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이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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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통과해 나온 자의 언어, 소설가 김훈 : 민주주의는 소통의 바탕 위에서 가능한데 작금의 현실은 말을 할수록 더욱 단절이 …

wy 0 2019.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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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전 어느 맥주집에서 김훈 작가의 노래를 들었다.

 

‘고향의 그림자’라는 옛날 노래인데 부르기 쉽지 않은 곡이다.

그의 노래는 구성지며 단아했다.

 

몇 년 후 ‘칼의 노래’가 새로운 문장가의 탄생을 알렸다.  

 

우리의 정서를 구구절절 엮으며, 정곡을 찌르는 수식어로 꽉 찬 김훈의 글.

 

그의 작업실은 바로 그 단어들을 연필로 파내어, 원고지 벨트 위에 나란히 올려놓는 막장과 같다.  

요즘의 글은 일상적인 소재의 막중함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일산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질문을 시작했다.

 

최: 반갑습니다.  김훈 작가님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김: 저는 요즘 불면증이 있어서 8시쯤 일어납니다.

오전에 운동을 2시간 반쯤 해요.

 

점심을 먹고 대개 2시부터 일을 시작합니다.

하루에 3-4시간 일을 하고 더 이상 일을 안 해요.

 

야근은 절대로 안 합니다.

젊었을 때 너무 야근을 많이 해서 이제 밤에 일하면 능률도 안 오르고, 저녁 때는 대개 집에서 쉽니다.

 

일 할 때는 글을 쓰거나 책을 보거나 자료를 찾는데, 자료는 후배들을 시켜서 찾게 해요.

자전거는 먼지가 많아서 못 타고, 제가 국선도 3단이라 동네 도장에 가서 국선도를 해요.

 

최: 그 동안 쓰신 글들의 주제는 무엇이었나요? 

 

김: 처음에는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주제를 가지고 썼어요.

칼의 노래까지도 상당히 그랬어요.

 

김훈소설.png

 

칼의 노래에는 충효 사상은 없고 실존과 죽음, 이런 것들이 주제였지요.

 

이후에는 내 글이 일상의 구체성으로 다가왔어요.

나이를 먹으면서 현실로, 삶을 통과해 나온 자의 언어로써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김훈산문.png


 

최: 컴퓨터를 안 하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데, 신문이나 TV, 잡지는 보시나요?

 

김: 네, 신문은 보는데 하루에 15분 정도에요.

 

제목만 보고 특별히 관심 있는 기사는 읽고, 근데 저는 구태여 신문을 읽을 필요는 없어요.

왜냐하면 신문이라는 게 20년 전에 하던 소리를 똑같이 하고 있어요.

 

저는 제목만 봐도 이 사람들이 무슨 소리하겠거니~ 하고 다 알아요. ㅎㅎ

지금 언론들은 사실에 입각한 순수한 저널리즘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런 시절은 한 20년 전에 벌써 다 지나갔어요.

지금 언론들은 그 당파성을 선전하는 선전 매체에요.

우리가 북한 언론을 폄하할 때 북한 선전 매체라고 하듯이, 지금 남한 언론도 적대하는 이념의 세력을 비판하는 선전 매체에요.

 

최: TV는 보시나요?

 

김: TV는 밤에 좀 보는데 제일 좋아하는 게 동물프로에요.

뉴스건 드라마건 인간이 나와서 떠드는 건 별로 보기가 싫고, 제가 좋아하는 건 패션 쇼에요.

 

여자들 패션 쇼, 아름답잖아요.

남자들 패션 쇼도 좋고… 뉴스는 밤 12시 뉴스 조금 봐요.

 

최: 지금 신문들은 어떤 특정 사실에 대한 사설도 서로 정반대로 쓰고 있지요.

 

김: 자기네 이념에 매몰 되어 가지고 한쪽만 보는 거지요.

인간의 현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몰라요.

