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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오 아라우 : 베토벤의 직계 제자 - 20세기 피아노의 전설

wy 0 2020.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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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오 아라우 1903-1991


예음 문화재단에서 1987년 5월 '클라우디오 아라우'를 한국으로 초청했을 때 그는 85세였다.

 

놀라울 정도로 여러 작곡가의 곡 모두를 탁월하게 연주하는 세계적 피아니스트 아라우를 기다리는 한국의 음악 팬들은 가슴이 설레었다.

 

그의 고향 칠레에는 그의 이름을 딴 아라우 스트리트가 있다.

 

동시에 그는 독일 낭만파 피아노 음악의 마지막 맥을 이은 대가였다.

 

베토벤이 체르니를, 체르니가 리스트를, 리스트가 크라우제를, 크라우제가 가장 공들여 가르친 사람이 바로 아라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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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글자를 익히기 전에 악보를 읽었고, 한 번 들은 것을 피아노로 칠 수 있었다.

 

다섯 살 때에 이미 모차르트와 베토벤, 쇼팽의 프로그램으로 공개 연주회를 가질 정도로 천재적인 음악성을 드러낸 그는 8살 때인 1911년 칠레 국가 장학생의 자격으로 독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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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독일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크라우제는 어린 아라우의 재능을 한 눈에 알아보고 그를 전인적인 예술가로 교육시켰다.

 

그는 아라우에게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듣게 해 주었고, 문학과 미술, 무용, 연극의 세계도 알려 주었다.

 

이는 후일 아라우가 폭 넓은 예술인으로 성장하는데 커다란 밑거름이 되었다.

 

그의 스승 크라우제는 자신의 스승 리스트의 음악뿐만 아니라 19세기 유럽의 문화를 통째로 아라우에게 전수했던 것이다

 

돈을 받지 않고 그를 가르쳤던 크라우제가 1918년 사망한 후 아라우는 다른 선생에게는 배우지 않았다.

 

 

서울에 도착한 후 호텔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그를 필자의 집으로 모셨다.

 

노구를 이끌고 아직도 세계를 누비며 연주여행을 하는 아라우의 걸음걸이가 좀 불편해 보였다.

 

들어오는 현관에서 살짝 비틀거리는 그에게 한국식으로 신발을 벗으라면 혹시 넘어질까 두려워 신을 신은 채 식탁으로 모셨다.

 

그의 눈동자에는 비행기 여행으로 피곤한 노인의 기색이 역력했으나 단아한 얼굴과 자태에는 넘볼 수 없는 기품이 있었다.

 

아라우는 한국이 처음이고 한국 음식에 생소했지만 식사를 시작하면서 서서히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특히 여러 가지 나물들을 먹으면서 그 다양성에 감탄하며 건강식이라고 좋아했다.

 

당시에는 칠레 와인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때였지만 고급 칠레 와인을 구해 놓았다.

 

그는 고국의 와인을 보고 반가워했으나 자신은 술을 별로 하지 않는다면서 가볍게 입술만 대고 소다수를 마셨다.

 

나중에 알았지만 아라우는 불교에 심취해 있어서 주로 채식을 하였고 술은 원래 잘 하지 않았다.

 

나는 같이 식사를 하면서도 워낙 고령에다 걸음걸이도 불편한 이런 분이 과연 내일 저녁에 연주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은근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식사를 즐기는 외에는 말도 좀 어눌하고 노령으로 척추가 굽어서 얼굴이 반은 어깨에 파묻힌 자세였다.

 

더욱이 다음날 연주 곡들은 젊은 사람들도 쉽지 않은 베토벤과 리스트였다.

 

그 때 필자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의 놀라운 오른 손이었다.

 

포크를 잡고 나물을 먹는 그의 손이 하얗고 주름이 전혀 없었다.

 

85살 노인의 손이라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이 혈색도 좋고 심지어 어린아이 손처럼 포동포동했다.

 

저렇게 건강한 손으로 여태까지 세계를 여행하며 피아노를 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거장에게 물었다.

 

"건강이 아주 좋아 보이시는데 어떤 비결이 있으신가요? " 나의 질문에 그가 시금치를 찍은 포크를 내려놓았다

 

"피아노를 치는 한 건강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다.

