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변호사, 그는 30여 년간을 판사로서 수많은 재판을 했고,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음악가이고, 중앙일보 극동방송 등 여러 매체에 글을 쓰는 칼럼니스트이다.
또 신학 대학과 대학원을 나온 명예 신학박사로서 가히 이 시대의 르네상스적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지금도 변호사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그를 역삼동에 있는 사무실로 찾아갔다.
오전부터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씨였으나 길은 별로 막히지 않았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필자를 반가이 맞아준 그는 푸근한 느낌이 들면서도, 활화산 같은 힘을 간직한 변호사의 모습이었다.
길지 않은 만남이었지만, 인터뷰를 끝내고 나니 그의 내면에 뜨거운 불뿐만 아니라, 세상을 비추는 환한 빛도 보였다.
이우근 변호사와 만나면 누구나, 주위를 즐겁게 만드는 그의 경쾌한 유머 감각에 매료된다.
그는 강아지를 무척 좋아하는데, 그동안 기른 강아지들과의 이별이 별로 좋지가 않아서, 지금은 기르지 않고 있다.
이우근 변호사, 이 혼란한 시대에 우리의 마음을 따스하게 해주는 어른이다.
최: 안녕하세요. 이우근 변호사님, 오늘 이렇게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판사의 판결에 대한 질문을 좀 드리겠습니다.
변호사님은 중앙지법원장을 하시는 등 30여 년간 판사로서 수많은 재판을 하셨습니다.
재판 건수는 엄청 많고 기록은 방대한데, 판사의 판결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요?
이: 재판의 판결은 어떤 결론을 내는 것이 구체적으로 타당하냐를 생각함과 동시에 그것이 법적 안정성을 저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합니다.
즉 법적 안정성과 구체적 타당성이 조화돼야 한다는 건데, 다소 추상적인 이야기입니다.
제 생각에는 무엇보다 사실관계를 얼마나 실체에 가깝게 파악하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기록에 나타난, 법정에서 볼 수 있는 사실관계는 그 실체의 반도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변호사를 해보니까 그런 경우를 많이 알 수 있었어요.
결국, 법원은 어찌 보면 실체에서 좀 떨어진 사실을 가지고 판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기록도 세심히 봐야 하고 당사자들의 주장에 귀를 잘 기울여야 합니다.
영어로 재판 심리(審理)를 hearing이라고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최: 변호사 생활을 10여 년 하셨는데 만약 지금 다시 판사가 되어 재판을 한다면, 어떤 점을 더 잘 보실 수 있을까요?
이: 당사자들의 법정 구술 진술을 더 충실히 듣겠습니다.
워낙 재판이 많고 검토할 기록이 많으니까 사실 판사들이 법정에서 피고인들의 말을 잘 듣지 못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최: 재판 건수가 일 년에 보통 300건이 넘지요?
이: 네, 더 많다고 봐야지요. 훨씬 많습니다.
이제 다시 판사가 되어 재판을 한다면 피고인에게 ‘이 재판에서 꼭 하고 싶은 말을 한마디 하십시오.’라고 하고 그 말을 경청하겠습니다.
특히 변호사를 해보니까 절실히 그런 생각이 듭니다.
최: 변호사님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실 정도로 음악에 조예가 깊으싶니다.
서울 내셔널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시면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황제, 부르흐의 콜니드라이 등 많은 곡을 지휘하셨지요.
음악에서 지휘자는 어떤 사람인가요?
이: 오케스트라에서 소리를 내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 지휘자입니다.
수많은 악기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결국은 하모니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선율들을 어떻게 조화롭게 만드느냐 하는 것이 지휘자의 사명이지요.
그래서 저는 단원들에게 다른 파트의 소리를 잘 들으면서 자기 파트를 연주해 달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최: 변호사님은 사법연수원 수석교수 시절에 사법 연수원가를 작곡하셨습니다..
제가 들어보니까 힘차고 멜로디가 수려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떤 과정으로 이런 곡을 작곡하셨나요?
이: 당시 연수원장님께서 저에게, 사법연수원도 대학원 과정인데 교가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가사와 곡을 공모했었습니다.
충분히 알려지지 못했는지 응모 곡이 별로 없어서, 당시 시를 쓰시던 교수 한 분이 작사를 하시고 제가 곡을 만들었고, 응모 상금은 받지 않았습니다. 하하.
저로서는 큰 영광이었지요.
최: 언제 작곡하셨고 작사를 하신 분은 누구셨나요?
이: 2000년에 있었던 일이고 시를 쓰신 분은 김용호 변호사님입니다.
최: 변호사님은 중앙일보, 극동방송 등 여러 매체에서 칼럼이나 수필을 오랫동안 쓰셨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문예반에서 교지를 만들며 시와 소설을 쓰셨지요.
변호사 님에게 글쓰기란 무엇인가요?
이: 어떻게 보면 주제넘은 일이라고 볼 수 있는데, 사르트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글쓰기는 자신의 시선으로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구다.”
또 후설의 현상학을 빌려서 “의식이 차단되어 지향이 없어지면 의식은 무로 돌아가고 그것이 존재다. 거기서 선택한 자유가 글쓰기다”라는 말도 했지요.
