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이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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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 전총리 : 정치는 소통인데 이것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요. 소통 없는 혁신은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wy 0 2020.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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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 전총리는 여러 고위직을 기록적으로 수행했다.

 

37세에 전남 도지사를 시작으로, 서울시장 두 번, 장관 세 번, 총리 두 번, 그리고 대통령 직무대행까지 마치고 이제 공직에서 물러난 지 10년이 지났다.

 

그를 만나기 위해 마로니에 광장의 대학생들이 붐비는 음식점을 찾았다.

 

약속시간 10분 전에 나와 앉아 있는 고건 전총리는 선비 같은 단아함과 아직도 번뜩이는 총기(聰氣)를 지닌 대학로의 시민이다.

 

그를 보면 '신언서판(身言書判)을 모두 갖추었다' 는 말이 생각난다.

 

다만 대통령 경선을 중도에 포기한 것에 대한 판단은 아직 평가하기 이를 것이다.

 

 

최: 오랜만에 뵙습니다. 요즘 건강은 어떠신가요?

 

고: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이제 나이가 있으니 허리가 좀 안 좋기는 하지만 혈압이나 당뇨는 없습니다.

 

최: 얼마 전에 재미있는 시집을 한 권 내셨는데 소개 좀 해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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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책 제목이 “내가 좋아하는 친구, 친구가 좋아하는 시”입니다.

 

이름 그대로 친구들이 좋아하는 시들을 200편 정도 받아서 묶은 책입니다.

 

이를테면 심대평 전지사가 좋아하는 시는 나태주 시인의 ‘안부’이고 신중식 전의원이 좋아하는 시는 피천득 선생의 ‘오월’인데, 이런 시들을 모으는 작업을 제가 했지요.

 

나이 들면서 기억력 감퇴를 늦추고 메말라가는 감수성을 복원하기 위해 모은 시들입니다.

 

 

최: 몇 년 전에 출간하신 ‘고건 회고록’ (공인의 길)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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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이나 공직에 있는 분들이 많이 읽어서 회고록으로는 드물게 재판을 찍었다고 들었습니다.

 

이념과 지역으로 양극화된 사회에서 중도,실용노선을 지향하는 행정가로서의 50년 경륜이 담담히 서술되어 있더군요.  

 

특히 서울 시장을 두 번 하시면서 지하철공사 확장과 완공에 대한 기여가 인상 깊었습니다.    

 

고: 시장으로서 당연한 책무이지요.


서울시민들이 세계 어느 도시보다 안전하고 편리한 지하철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지금도 간혹 지하철 안에서 당시 같이 일을 했던 시청 공무원들이 저를 알아보고 인사를 합니다.

 

 

최: 호가 우민(又民)인데 어떤 의미인가요?

 

고: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씀이 있지요.

 

저는 이 말씀을 ‘지성이면 감민(民)’으로 풀었습니다.

 

시민이 감동하면 곧 하늘이 감동하는 거니까요.

 

공직 생활을 하면서 늘, 또 한 사람의 시민의 입장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추진하려는 마음을 담은 호라고 생각합니다.

 

 

최: 총리라는 직책을 ‘1인지하 만인지상’이 아니고 ‘1인지하 만인지중(衆)’이라고 정의하셨는데 그런 말씀과 통하는 의미로군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고건 총리’하면 대단한 관운이 연상됩니다.

 

하지만 관운만은 아니었지요?

 

고: 네, 저는 특정 정권에 충성한 일이 없었습니다.

 

행정 전문가로서 나에게 일이 맡겨지면 국민을 위해 봉사했을 뿐이지요.

 

그래서 어느 정부든지 어려운 일이 생기면 저를 불렀고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했을 뿐입니다.

 

 

최: 그동안 목표했던 일이 실패한 일은 없었나요?

 

고: 두 번 있었습니다.

 

행정고시에 낙방했었고 군산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졌지요.

 

제가 결정한 소선거구 선거법에서 제가 떨어졌습니다.ㅎㅎ

 

 

최: 소선거구제가 장점도 있지만 지역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단점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고: 네, 소선거구제는 민주화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폐단도 많았습니다.

 

이제는 비례대표를 늘리고 일본식 석폐율제를 도입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즉 한 후보자가 지역구와 비례대표에 동시에 출마하는 것을 허용하고, 중복 출마자들 중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로 낙선한 후보를 비례대표로 선출하는 것입니다.

 

일본이 1996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선거제도인데, 지역구 선거에서 가장 아깝게 떨어진 후보를 구제해 주자는 취지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지역간의 갈등이 완화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민주당이나 한국당으로서는 국회의원 의석수가 줄어들 우려 때문에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겠지요.

