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이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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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멘토, 관옥 (觀玉) 이현주: 원래 벙어리가 꿀을 먹어서 말을 못하는 게 아니라 꿀을 먹었기 때문에.. 하! 그 오…

wy 0 2019.07.07

 

 


[크기변환]KakaoTalk_20190527_174620884b.jpg

 

전남 순천은 용산 역에서 KTX로 두 시간 반 거리였다.

 

호우주의보가 호우경보로 바뀌면서 남쪽으로 갈 수록 억센 비를 뿌렸지만 이 시대의 멘토 이현주선생을 만나러 가는 마음은 산뜻했다.


그의 부인이 주관하고 연주하는 바로크 음악을 순천대학 강당에서 듣고, 다음 날 오후 시내 골목에 있는 '말씀과 밥의 집'을 찾았다.

 

선생은 잔잔한 미소로 필자 일행을 반겨주었다.

 

최: 이현주목사님, 반갑습니다. 

목사님은 동서양 사상을 아우르며, 기독교는 물론 유불선을 관통하는 많은 책을 쓴 저술가이자 번역 문학가이시지요.

 

또 이미 196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등단하신 아동 문학가이며 시인이십니다.

오늘은 제가 ‘선생님’으로 호칭 해도 되겠습니까?

 

이: 네, 그럼요.

 

최: 선생님은 1968년에 ‘기독교세계’라는 잡지사에서 근무하다가 해고를 당하셨습니다.

당시에 어떤 일이 있었나요?

 

이: 아, 아주 오래 전 일이네요..50년이 넘었군요.

그 때 제가 감리교에서 발행하는 잡지 ‘기독교세계’에서, 당시에는 그런 말도 없었지만 ‘비정규직’으로 근무했었습니다.

 

그 잡지의 발행인은 감리교의 최고 어른인 감독이었지요.

어느 외부 필자가 감독을 비판하는 글을 잡지사로 보내왔고 그대로 실렸습니다.

 

사실은 편집자들이 그런 글이 들어오면 본인에게 좀 읽어보라고 할 만도 한데 그냥 나간 거지요.

이후 그쪽에서 어느 분이 3일을 계속 사무실에 나와서 너무 심하게 나무라는 거에요.

 

당시 저는 그냥 심부름꾼으로, 그러니까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존재였는데 제가 대들었지요.

그 분은 교회의 원로이고 장로님이라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어요.

 

주위 분들이 말려서 일단락은 되었지만 결국 해고 되었어요.

저를 고용한 분이 “미안하지만 자네가 사표를 써야겠네” 해서 “저 사표 못씁니다. 저한테 언제 임명장 주셨나요?” 했지요. ㅎㅎ

 

그리고 그냥 나온 거지요.  아주 젊을 때 이야기입니다.

 

 

최: 선생님은 觀玉(관옥), 二吾(이오), 无無(무무),  ‘이아무개’ 등의 호나 필명이 있으십니다. 

 

‘관옥’은 무위당선생이 지어주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이: 그걸 주시면서 별로 설명은 없으셨어요.

볼 관자에 구슬 옥자인데..한마디 말씀이 “이 옥을 돌이 아니라 구슬로 보면 좋겠다”라고 하셨어요.

 

그 외에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는데, 제가 혼자 해석하기에는 완벽한 구체는…아마 하나님이란 존재를 형상화 한다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모든 별들이 동그란 것처럼..그러니까 ‘하나님을 보라는 말씀인가 보다’ 이렇게 생각도 해봤습니다.

 

 

최: ‘이오’ (二吾)는 언제 쓰셨나요?

 

이: 이오는 관옥 전에 썼지요.

 

제 친구와 여행을 하다가, 그 친구는 버스 창가 쪽에, 저는 통로 쪽에 앉아서 둘이 가는데, 갑자기 나 吾(오)자에 두 二(이)자를 써서 ‘이오’ (二吾)라고 나를 부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왜냐하면 내가 둘이란 것은 알고 있는데, 그 둘이 좀 사이 좋게 지냈으면 좋겠다, 뭐 이런 생각이었겠지요.

 

그런데 그 친구가 갑자기 “내가 이름 하나 줄까” 하는 거에요.

