르며 몇 달 전의 일을 생각했다.

 

그날도 저녁에 부드러운 양 갈비를 먹고 엄마 아빠와 뽀뽀를 한 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자다가 목이 말라 물을 마시러 식당으로 나오면서 아빠의 침실을 지나는데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언제까지 비밀로 할 거예요?”

 

엄마의 목소리였다.

 

미리암은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고 귀를 쫑긋 세웠다.

 

아빠의 대답이 조금 후에 작게 들렸다.

 

미리암은 앞으로도 우리가 친딸처럼 계속 키웁시다.”

 

소녀의 가슴이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에게 들으면 더 충격받지 않을까요?”

 

아빠 방의 램프가 크게 흔들리며 잠시 또 대화가 멈추었다.

 

벌써 10년 전의 일인데 인제 와서 그런 얘기할 사람이 누가 있겠소.

 

몇 년만 더 조심해서 키우면 괜찮을 거요.

 

미트라교의 장래도 생각해야 하고.”

 

미리암은 다리가 후들거리고 어지러워서 더 이상 거기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물도 안 마시고 바로 자기 방으로 돌아왔고 그날 이후 미리암은 다른 소녀가 되었다.

 

무슨 생각을 또 그렇게 하고 있니? 식사 안 하고.”

 

그녀가 억지로 양 갈비를 다시 자르기 시작했다.

 

오늘 저녁에 선생님 오시니까 공부 열심히 해라.

 

엄마는 일이 있어서 나갔다 올게.”

 

그녀의 말이 끝나자 식당으로 건장한 사내가 들어오며 말했다.

 

나가실 시간입니다. 이세벨 부 교주님

 

미리암은 나가는 엄마를 바라보지 않았다.

 

 

 

 

샤론 여관 마당에서 즐거운 담소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온 후 누보가 엄마에게 말했다.

 

이제 드디어 놈을 찾았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세겜에서 제일 좋은 동네에 방 세 칸짜리 집을 사서 어머니를 편히 모실게요.”

 

말만 들어도 좋구나.

 

아까 레나 님도 네가 효심이 있어서 앞으로 모든 일이 잘될 거라고 하더라. 호호.”

 

엄마의 웃는 얼굴에 오늘따라 주름이 많이 보였다.

 

.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오죽하면 십계명의 제5계명이겠어요. 하하.

 

살인하지 말라가 제6계명인데요.”

 

그래, ‘네 부모를 공경하라가 다섯 번째로 나오지만, 인간관계로는 첫 번째 계명이라고 할 수 있지.

 

처음 4계명은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이니까.

 

그리고 아까 마당에서 들었는데 아무리 시저 장군 같은 사람이 남자와 그런 짓을 했어도 그런 건 따라 하지 말아라.”

 

, 그럼요. 하하. 돈 준다고 해도 못 해요

 

런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뭔가 좀 다른 것 같아요.”

 

누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모세의 율법에도 너는 여자와 동침함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라는 말이 있어.”

 

, 엄마도 율법을 많이 아시네요.”

 

호호, 내가 시장에서 장사하느라고 정신이 없었지만, 아직 그 정도는 알지.

 

너는 짐승과 교합하여 자기를 더럽히지 말라 이는 문란한 일이니라라는 말도 있어.”

 

짐승과요? 천 년 전에는 그런 일도 있었나 봐요.”

 

, 그러니까 상체는 사람이고 하체는 염소인 반인반수가 나왔겠지. 호호.”

 

엄마가 웃는데 유리가 문을 열고 들어오며 장난하듯말했다.

 

누가 왔을까요?”

 

유리 뒤에 어떤 여자가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누보님

 

쾌활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미갈이었다.

 

그녀의 도움으로 독수리 깃발을 무사히 가지고 나올 수 있었다.

 

미갈, 잘 왔네. 그동안 더 이뻐졌네.”

 

당연하지요. 스무 살도 아직 안 되었는데 그래야지요. 호호.”

 

, 그렇지. 정말 반갑네. 이렇게 여기서 만나니까

 

누보가 엄마에게 그녀를 소개했다.

 

색시가 여로암의 동생이구나.”

 

미갈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지금 카잔 님이 막 들어 오셨는데

 

유리가 한 템포 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 저녁에 오반이 여기 식당으로 오기로 했대요.” 

 

그녀의 말에 누보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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