 

경주마들이 옆을 못 보게 눈가리개 하듯이 자기네 이념의 스펙트럼 안에 들어오는 것만 보고,그러한 언어로 그걸 써요.

 

언론뿐 아니라 그런 적대하는 세력들이 서로 부딪치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지금 질식할 것 같은 답답한 세상이 되었어요.

 

통합적 비전이 보이지 않고, 아귀다툼과 욕지거리, 악다구니, 거짓말 이런 걸로 날이면 날마다 와글와글 해요.

 

그런데 지금 젊은이들은 이러한 이념의 대립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 한류 열풍이라는 것도 어떤 이념의 스펙트럼이 전혀 없어요.

근데 늙은 사람들만 어떤 이념에 갇혀서 아귀다툼 하고 있는 거지요.

 

젊은 사람들은 점점 벗어나고 있어요.

 

최: 젊은 사람이라 함은 어떤 연령대를 말하는 건가요?

 

김: 40대 미만이 아닐까요. 제가 지금 72살인데 많이 산 거지요.

젊은이들은 점점 그런 추세로 갈 거에요.

 

기성 세대는 어느 한편을 쓸어내는 것을 정의라고 생각해요.

저쪽 진영을 없애야 한다는 건데, 정말로 무지몽매한 거에요.

 

최: 작가님은 자신을 실패한 언론인이라고 한 적이 있지요?

 

김: 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73년에 기자생활 시작했는데 74년에 박정희대통령이 긴급조치 선포를 했어요.

 

72년에 선포한 유신만 가지고는 안되니까, 그 시절 전체가 무너진 거지요.

시대가 무너졌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실패한 거지요.

 

물론 그 시대를 저항한 언론인들도 있었어요.

그것까지를 포함해서 언론은 하여튼 실패한 거에요.

그것을 지금의 언론사들이 인정하지 않지요.

 

최: 작가님은 오래 전 어느 잡지와 인터뷰에서 ‘페미니즘’ 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했는데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요?

 

김: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하지만 당시에 내가 거짓말을 안 했다는 것은 다행이라 생각해요.

 

그런 일로 상당히 곤욕을 치른 것은 사실인데 어째든 거짓말 안 한 것을 큰 다행으로 생각해요.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 때의 나의 마초이즘, 이것은 사실이에요.

 

내 본성에 그게 있는데 어떻게 그걸 거짓말을 하겠어요.

거짓말을 하느니 박해를 받아야 한다면 받아야지요.

 

그래서 저는 지체 없이 다니던 회사를 떠났어요.

사과도 안하고, 추호도 머뭇거리지도 않고, 하루도 뭉개지 않고 깨끗이 떠났어요.

다시는 안 돌아왔지요. 그러니까 잘 해결된 거에요. 깨끗하게...

 

최: 작가님의 글은 전체적으로 밥벌이에 대한 말이 많이 나옵니다.

밥벌이의 어려움, 비루함 등이 나오는데 지금은 인기작가로서 밥벌이 문제는 전혀 없겠지요?

 

김: 네, 지금은 밥을 먹습니다.

제가 중학교 때는 우리나라가 최빈국이었고 대학을 66년에 갔는데 필리핀에서 원조를 받았어요.

장충체육관이 그 원조로 지은 거에요.

 

어렸을 때 뒷산에 올라가면 굶어 죽고 얼어 죽은 사람들의 시체들이 있었어요.

대학교 다닐 때 저의 꿈은 소설가가 되겠다거나, 이런 낭만적인 생각은 전혀 없었고, 오직 밥을 벌어 먹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친구들도 비슷했는데 그 시대의 특징은 무서운 빈곤과 독재 정치의 억압이었어요.

여기서 어떻게 탈출하느냐가 우리 청춘의 사명이었지요.

 

이후 우리는 밥에 관한 한 찬란하게 성공했어요.

밥이 넘치는 시대가 되었지요.

 

그 과정에서 우리는 엄청난 비리와 모순과 차별을 저지른 거에요.