그러면서 “두 이자에 나 오자 어떠니?” 했어요.

 

 

최: 아, 그럴 수가 있나요?

 

이: 그래서 제가 속으로는 좀 놀래면서 그렇게 하겠다고 했지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또 그 친구와 같이 버스를 타고 오게 되었습니다. 

오면서 친구가 “저기 좀 봐라” 하는데 어느 사당의 현액에 ‘이오당’ 이라고 써있는 것이 보였어요.

 

그러니까 친구는 그것을 보고 '이오'라는 이름을 제안한 거였어요. ㅎㅎ

여하튼 재미있는 이야기지요..

 

 

최: 만약 그 분이 현판을 안 봤으면 완전히 텔레파시라고 할 수 있었겠네요.

 

하지만 그때 생각하신 ‘이오’가 마침 현판에 써 있었던 것도 참 묘한 일이었네요.

 

이: 그렇지요. 모두 인연으로 봐요. 그 이름과의 인연이지요.

 

우리들이 오늘 여기 이렇게 만나서 대화 하는 것도 인연이 닿아서 만나는 것이지요.

인연이 닿으면 안 만날 수 없고 또 그게 다하면, 끝나면 안 헤어질 수 없는 거지요.

 

저는 인생이 그런 거라고 봐요. 이름도 그렇지요.

 

무위당선생님이 제자들에게 이름을 잘 주시지 않고, 제가 청탁도 드리지 않았는데 어느 날 ‘관옥’이란 이름을 주신 것을 보면 이름과도 인연이 되면 만나는 거지요.

 

[크기변환]관옥1.jpg유투브1- https://www.youtube.com/watch?v=GYvHNRaMmrE&t=115s 


 

 

최:그 동안 이렇게 여러 이름들을 쓰셨는데 지금 현재, 선생님은 자신을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 하, 굳이 말한다면…사람…사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그거 좀 알고 싶은 사람이지요.

 

내가 누군지 알고 싶은 것과 상통하는 거지요.

그런데 모르니까 배워야 하잖아요.

배우는 방법은 스승을 모시는 수 밖에 없지요.

 

저는 그래서 어려서부터 어머니 덕분에 알게 된 예수라는 분을 스승으로 모셨고 한평생 그렇게 살고 있어요.

 

그래서 ‘너는 누구야?’ 라고 묻는다면 ‘예수의 제자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요.

 

 

최: 예수님이 자신의 스승이라는 의미 외에 다른 의미는 없나요?

 

이: 음..어쩌면 예수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 하실지도 모르지요.

 

“네가 나를 선생으로 생각한다면 네가 나의 제자가 되겠지만 그건 네가 결정한 거지.

그건 네 마음이지만 나하고는 관계가 없다” 라고요. ㅎㅎ

 

또 어쩌면 “내가 너의 선생은 아니다…네가 몰라서 그렇지 내가 바로 너야~ ”라고 하실지도..

 

 

최: 아까 ‘이오’에 대해서 자신이 두 사람이라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이: 하나는 이렇게 보이는 나.

하나는 안 보이는 나. 아까 말한 사람, 사람의 아들.

 

예수님이 스스로 아브라함보다 먼저 있었다고 한 것은 사람의 아들이니까 가능했지요.

내가 사람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사람이 나라고 하는 사실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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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선생이 낸 책들 

 

최: 선생님은 많은 분들의 멘토로, 이 시대의 영성가로 불리시는데 영이나 하나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아, 그거는요..제가 영이 무엇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다..

이런 이야기는 감히 제 입으로 말할 수가 없는 거에요.

 

그건 모른다고 하는 게 맞지요.

‘내가 모르니까 없다’ 라는 것도 말이 안되고요.

여하튼 저는 정말 모릅니다. ㅎㅎ

 

모른다는 사실이 부끄럽지도 않고, 뭐 자랑할 것도 아니지만..

만약 제가 영이 무엇인지 정말 안다면…

 

아마 제한 된 이 육신에서 해방 될 때..그 때 알 것 같아요.

이 육신을 가지고 살고 있는 한 영을 안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최: 이번 질문은 좀 쉬울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부인 용미중님에 대해 말씀 좀 해주세요.  