깊은 사유이긴 하지만 저는 별로 공감하지 않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글쓰기는 거울 아닌가 생각합니다. 즉 타자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향하는 반사경 같은 것, 결국 나를 반추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최: 변호사 님은 신학 대학을 나오시고 어려서는 목회자가 꿈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동안 쓰신 저서의 제목들이 참 좋은데 다음과 같습니다.
불신앙 고백, 바보가 그리운 시대,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가, 톨레랑스가 필요한 기독교 등입니다. 이 중에 ‘톨레랑스가 필요한 기독교’라는 책은 어떤 책인가요?
이: 말씀 중에 저는 학교 다니면서 사실 목회자가 되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다만 신학은 꼭 하고 싶었습니다. 처음 대학 지원서를 낸 학과가 신학과였는데 당시에 담임선생님에게 야단맞고 학과를 바꿨습니다. 하하.
그리고 ‘톨레랑스가 필요한 기독교’는 출판사에서 지은 제목인데 제가 그냥 수락했습니다.
저는 ‘반추하는 신앙’ 이렇게 할까 했는데 출판사 의견을 따랐습니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가’ 는 어느 시인의 말을 빌린 겁니다만, 저서라기보다는 중앙일보에 연재한 칼럼을 책으로 묶은 거지요.
최: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가’는 중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지요?
이: 중학교 3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렸는데 저로서는 아주 영광입니다.
또 언론인 클럽에서 상도 받았는데 책은 잘 안 팔리더군요. 하하.
최: 변호사 님은 2020.6~2020.8 두 달 동안 전광훈 목사님 후임으로 한기총 대표회장 직무대행을 하셨습니다.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되셨고 어떤 경험을 하셨나요?
이: 당시 전광훈 목사님이 한기총 대표회장 직무가 정지되었어요.
교단 내부의 문제로 법원에서 그런 결정을 내렸는데, 담당 재판부에서 저에게 부탁을 해서 맡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짧은 기간이었습니다. 3달 남짓했었는데 어려운 일이었지요.
최: 어떤 일을 하신 건가요?
이: 당시 한기총 재정상태가 나빠서 건물 임대료도 내기 힘든 상태였는데…그런 문제 좀 정리하고, 전광훈 목사님이 한기총 대표회장 사표를 내서 저의 임무가 끝났습니다.
저도 곧 사표를 냈지요.
전 목사님이 하시는 일은 그분의 생각이니까 그대로 존중하지만, 과연 그 일이 한기총과 연관되는지는 의문이었지요.
최: 마지막 질문입니다.
대선이 며칠 안 남았습니다.
이번 대선은 특히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고, 좌우 대립이 극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어떻게 보시나요?
이: 원내 제1당, 2당의 후보가 모두 법조인인데, 두 사람 다 형사 사건 피의자이지요.
물론 무죄 추정의 원칙으로, 혐의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법조인이면서 피의자…. 당착의 모습입니다.
저는 많은 국민이 선거를 포기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플라톤이 ‘투표를 포기하는 것은 변변치 않은 사람의 지배를 받겠다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좋은 사람을 뽑기 전에 나쁜 사람이 뽑히면 안 된다는 의미 같습니다.
얼마 전 어느 후배가 투표를 포기하겠다고 해서 ‘투표장에 가서 백지를 내더라도 투표장에는 가라’라고 했는데, 이런 말을 하면서도 마음이 씁쓸합니다.
최: 말씀을 듣다 보니 이제 한국 정치가 악성 편 가르기에서 벗어나, 즉 정치적 선악의 개념 보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개념으로 좀 변화하면 좋지 않을까요.
이: 아주 필요한 말씀인데 결국 인문학적 소양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틀림과 다름은 엄격하게 구별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 용어에서도 다름과 틀림을 잘 구별 못 하고 쓰고 있습니다.
다르다는 것은 사회가 그만큼 다양하다는 뜻입니다.
사랑한다는 게 뭘까요?
나와 다르기 때문에 사랑하는 거 아닙니까.
다름을 사랑하지 못하면 자기만 사랑하는 나르시시즘에 빠지게 됩니다.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면 건전한 사회로 발전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정치적으로는 좌우가 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좌가 없으면 우도 없는 것이고, 우가 있어야 좌도 있는 것이지요.
다만 어느 한쪽이 자신들을 보수라 이름하고, 어느 한쪽은 진보라 이름하는데 그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지금 우라고 하는 사람들이 보수의 품격있는 가치를 지켰느냐, 의문이거든요.
지금 좌라고 하는 사람들이 진보적 행태를 했는지, 퇴보적 행태가 더 많았는지 의문이거든요.
결국, 상대방을 틀렸다고 주장하면 자기 눈이 틀린 것입니다.
다름이 풍성할수록 사회도 다양성이 충만하게 되겠지요.
그런면에서 정치하는 분들도 기본적 인문학적 소양이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 이우근 변호사님, 오늘 귀한 말씀 고맙습니다.
더욱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이: 오늘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원영 TV- https://www.youtube.com/watch?v=0XCGv_bu3w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