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이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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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석(多夕) 사상으로 풀어낸 종교간 소통, 윤정현신부 : “만약 기독교가 동쪽으로 먼저 진출했다면 다석의 사상과 비슷한 …

wy 0 2019.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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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산골짝 움막 집에서 윤정현신부를 만났다.

 

전기, 수도가 없는 산속에서 주변의 돌을 하나씩 고르고 진흙을 으깨어 2평 반짜리 집을 손으로 올렸다.

 

영국 버밍엄 대학에서 다석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성공회 신부’라는 울타리를 벗은 지  오래다.

 

야산을 가꾸며 염소 10마리를 키우고 아무 때나 배고픔을 느끼면 밥을 먹기에 하루 식사는 한두 번이다. 

 

이제 모기에 물려도 별로 가렵지 않다며 빙그레 웃는 그의 얼굴이 건강한 구리 빛이다.

 

그림자를 되돌아 본다’는 그의 집, 고영재(顧影齋)에서 질문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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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재

 

최: 전북 고창 호암 마을, 우뚝 솟은 기암 괴석이 참 특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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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 마을

 

윤: 하늘에서 본 호암 마을은 선인취와혈 (仙人醉臥穴-신선이 취해서 누워있는 혈자리)입니다.

 

조선시대 유학자 변씨 형제가 머물렀던 두암 초당이 있고, 마치 술병을 거꾸로 놓은 것 같은 병 바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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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암초당- 아래부분 약간 왼쪽 

 

호암(壺巖- 호리병 모양의 바위) 이라는 마을 이름도 여기서 나왔는데 보는 각도에 따라 사람 얼굴로도 보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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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암 (병바위)

 

고창은 복분자와 풍천 장어가 유명한데 복분자의 열매를 뒤집어 보면 바로 오강 뒤집은 모양입니다. ㅎㅎ

 

여기가 얼마 전 UNESCO 생명 보존 지역으로 선정되어서 환경 보존이 철저합니다.

 

 

최: 이곳 만평 넘는 땅에 좋은 계획이 있으시지요? 

 

윤: 영성 공동체를 만들 계획입니다.

 

고창이 동학 혁명의 시작이니 ‘인내천’

다석을 공부하니 ‘씨알 사상’

이현필의 ‘가난한 사람 배려와 사랑 실천'

 

위와 같은  3가지를 영성 공동체의 모토로 삼고 종교의 벽을 넘어서, 서로 소통하고 화합하는 공동체를 만들 계획입니다.

 

공해 없는 이곳에서 벌을 쳐서 꿀을 따고 양을 키우면서 농사일은 하루에 4시간 이상은 안 하렵니다.

 

풀 뽑기가 너무 힘들어요. ㅎㅎ

 

 

최: 성공회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중간 정도인가요?  

 

윤: 성공회는 성경을 믿으면서 동시에 인간의 이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은혜라고 덮어버리는 게 아니라 따질 건 따지지요.

 

논쟁을 하고 합의를 해서 총회에서 발표 합니다.

 

성공회는 딱 잡히는 교리가 없고 전통과 개혁을 같이 합니다.

 

천주교나 정교회를 'traditional church'(전통교회)라고 하고 개신교를 'reformed church'(개혁교회)라 합니다. 

 

이러한 표현을 성공회에 적용한다면 'traditional and reforming church'라 할 수 있어 성공회는 일종의 진보적 카토릭(progressive chatolic)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traditional and reforming 이라 좀 애매해요.

 

한국에서는 뭔가 확실해야 인기가 있는데 성공회는 그렇지 못하지요 ㅎㅎ

 

 

최: 윤신부님은 이제 성공회에서 떠나셨나요?

 

윤: 저는 어느 종교의 교리라도 그 교리 자체는 진리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진리를 담는 그릇일 수는 있지만요.

 

교리, 신념 체계가 신자들을 가두어 두니까 거기서 해방되야지요.

 

 

최: 그럼 그 동안 성공회 신부로서 갈등이 좀 있으셨겠네요?

 

윤: 아니요, 그 전에는 교리에 아주 충실했지요.

 

교리가 다 인줄 알고요. ㅎㅎ

 

그러다 어느 순간 제가 하는 일이, 남을 나의 삶의 방편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이를테면 사제는 신자들이 어렵게 헌금하는 것을 막 쓰거든요.