밥 먹는 나라를 만드는 과정에서...

 

그것이 우리 사회의 베이직에 깔려 있는 거에요.

그 토대 위에 지금 또 먹이 피라미드가 올라서고 있는 거지요.

 

요새는 제가 글을 써서 밥을 먹고 있지만, 우리 시대의 빈곤의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에요.

국민 소득 3만 달라가 되면 이 문제가 해결 될 줄 알았지만, 빈곤의 문제는 더 구조화 되고, 제도화 된 거에요.

 

우리 어렸을 때는 보편적 가난이었는데, 지금은 양극화 속의 가난이에요.

이것은 우리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해결이 안 되요.

시장의 자유화 속에서 벌어지는 양극화지요..

 

최: 그래서 ‘헬조선’ 이란 말이 생겨난 건가요?

 

김: 그렇지요. 저는 헬조선, 금수저, 갑질 이런 말들이 생겨난 것을 아주 다행이라 생각해요. 

젊은이들의 우리의 문제점을 제대로 보고 저항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들의 이 사회에 대한 보복이 저출산으로 나타나는 거에요.

그 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갑질’일 거에요.

해방 이후 갑질의 뿌리는 유구한 거지요.

 

정권을 잡은 자의 갑질, 빈부 사이의 갑질. 상급자와 하급자의 갑질. 연장자와 연소자의 갑질.

이런 것들이 자꾸 쌓이니까 젊은이들은 견디기 힘들고 애를 안 낳는 거에요.

 

최: 어려서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지요?

 

김: 네, 어려서 노기남 주교님 복사도 하고, 돈암동 성당 복사장이었어요.

 

최: 지금은 가톨릭이나 종교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김: 지금은 제가 신앙인이 아니거든요.

세례명은 있고 부활절이나 성탄절에 성당은 가끔 가요.

신부님이 오라면 가끔 가고…신자는 아니지만.

 

최: ‘흑산’이라는 소설에는 가톨릭이야기가 많이 나오지요?

 

김: 네, 그렇지만 그 소설에서 신앙은 별로 작동이 안되었지요.

당시 사회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제가 흑산에서 쓰고 싶었던 것은 주로 배교의 문제였어요.

천주교 박해 시절에 많은 사람이 순교했는데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배교했어요.

 

하느님을 배반하고, 고문에 의해 배교한 거지요.

 

정다산 같은 사람은 아주 적극적으로 배교했지요.

가톨릭 신자 300명을 밀고했어요. 물론 정다산이 모두 직접 한 건 아니지만.

 

그 소설에 잠깐 나오지만…저는 하느님이 계시다면 배교한 사람도 다 천당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죽도록 고문당하는데, 그래서 하나님을 안 믿겠다고 배교하고, 나와서 비루한 삶을 살아가는데…

 

나는 그러한 사람도 천당에 갈 수 있어야만, 하느님이 비로소 완성 되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그래서 신부님에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내 생각하고 반대인 모양이에요.

 

왜 그렇게 신부님은 너그럽지가 못 한가 싶더라고요.ㅎㅎ

 

최: 이 방, 작업실 이름이 뭔가요?

 

김: '풍화암'요.  허무하게 지은 거지요.

 

바람처럼 없어져 버리겠다는 뜻이지요.

이념이나 사상, 모든 글들이 다 바람처럼 사라지는 암자에요.

 

[크기변환][크기변환]20190711_111256.jpg


 

[크기변환]김훈.jpg   https://www.youtube.com/watch?v=tyfiWWHeh-g&t=24s 

 

 

최: 만약 다음 생을 살 수 있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요?

 

김: 다음 생은… 없는 게 제일 좋은데, 있다면 책이나 글이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어요.

기타 하나 들고 노래나 하면서 살고 싶어요.  한대수처럼.

 

최: 한대수씨의 ‘행복의 나라’가 떠오르네요.

너무 글을 쓰는 작업이 힘들어서?

