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돌님을 만나러 일산에 왔다.
일산 시내 낮은 산, 벚꽃 나무가 내려다보이는 정자 밑에서 김밥과 막걸리를 먹으며 오후 내내 대화를 나누었다.
공기는 전 날 내린 비로 싱그러웠고 편안한 구름이 걸려있는 산마루에는 봄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의 얼굴을 온화한 바람결이 감싸 돌았다.
홀로 아리랑, 조율, 개똥벌레 등 한국의 정서를 물씬 풍기는 독특한 노래를 많이 만든 한돌님에게 최근에 출판한 책에 대해 먼저 물었다.
최: 한돌님, 반갑습니다. 얼마 전 책을 한 권 내셨지요.
책의 제목이 ‘꿈꾸는 노란 기차’인데 어떤 내용인가요?
한: 네. 백두산 여행에 대한 일종의 기행문입니다.
하지만 사실 이 책은 한마디로 저의 반성문입니다.
최: 한돌님은 그동안 잘못한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무슨 반성문인가요?
한: 그동안 제가 노래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다녔는데 나중에는 노래를 배신했어요.
최: 배신요?
한: 네, 그러니까 노래를 하나의 도구로..처음부터 그렇게 하려고 한 건 아닌데, 나도 모르게 게을러져서 그렇게 되었어요.
그래서 거기에 대한 반성문입니다.
최: 네, 알겠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꿈을 사랑한다면 꿈을 잊어야 하나니 앞으로 봉우리에 오르지 않으리라.
봉우리는 올라서는 기쁨이 아니라 바라보는 슬픔이다.”
이 말에 대해 조금 더 설명을 해 주시겠어요?
한: 네, 사람들은 누구나 꿈을 이루고 싶어 하고 정상에 오르고 싶어 하지요.
이런 마음이 잘못이라는 게 아니라 가만 생각해 보면, 누구든 정상에 오르면 내려와야 하는데
계속 머무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정상에 오르는 것에 대한 집착이 부질없는 것인데 그것에 얽매여서 산 세월, 저를 포함해서..그것이 아깝고 후회가 되는 겁니다.
또 정상에 올랐다고 쳐도 거기서 기쁨을 누리는 시간이 얼마나 되겠는가..그것을 생각해보면 멀리서 봉우리를 바라보는 게 더 행복하다는 생각이지요.
실제로 정상에 오르면 봉우리 전체가 잘 보이지가 않지요.
봉우리가 발 밑에 있기에..그래서 정상에 오르는 것이 슬픈 일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기쁨으로 생각하지요.
최: 네. 좀 어려운 말씀이네요.ㅎ
한: 아니요. 쉬운 이야기를 제가 말을 어렵게 해서 어려워진 겁니다.ㅎ
최: 한 번 더 질문을 하자면, 봉우리를 바라보는 것이 더 행복하다면서 왜 바라보는 슬픔이라고 하셨나요?
한: 그 것은 제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바탕을 슬픔으로 생각해서 그런 거지요.
제 노래의 바탕도 슬픔이에요..
말하자면 땅이 있어야 꽃이 피는데 그 땅이 슬픔인 거지요.
사람들은 꽃을 기쁨으로 생각하니까.. 저는 그 기쁨의 바탕인 땅을 슬픔으로 보는 거지요.
이 세상의 모든 기쁨은 슬픔에서 나와요.
산이 없으면 봉우리도 없는 거예요.
봉우리를 멀리서 바라보면 슬픔을 뚫고 나온 꽃 같아요.
그래서 봉우리는 올라서는 것보다 바라볼 때가 더 좋다는 거지요.
최: 네, 이 책을 읽어보니까 겨울 백두산을 오르다 발을 잘못 디뎌 낭떠러지로 떨어진 아찔한 순간도 있더군요.
한: 네 번 째 갔을 때였지요.
그냥 쭉 떨어져서 정신을 잃었다면 몰랐을 텐데 10m를 미끄러지다 보니 더 무서웠어요.
다행히 바위에 걸리긴 했지만 그 뒤부터는 백두산이 무서워졌습니다.
마지막 다섯 번 째는 ‘ᄐᆞ래’ 를 찾으러 가기는 했습니다만..
최: 네. 그랬었군요.
한돌님은 스스로 만든 노래들을 ‘ᄐᆞ래’ 라고 이름 지었는데 무슨 뜻인가요?