 

옛날 조선 시대 출세한 양반들처럼요.

 

‘아, 이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나를 위해 신자들에게 헌금하라고 감언이설 하는 제 모습을 보았지요.

 

그러다 다석을 공부하고, 그분 말씀대로 여기 들어와서 살아보니까 신도들이 얼마나 고생하면서 헌금하는지를 알겠어요.

 

 

최: 신부님의 호가 다석을 따라서 ‘선석’인데 다석에 대한 공부는 언제 하셨나요?

 

: 영국에서 박사 논문을 쓸 때 처음에는 ‘존 힉’에 대해 쓰려고 했어요.

 

존 힉은 버밍엄 대학에서 ‘종교간의 대화’라는 주제로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학자지요.

 

그의 강의에 성공회는 물론 불교, 힌두교, 시크교, 무슬림 등 여러 종교의 신도가 같이 참석합니다. 

 

그러던 중 다석이 존 힉의 경지를 넘어서는 것을 발견했어요.

 

예수님 가르침은 단순 했는데 서쪽으로 진출하여 그리스 철학, 로마의 법, 영국의 문화, 미국의 경제 체계와 혼합되었지요.

 

만약 기독교가 동쪽으로 먼저 진출했다면 다석 유영모의 사상과 비슷한 신학이 되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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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석 류영모(多夕 柳永模.1890~1981)

 

최: 다석 유영모선생은 어떤 분인가요? 

 

윤: “우리 시대의 성자는 종교의 창시자인 부처, 예수, 무하마드와 같은 사람들이 아니다.

 

 자기 자신의 종교에서 출발하여 타 종교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다시 새로운 안목으로 타 종교 관점에서 자기 자신

의 종교를 이해하는 사람, 예를 들어 간디와 같은 사람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석도 우리 시대의 성자라고 볼 수 있겠지요.

 

다석은 자신이 직접 타 종교와 교통하면서, 어떤 종교에도 구애 받지 않았으나 예수님을 평생 모셨던 통종교인(通宗敎人)입니다.

 

남강 이승훈선생이 만든 오산학교 교장을 하셨고 1928년부터 YMCA 연경반(硏經班) 모임을 지도하기 시작하여 35년 간 계속 강의 하셨지요.

 

김교신, 함석헌, 이현필, 류달영, 김흥호 같은 이들이 다석을 따르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최: 왜 다석을 통한 종교간 화합인가요?

 

윤: 제가 아는 어느 기독교 사상가나 신학자보다 그 분의 사상이 깊기 때문입니다.   

 

다석의 ‘상호 보완과 조화’ 라는 사상은 불교나 노장 사상과 유사하게 느껴지지요.

 

그러나 저는 다석이 아주 비범한 기독교인이라 생각합니다.

 

그의 기독교 사상은 동양적 사고로 하느님을 접근할 수 있는 영감을 저에게 제공해 주었습니다.

 

다석은 기독교의 하느님 개념을 성리학의 태극(太極- 특히 장횡거의 절대자 개념), 불교 사상의 무(無), 그리고 노장 사상의 ‘하나’(太一)와 같은 개념으로 해석하였지요.

 

그는 뛰어난 통찰력을 가진 종교적 천재이자 사상가였습니다.

 

 

최: 종교간 대화는 왜 필요한가요?

 

윤: “종교 평화 없이 세계 평화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 가운데서 다른 종교인들과 몸을 부대끼며 삽니다.  

 

저 역시 교회 사목 활동을 하면서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때때로 세상 일을 성리학적인 사고로 판단하고, 간혹 불교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서로 다른 종교 체험이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를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지요. 

 

이러한 경험을 하게 되면, 사실 종교간 대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할 필요도 없습니다.

 

 

최: 윤정현 신부님에게 종교간의 화합은 어떻게 다가왔나요?

 

윤: 그 동안 저의 삶 속에서 다른 종교를 이해하도록 영향을 준 사건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학생 운동 후 감옥에서 불교 신자와의 만남과 이후 한학자와의 만남,

 

과거 민주화 투쟁 과정 속에서 기독교의 사회 참여와 민중 신학과의 만남,

 

한국 기독교 교회 협의회에서 교육 훈련부장으로서 동유럽교회, 러시아 정교회 방문,

 

마지막으로 영국 유학 생활에서 체험한 타 종교와의 대화 프로그램은 이 모든 경험을 통합시켜 주었지요.