 

김: 그런 거 보다 책이나 글이라는 것은 불완전한 세계의 모습이지요.

완성 된 세계에서는 음악이나 시간, 이런 것들이 존경 받는 예술이겠지요.

 

음악은 공간과 문자가 필요 없으니까요.

 

언어가 순수성을 상실하면 타락하는 것이고 썩은 언어로는 민주주의가 안 되는 것이지요.

 

민주주의는 소통의 바탕 위에서 가능한데 작금의 현실은 말을 할수록 더욱 단절이 되고 있어요.

 

지금 단절이 거의 완성이 되었어요.

 

TV토론을 봐도, 토론에 의해서 내가 변해야 하는데, 악다구니만 쓰고 서로 적대하는 언어만 쏟아내고 있어요.

토론이 끝나면 자기의 이념이 더욱 완강해 지는 거지요.

 

최: 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론을 보는 시청자들의 안목을 넓히는데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김: 시청자들도 저 사람이 내편인가부터 따지지요.

 

이상한 단어들을 쓰는 게 문제에요.

일례로 목선이 넘어왔을 때도 신문에서 ‘목선이 동해바다를 휘젓고 다녔다’ 이렇게 썼어요.

10m 밖에 안 되는 목선이 어떻게 동해바다를 휘젓고 다닐 수가 있겠어요.

 

또 ‘경찰이 시위군중을 마구 때렸다’라고 쓰는데 마구 때리는 것이 어떻게 때리는 건지 모르겠어요. 

반 죽여놨다는 소리인지 알 수가 없어요. 

 

국회에서 하는 말 보면 진짜 한심하지요.

정치적 언어의 특징은 뻔뻔함이에요.

거짓말을 뻔뻔하게 하면서, ‘이게 정의다’ 라고 말하지요.

 

최: 죽음에 대해 쓴 소설이 ‘화장’인데 영화로도 나왔지요?

작가님은 자신의 묘비에 뭐라고 쓰는 게 좋을지 생각한 적이 있나요?

 

김: 글쎄, 뭐 화장해서 수목장이나 해야지…

인간은 자기의 죽음에 대해서 말할 수 없어요.

 

죽은 사람은 자기가 죽은 것을 알 수가, 경험 할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죽는 게 한심한 게, 지가 죽었다는 것도 모르는 거에요. ㅎㅎ

 

그러니까 그게 뭔지를 모르겠어요..무섭지요.

 

지난 번에 친구들 죽어서 화장 하는 거 가 봤더니, 컨베이어 시스템이 되가지고, 뼈가 한 되 반이 나오는데 가족들에게 봉투에 담아서 나누어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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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화암 벽에 걸려 있는 칠판과 사진

 

최: 한국 경제의 큰 책임을 맡고 있는 재벌 2-3세들, 이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김: 우리나라 재벌들, 지금은 거의 3세들의 시대가 되었지요.

 

그들이 항상 정부에 바라는 것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 달라는 겁니다.

주로 규제 완화에 관한 이야기지요.

 

지금 우리나라 산업 현장에서 안전 사고로 죽는 사람이 1년에 2400명 정도입니다.

전쟁도 아닌데 1개 연대 병력 규모가 매년 사고로 죽는 거에요.

 

최: 건설 현장에서, 비계공 같은 분들이 사고가 많지요?

 

김: 비계공은 추락이지요. 그뿐만 아니라 폭발, 매몰, 압착, 중독 질식 이런 거에요.

 

비계공들은 300명 정도 1년에 죽어요

그 이유는 비계를 설치할 때 엉성하게 하기 때문이지요.

 

사실 비계 설치는 기술적으로 어렵거나, 돈이 많이 드는 일이 아닌데도 허술하게 하는 거에요.

한 번 쓰고 철거하는 1회용이고 하청업자들, 재하청업자들이 하기 때문에 신경을 안 써요.

 

마음만 먹으면 잘 할 수 있는데 마음을 안 먹어.  내년에도 또 2400명 죽어야 해요.