한: 인디안들이 자기 물건에다 이름을 지어주듯이 저도 제 노래한테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어요.
최: 네, 그렇군요. 혹시 타령과 노래를 합친 이름 인가요?
한: 그건 아니고요. 가야금을 ‘타다’ 뭐 이런 것도 아니고요..
가만 생각해보니 사람들이 추위를 타다, 더위를 타다 뭐 이런 말을 하는 거에요.
사전을 찾아보니 ‘ᄐᆞ다’가 느끼다 라는 뜻이더군요.
그래서 노래의 ‘래’자를 붙여 ‘ᄐᆞ래’로 결정했지요.
그냥 타래라고 하면 실타래가 되니까 반드시 ‘ᄐᆞ래’라고 해야 해요.
최: 예전에 우리가 미국 포크송을 들으며 느꼈던 그런 감성 같은 것이겠군요.
한: 그러니까 포크송에 대한 우리 노래 양식이라고 하면 좋겠네요.
사실 우리나라 유행가를 트로트나 뽕짝이라고 하는데 이 역시 새로운 이름을 지어 줬으면 좋겠어요.
최: 네 그렇군요.
한: 근데 지금 제가 인터뷰를 잘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최: ㅎㅎ 네, 그럼요.
이제 한돌님의 노래 몇 곡, 아니 ᄐᆞ래에 대한 질문을 좀 하겠습니다.
한돌님의 ᄐᆞ래는 대개 몇 가지 주제랄까, 내면에 흐르는 정서가 있습니다.
일등이 아니라 꼴등에 대한 애정, 환경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각성, 한국의 정서와 통일에 대한 천착 등을 주제로 여
러 노래를 만들고 불렀습니다.
개똥벌레, 조율, 홀로 아리랑이 각각 대표적인 노래인데요..
먼저 홀로 아리랑이란 노래의 제목을 왜 ‘홀로’ 라고 했나요?
홀로 아리랑: https://www.youtube.com/watch?v=0VX-dqDjJPo
한: 그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제가 아리랑을 찾아서 백두산, 지리산을 간다거나 독도를 가면 그 곳에서 전래 되어 내려오는 노래 ‘아리랑’을 찾으러 가는 것으로 오해 하는 분들이 있어요.
아리랑은 좁게 보면 노래지만 저는 한국 고유의 정서를 아리랑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서 좀 어려움이 있는데, 사실 저는 아리랑 학자도 아니고 또 아리랑한테 혼날까 봐 노래제목에 아리랑을 붙이지 않았어요.
지금까지 노래제목에 아리랑을 붙인 건 홀로 아리랑과 뗏목 아리랑인데 이 두 곡은 어쩔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저에게 한 질문, 왜 ‘홀로 아리랑’이란 제목을 붙였느냐에 대한 대답도 마찬가지에요.
노래 가사로 보면 독도 아리랑으로 해야 하는데 그 역시 독도에 편승하고 싶지 않았어요.
다행히 독도가 남북을 홀로 지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독도가 혼자서 아리랑을 부르면 남북이 같이 부를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렇게 되면 독도는 외로운 섬이 아니라 이 나라의 수호신이 되는 거지요.
하지만 제목을 그렇게 하는 바람에 이 노래가 독도 노래로 알려지기까지는 20년 걸렸어요.
최: 네 그래도 결국 남북한이 같이 부르는 통일 노래가 되었습니다.
한돌님, 이번에는 조율 이란 노래에 대해 말씀 좀 해주시지요.
조율: https://www.youtube.com/watch?v=0zqIDv08SLA
한: 이 노래는 처음에는 환경에 대한 고민으로 시작 했는데 나중에는 사람으로 연결되었어요.
사실은 어느 날 느닷없이 모래사장에 뭐라고 썼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게 ‘하나님 조율 한 번 해주세요’ 라는 글씨였어요.
최: 그 때 잠자는 하늘님 이라고 썼나요?
한: 아니요, 그 땐 그냥 하느님이라고 썼는데 아침에 보니까 글자가 없어졌어요.
그래서 하느님이 잠자고 있나 하는 생각이 문득 났어요.
나중에 노래가 많이 알려지자 어느 목사님이 전화를 하셨어요.