 

‘피아노를 잘 칠 정도라면 건강은 문제없다.’ 라는 의미와 ‘피아노를 치면서 더욱 건강해 진다.’는 두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어떻게 손이 그렇게 젊은 사람 같은가요?” 라고 물었다.

 

“내가 두 손과 한 발은 문제 없는데 왼발은 별로 안 써서 좀 안 좋다.”라는 대답이다.

 

그러고 보니 걸을 때 왼발이 불편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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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5살에 고향 칠레에서 최초의 피아노 콘서트를 열기 시작 한 후 80여 년을 세계를 누비며 많은 음악 애호가를 감동시켰다.

 

피아노 위에서 바삐 움직이는 두 손과 페달을 밟는 오른 발은 건강한데 왼발이 불편 하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었다.

 

음악가는 장수하는 직업인데 그 중에서도 피아니스트와 지휘자가 제일 오래 산다.

 

신경학적으로 뇌 세포의 많은 부분이 양 손과 직결되어 있는데 손을 많이 쓰면 뇌 건강이 좋아져서 그렇다는 주장이 있다.

 

당대 피아노의 거장인 루빈슈타인, 호로비츠, 제르킨 등이 모두 장수하였다.

 

그러고 보니 예음 문화재단에서 모시던 작곡가 김성태 선생님이 생각났다.

 

그분은 평상시 자주 손가락을 움직이는데 앞에 테이블이 있으면 대화 중에도 손가락으로 피아노 치듯 살짝 두드리곤 하셨다.

 

젊은 시절, 평양 대표 축구 선수까지 하신 건강이긴 하지만 103세까지 사셨다.

 

식사가 끝날 때쯤 필자보다 50살이 많은 아라우에게 어리석은 질문을 했다.

 

“선생님은 그 동안 방대한 작곡가들의 곡을 연주하셨는데 어느 곡이 가장 좋으십니까?”

 

잠시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이 없던 그가 입을 움직였다.

 

“내일 연주하는 곡들이지요.”

 

다음 날 아라우는 나의 걱정을 불식시키며 다양한 레파토리를 완벽하게 연주했다.

 

그의 음악은 남미의 로맨틱한 정서에 독일 낭만 음악의 전통이 어울린 독특한 세계다.

 

틀에 억매이지 않으며 순간순간의 음악적 여흥을 연주 중에 청중에게 전달하는 그의 직관적 연주 스타일은 창조적이다.

 

자연스러운 프레이징을 기반으로, 작곡가의 의도에 대한 정확하고 객관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한 아라우의 피아니즘은 귀족적인 우아함과 열정의 산물이다.

 

당시 그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연주는 나의 사명으로 평생 해야만 하는 일이고 피아노 연주는 힘이 아니라 기술로 하기 때문에 나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피아노 연주자는 작곡가의 의도를 잘 표현하는 것은 물론 청중들과 순간적인 교감을 중시해야 한다”라고 했다.

 

아직도 연 60회 이상의 연주를 펼칠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그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는 견고함과 연륜이 보여주는 탁월한 해석으로 아라우식 베토벤과 리스트를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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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교향악단과 리허설 1987 5 20


아쉬운 것은 당시 이분과 함께 찍은 사진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88세가 되던 1991년 연주 여행 도중, 오스트리아의 작은 도시에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아라우는 당시 바흐의 작품을 비롯하여 베토벤, 멘델스존 소나타, 현대 작곡가 불레즈의 소나타 등을 녹음하려고 준비 중이었다.

 

베토벤-체르니-리스트-크라우제-아라우로 이어져 내려왔던 독일 낭만주의의 위대한 전통은 이제 전설로 남게 되었다.

 

'성실함을 갖춘 천재성'이 예술가에게 있어서 최고의 미덕이라면, 아마도 이는 클라우디오 아라우를 지칭하기 위한 표현일 것이다.

 

그가 타계한지 3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의 잔잔한 미소가 베토벤, 쇼팡, 브람스의 음악과 함께 떠오른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긴 것을 그는 오래 전 터득했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W0UrRWyIZ74  

노를 젓는 피아노 건반 위, 달빛 한음 한음의 비침과 출렁이는 베토벤의 격정은 아라우의 피아노에 대한 진실을 노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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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독일에서 -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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