 


최: 사제 활동 중 종교간의 갈등을 경험한 적이 있으신가요?

 

윤: 성공회 신부가 되어서 충북 청원에 있는 조그만 마을 교회의 사제로 내려갔지요.

 

신자들은 대부분 노년층이었고 젊은이들은 찾아보기 힘들었어요. 

 

약150호 가구가 있었는데 기독교, 불교, 유교, 민속 신앙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기독교인을 제외하고는 모든 종파가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서로 화합하며 지냈지요.

 

기독교인들은 민족 문화에 대한 배타심이 강하고, 다른 종교인들을 공격적으로 개종하려 해서 동네 사람들이 기독교인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어요.

 

저는 31년 동안 교회 일을 하면서 한 가정에서 서로 다른 신앙 때문에 생기는 가족 간의 갈등을 여러 번 보았어요.

 

예컨대 교회 나가는 며느리가 절에 다니는 시어머니와 시동생에게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갑니다!”라고 한다면   

집안 분위기가 좋을 리가 없지요.

 

 

최: 장례식에서도 종교 갈등이 첨예하게 나타나지요?

 

윤: 시골 교회에는 노인들이 많아서 자주 장례식을 치르지요.

 

장례가 있을 때마다 집안에서 장례 절차 문제로 서로 의견이 대립됩니다.

 

저는 죽은 자의 장례 절차가 중요하다고 생각치 않아서, 그 집안 사람들이 서로 협의하여 절차를 결정하도록 하였습니다.

 

동네 사람들도 자신들이 참여할 부분을 성실히 함으로써 역할 분담이 되었고, 동네 관습과 교회식이 묘한 조화를 이루었어요.

 

한 마을에서 인간은 평화롭게 함께 살아야 한다는 점, 그리고 우리 전통 문화가 나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발전시켜 나가야 할  문화 유산이라는 점을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했지요.

 

무조건 서양식, 기독교식은 좋고 우리 것은 열등하다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교인들이 서서히 나의 말에 공감했지요.

 

교황과 대주교.jpg

로마 가톨릭 교황과 동방 정교 총 대주교

 

최: 몇 년 전 가톨릭과 동방 정교의 화합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터키에서 동방 정교회 총 대주교가 집전하는 예배에 참석했지요.

 

1054년 서로를 파문하며 갈라진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의 두 수장은 이 자리에서 두 종교의 화합을 강조했습니다.

 

두 종교의 천 년 갈등을 끝내자는 공동 선언문에도 서명했습니다.

 

영국에서는 종교간의 대화나 화합을 어떻게 실행하는지요?

 

윤: 성공회 해외 선교부의 초청을 받아 영국 셀리옥 칼리지에서 종교간의 대화에 대한 논문을 썼습니다.

 

종교간의 대화 프로그램에도 참석하였지요.

 

힌두교의 아쉬람(Ashram), 불교의 정사(Vihara), 이스람의 사원(Mosque), 시크교의 템플(temple) 등 신앙 공동체를 방문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그들의 종교가 가르쳐 준 대로, 선하고 신실하게 살아 가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한국에도 몇 번 온 ‘다마’ 스님은 종교인들이 다른 종교를 이웃 종교로 생각하고 형제 자매의 사랑을 가지고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종교간 대화를 위해 무엇이 중요한가?" 라는 나의 질문에 다마 스님은 세 가지를 강조하였어요.

 

1) 서로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종교의 경전을 공부해야 한다.

 

2) 서로의 신앙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는 타종교인들과 대화를 자주 가져야 한다.

 

3) 종교가 출발하게 된 본래의 정신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제도적 종교를 갱신해야 한다.

 

이런 분들을 만나면서, 타 종교를 이해함으로써 자신의 종교를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진리의 길을 걷는데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 받게 된다는 것을 알았지요.

 

하느님은 모든 종교 안과 밖에 존재하고, 어느 종교의 교리에 갇혀 있지 않는 분입니다.

 

모든 교리와 종파를 넘어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이해하면서, 나는 모든 인류가 하느님의 아들, 딸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최: 仙夕 윤정현신부님, '종교간의 대화'라는 어려운 주제를 잘 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윤: 이런 산골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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