“당신이 하느님이 잠자고 있는 걸 봤냐”고 하면서 화를 냈어요.
최: 그래서 뭐라고 하셨나요?
한: 그런 뜻으로 쓴 건 아니지만 그냥 죄송하다고 했어요.
최: 이 노래는 간혹 광장의 정치적인 집회에서도 부르지요?
한: 노래를 부른 가수에게는 고마운데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노래가 돼서는 안 되지요.
뭐냐 하면 광화문에서 ‘잠자는 하늘님’ 이라고 노래하는데, 그 해석의 차이가 있어요.
사실은 잠자는 하늘님은 하늘에서 자고 있는 하느님이 아니에요.
사람한테 하는 이야기에요.
그런데 ‘잠자는 사람들이여’ 하면 노랫말이 안 되요. 설득력도 없고, 내가 건방진 사람 되지요.
우리가 말하는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분이 아니고 사람 속에 있다고 생각하며 만든 노래에요.
내 눈 앞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이에요.
그 중에 혹시 잠자는 사람 있으면 일어나서 세상을 보라 이거에요.
조율은 사람이 해야지요..그런데 말로는 이렇게 설명할 수 있지만 노랫말만으로는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최: 조율의 ‘하늘님’이 그런 뜻이라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한: 아무도 물어보는 사람이 없어요.
저는 종교가 없는데, ‘하느님’이란 말을 이제 좀 알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가 이제까지 많은 도움을 받아서 컸는데..그러니까 제 아내랄지, 주위 분들의 도움을 받았는데, 또 다른 누군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 왜 하느님이라고 안 하고 하늘님이라고 썼나요?
한: 이 부분은 가사의 발성에 해당하는 부분인데 ‘하늘님’ 해야 똑 떨어지는 발음이 돼서 부르기 쉬어요.
여하튼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하늘의 하느님에 억매이지 말고 하나님이 바로 우리 자신 안에 있다는 거지요.
이 노래는 처음 시작이 환경이었기 때문에 특히 종교나 정치와는 상관이 없어요.
최: 네, 알겠습니다. 이제 ‘개똥벌레’ 라는 노래, 가장 먼저 알려진 노래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노래지요.
개똥벌레: https://www.youtube.com/watch?v=xdqlPJm78f8
한: 이 노래는 처음에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어요.
왜냐하면 제목에 똥 자가 들어간다고 그랬어요.
백과사전을 찾아서 개똥벌레가 ‘반딧불이’ 라고 해명을 했지요.
최: 1980년대니까 그럴 수 있겠네요.
한: 당시에 아버님이 성남에서 작은 약방을 하고 계셨는데 골목에 영세 공장이 많았어요.
공장을 바라보면 깜빡거리는 형광등이 많았지요.
어느 날 깜빡이는 형광등을 보는데 개똥벌레가 떠올랐어요.
공장 노동자들이 잠 안 오는 약을 사러 오는데 아마 일도 하고 공부도 하고 그랬겠지요.
약방에 있으면서 그들과 대화를 하게 되는데 모두 10대여요.
바로 우리 동네에 그렇게 많은 개똥벌레들이 있는 줄 몰랐어요.
가난한 자의 외로움이나 풍요로운 자의 외로움은 같을 수 있으나 가난한 자의 외로움에서는 향기가 나지요.
반딧불이가 빛을 내는 것처럼 말입니다.
최: 한돌님의 노래들이 오늘 다시 들리는 듯합니다.
올해가 2019년인데 한국의 정치가 이 노래들을 만든 때와 비교해서 얼마나 발전한 것 같나요?
한: 저는 정치는 잘 모르지만 정치인들이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최: 그들은 선거에서 표를 얻어야 하니까 그렇겠지요.
한: 앞에 나서지 않는 사람이 정치인이 돼야 해요.
앞으로 그런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최: 네, 이제 홀로 아리랑처럼 우리 모두의 진정한 화합을 이루고 지키는 사람이 많이 나오길 바랍니다.
오랜 시간 한돌님의 노래와 삶에 대한 속내를 많이 들었습니다.
오늘 정발산 중턱의 바람결이 유난히 고운 것 같습니다.
한돌님이 가져오신 막걸리도 잘 마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원영님, 여기까지 오셔서 고맙습니다. 정발산에게도 고맙습니다.
일산 정발산에서 막걸리 마신 후 2019 4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