대기업이나 재벌들은 하청을 줬기 때문에 신경 안 써요.

 

여기서 사고가 발생, 즉 누가 죽으면 대기업도 책임이 있는데, 대개 판례를 보니까 5백만원 정도의 벌금을 내요.

그리고 사망자에 대해서는 일용직이기 때문에 보상이 없고 위로금만 주는 거에요.

 

위로금은 회사 마음대로 봉투에 넣어서 주면 그만이지요.

이런 문제를 우리나라 기업이 스스로 해결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반기업적이 아니고 친기업적인 거에요.

오히려 기업을 튼튼하게 하는 것이지요.

 

2400명이 죽는 것을 방치하지 않아야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는 거잖아요.

현재 재벌 2-3세들은 이런 인식이 별로 없어요.

 

문제가 생겨도 하청업자들 책임이니까 더 그런 것 같아요.

이런 일이 많을수록 ‘반기업’ 정서가 커지고 기업하기 어려워지는데 재벌들이 조금만 신경 쓰면 이런 반기업 정서를 줄일 수 있는 거에요.

 

국민들에게 ‘언론이 반기업 정서를 조장한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기업들이 이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런 것을 재벌이나 기업가에게 당부하고 싶어요.

그럼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는 거지요.

 

최: 북한 문제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역시 첨예하게 의견이 갈리는데, 핵을 북한이 결국 폐기 한다고 믿는 쪽과 그럴 리가 없다는 쪽의 다툼입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김: 글쎄요, 그건 너무 어려워서 모르겠어요.

 

다만 통일을 너무 서둘지말고, 적대행위를 중지하고, 경제협력부터 시작해서 시간을 두고 신뢰를 쌓는 것이 좋겠어요.

 

지금처럼 갑자기 판문점에서 누가 만나서 사진 찍는다고 해서 통일이 다가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6 25전쟁은 끔찍한 전쟁이었고 전투 방식은 ‘멸절주의’였어요.

전투 목적을 달성하면 전투를 중지하는 게 아니라 주민까지 씨를 말리는 전쟁이었어요.

 

국군과 인민군이 서로 반대편 주민들을 학살했고 민간인들도 좌우로 나뉘어서 서로 죽였어요.

우리나라 재래적 농촌사회가 ‘인의예지’가 작동 되고, 화목한 공동체였다는 주장은 완전히 거짓말이라는 게 6 25전쟁으로 입증 된 거에요.

 

그 안에 엄청난 증오와 적대감이 쌓여 있었어요.  폭발만 안 했을 뿐이지요.

이런 이야기가 연세대 박명림교수의 책에 잘 나와 있어요. 전쟁 연구하는 학자에요.

 

통일을 말 할 때 이런 것들을 어떻게 해소할 지가 문제지요.

 

70년이 지났지만 지금 남한 사회도 해방 공간의 좌우대결에서 별로 진화하지 못한 거라고 생각해요.

방식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지 아직도 좌우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최: 우리나라의 젊은 소설가 지망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요?

 

김: 현실에 입각한 글을 쓰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사실에 뿌리를 둔, 인간의 일상성, 이런 것들을 잘 들여다 보는 게 중요해요

 

나이를 먹으니까…책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요.

책보다는 사람이나 사물을 들여다 보는 게 훨씬 더 중요하구나 싶어요.

 

인간은 책에서 배운다고 하지만, 간접적인 거지요.

사람, 사건, 사물이나 사태를 통해서 더 크게 배울 수 있지요.

 

책에서는 글자를 배우기 때문에 책으로 배우는 자들은 세상에 대해서 굼뜨게 되요.

직접 반응을 못해요.

 

공부 잘 한 고위 관리들이 책에서 본대로 하려고 하니까 잘 안 되고 답답해요.

젊은이들도 책보다 현실을 더 들여다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최: 작가님은 어떤 책들을 보시나요?

 

김: 저는 사실에 근거한 책들, 기록, 보고서, 다큐먼트, 논문, 역사를 읽어요.