 

 

최: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가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고: 제가 오랜 기간 공직에 있었는데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정치는 소통인데 이것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요.

 

소통 없는 혁신은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최: 소통은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하나요?

 

고: 갈등 해소를 위한 소통은 먼저 서로의 의견을 경청함으로써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이후 적절한 대안을 제시해서 원만한 합의를 이루어야지요.

 

노무현 대통령때는 여.야.정 협의체가 있어서 그러한 역할을 수행했었지요.

 

지금은 그러한 기능을 하는 곳이 보이지 않습니다.

 

당시 여소야대 4당 체제에서도 여.야.정 협력시스템을 가동해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했었습니다.

 

지금도 북핵 리스크 등 주요 현안에 대해 이러한 협의체를 조속히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야.정 협의체는 총리인 제가 주도했고 두 문씨, 문대통령과 문국회의장이 의원으로 참석했었지요.

 

 

최: 그때 만난 문대통령은 어떠셨나요?

 

고: 제가 볼 때는 합리적인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지금은.. 하시는 걸 보니까 원리주의자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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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고총리님은 스스로 정치인이라기 보다는 행정가라고 생각하시지요?

 

고: 큰 의미에서 행정도 정치라고 볼 수 있지요.

 

국회에서 하면 정치, 정부에서 하면 행정이니까요.

 

다만 목표가 다르지요. 정치는 권력이고 행정은 국민서비스가 목표입니다.

 

특히 행정은 직접 시민들을 만나 그들이 필요한 것을 알아내고 고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시민적 합의와 합법적 절차를 중시하고 토론과 참여의 공개행정을 지향했습니다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을 잊으면 안되겠지요.

 

 

최: 우리나라는 공무원들의 자질이 뛰어난데 그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지요.

 

고: 헌법 7조가 있습니다.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어느 정권에 충성을 하는 게 아니라 국민에 대한 봉사, 서비스를 해야지요.

 

공무원의 영혼은 패숀과 콤패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맡은 일에 대한 열정과 국민에 대한 배려가 가장 중요합니다.  

 

저는 공직생활 30년을 했지만 야인으로 살아온 10여년도 공인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관에 있을 때는 민의 시각으로, 민간에 있을 때는 관의 시각으로 행정을 볼 수 있는 기회였지요.

 

 

최: 한보사건 때 현직 시장이면서도 아무 문제가 없으셔서 청렴한 공직자임이 다시 한 번 확인 되었습니다.

 

고: 네, 제가 1990년 수서비리 사건 때 관선 서울시장이었는데 한보에 특혜를 주라는 청와대의 지시를 거부하고 경질되었지요.

 

한보의 정회장이 어느 날 시장실에 와서 흰 봉투를 내밀기에 그 자리에서 면박을 주었어요.

 

공무원은 지자이렴 (知者利廉)을 좌우명으로 삼아야 하기 때문에 평생 흔들린 적이 없지요.


‘지혜로운 자는 청렴함이 이익’이라는 뜻이고 저의 선친께서 좋아하신 말씀이지요.

 

 

최: 선친이신 고형곤 박사님은 철학으로 일가를 이루셨고 도인 같은 생활을 하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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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형곤 박사 1906 - 2004

 

고: 네, 호가 청송이신데 들을 청(聽)자를 쓰셨습니다.

 

소나무에 부는 바람소리를 듣는다는 의미겠지요.

 

연희전문 철학교수로 교편을 잡으시고 서울대 교수, 전북대 총장을 하셨습니다.


1963년 통합 야당 국회의원으로 윤보선 당에서 사무총장도 하셨지요.

 

불교의 선(禪) 사상과 하이데거 실존의 가교를 놓은 책, ‘선과 하이데거의 회통’이라는 책을 쓰셨는데 동국대 출판부에서 곧 다시 나올 예정입니다.

 

 

최: 청송(聽松)께서 만년에 쓰신 아래의 시는 이번에 만든 시집에는 없겠지요.


<첩첩 산중에 물길은 구비구비 어디로 가는가

 

산비들기 한 마리 석양바람에 울며 날아가서는

 

다시 돌아가지 않고 강산만 적막하네

 

말하지 말게나 그 밖의 일들은

 

하늘과 땅 검고도 누렇고

 

공간과 시간 넓고도 끝이 없고.>

 

 

최: 오늘 시간 내주시고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고: 네, 반가웠습니다.

 


 

식당 건물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고 필자를 1층까지 안내해 주는 고건 전총리에게 “Compassion (배려정신)이 여전하십니다” 라고 말했다. 그의 대답이 인상 깊었다.


“배려가 바로 혁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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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2 06  대학로 마로니에 광장 양식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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