현실에 바탕해서 쓴 글들이지요.

 

소설이나 시는 나올 때 마다 보는 게 아니고 연말쯤 돼서, 올해 뭐 중요한 게 나왔나, 한꺼번에 몰아서 봐요.

 

최: 이번 산문집 ‘연필로 쓰기’도 역시 어휘나 단어 구사력이 탁월한데 어떻게 해야 그런 문장을 쓸 수 있나요?

 

김: 제 글을 좋다는 사람도 있고 좋지 않다는 사람도 있어요.

 

남이 뭐라고 하건 간에 저의 글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필연성이 있는 거에요.

그렇게 될 수 밖에 없고, 달리는 할 수 없는 거에요.

 

우선 자기 자신에게 간절한 것을 쓰면 되요.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되요. 그냥 가야 되요.

 

나는 나를 표현하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이지, 어떤 보편적 진리를 말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에요.

 

인간의 언어라는 것은, 어떤 신문의 칼럼이 좋아 보이지만 그와 정반대로 써도 훌륭한 글이 되요.

거기서도 당당한 논리를 세울 수 있지요.

 

그런 글을 가지고 어떤 보편적 진리를 쓴다고 하면 안 될 거에요.

 

우리나라 신문의 사설도 그 회사의 당파성을 선전하는 거에요.

 

글을 잘 쓴다는 것은 결국 자기에게 간절한 대로 쓸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거기에 약간의 오류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대로 갈 수 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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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작가가 쓰는 연필과 원고지

 

최: 퇴고를 많이 하십니까?

 

김: 잘 써지는 글은 퇴고를 할 필요가 없어요.

어렵게 쓴 글은 퇴고를 해요.  뭔가 처음부터 잘 못 된 거지요.

 

대개 글을 쓴 다음에는 더 이상 들여다 보질 않아요. 지겨워서…

 

최: 그런 간절함으로 글을 쓴다는 게 일종의 극한 작업 아닌가요?

 

김: 그렇지요. 힘들지요.

수다를 떨지 않아야겠다는 것이 내 원칙이에요.

문장을 줄이고, 문장 안에 전압이 있어요. 전압.

 

최: 전압?

 

김: 볼트, 볼티지가 들어 있어야 되요.

읽는 사람이 전기 오르는 것처럼 찌릿찌릿하게…

이런 것은 글을 자꾸 줄이면 전압이 약간 발생해요.

 

최: 마지막으로 지금 구상하고 있는 작품이 대개 어떤 건지 좀 알려주세요.

 

김: 저는 앞으로 장편 소설 3편 정도를 더 쓰면 끝날 것 같아요.

3개로 내 생애를 끝내도 좋다고 생각해요.

 

자연사를 하든지, 일할 수 없는 상황이 되든지…불을 보듯 뻔한 거지요.

앞으로 우리시대의 문제를 쓰고 싶어요.

 

약육강식의 문제라든지, 말이 서로 통하지 않는 문제…

말이 서로 엇물리지 않고 겉돌잖아요.

 

우리나라는 히어링이 안 되요.

듣는 사람이 없어요. 모두 자기 말만 하고 남의 말을 듣지를 않아요.

 

국회에서 보세요.

누가 어떤 문제를 제기하면, 그것에 대한 답변은 안하고 딴 소리 해버리지요.

절대 문제의 본질에 대해서는 답변 안 해요. 엉뚱한 딴 소리 해요.

 

최: 그것도 대단한 기술이지요 ㅎㅎ

 

김: 그래서 그런 것들을 좀 써보고 싶어요.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말의 문제에요.

 

약육강식의 문제, 언어의 타락, 이런 것들을 쓰고 싶어요.

이런 것들이 시대의 문제지요.

 

최: 김훈 작가님,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김: 고맙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opomfslN08&t=16sYou tube

 

[크기변환]김훈대화1.png

일산 '풍화암'에서  2019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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