 

이: 아주 재미있는 사람이에요. ㅎㅎ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거절하지 않고, 도망 다니지 않고, 곧장 걸어온 사람이라고 할까요..

 

쉬운 길은 아니겠지요.

인간에게 주어진 길, 산다는 것 자체가 쉬운 길이 없겠지만..

 

육체를 가진 사람으로서 밑바닥, 밑바닥이라고 하는 게 있어요.

그 것을 한 번 치고 올라온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밑바닥은 어떤 면에서 죽음과 비슷한 거라고 볼 수 있겠지요.

하늘을 바라 볼 수 밖에 없는, 하늘에서는 아무 말도 없고..

 

저도 그런 때가 있었기 때문에 어느 면에서 서로 잘 통하기도 하지요.

제 말이 뭐 맞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어요 ㅎㅎ

 

여하튼 저 사람의 어려서부터 이야기를 들어보면 재치 있고 발랄하고..끼라고 하나요..예술적 끼가 많고..

이런 것들이 이제부터 더 피어나는 것 같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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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에 용미중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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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그림으로 수놓은 바로크 선율: 용미중  황은아  우희자  송윤지( 좌로부터, 존칭생략)  순천대학 우석홀에서  2019 6 29

 

최: 선생님은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내 의지로 온 게 아닌 것처럼 사람은 언제든지 가니까 그것은 당연하고, 피하거나 꺼릴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태어난 이상 가야하는데 그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까 절망스럽고 피하고 싶겠지요.

 

저는 죽음을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요...변화가 시작되는, 또 하나의 출구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제가 태어날 때 부모님이나 친척, 주위 사람들이 모두 저를 기다렸던 것처럼, 제가 죽는 날 저쪽 세계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또 잘 왔다고, 그 동안 고생했다고, 환영 해 줄 것 아닙니까..

 

 

최: 기독교적인 내세에 대한 말씀인가요?

 

이: 그건 저는 잘 모르겠어요.

 

이런 생각이 어떤 종교의 가르침인지에 대한 관심은 이상하게 별로 없어요.

 

그 가르침이 진짜냐 가짜냐가 중요하지 그것을 누가 가르쳤느냐는 큰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즉 “이것이 부처님 말씀이다, 예수님 말씀이다” 보다는 그 말이 진실이냐가 중요하지요.

 

이것을 알아 보는 방법은 머리로는 안 되고 그대로 해 보는 수 밖에 없지요.

 

제 스승님의 사모님이 돌아가셨는데 그분의 일기에 “나는 생일이 3개 있다. 세상에 태어난 날, 예수님을 만난 날, 그리고 마지막 생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써 있었어요.

 

저도 동감이지요..제가 죽는 날은 다시 태어나는 날이지요.

 

태아의 탯줄을 끊어야 신생아가 살 듯이 이 육신이 없어져야 나, 죽지도 않고 형체도 없는 이런 나가 살지요.

 

 

최: ‘참나’, ‘진아’라는 단어 등을 대승 불교에서는 쓰고 있지요.

 

이: 네, 할 수 없이 그런 말을 쓰지요.

하지만 참나를 진짜 지금 알았다면 설명 할 방법은 없어요.

 

설명하면 내가 아는 것이 아니에요.

꿀 먹은 벙어리가 맞아요.

 

원래 벙어리가 꿀을 먹어서 말을 못하는 게 아니라 꿀을 먹었기 때문에..

하! 그 오묘한 꿀맛을 설명할 수가 없어서 말을 못 하는 거에요.

 

아는 사람이 말을 못 한다는 이야기가 그래서 맞지요. 모르면 몰라서 말 못하고..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저처럼 말 많이 하지요. ㅎㅎ

 

[크기변환]관옥YT2.jpg유투브2- https://www.youtube.com/watch?v=0QrWjfICQ8o&t=141s 

 

 

최: 이제 선생님께 부활에 대한 질문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이: 네, 역시 부활을 설명 할 방법을 모르겠어요.

 

예수께서 부활을 하셨다니까, 그런가 보다…정도는 받아들이는데..

부활이 무엇인지는 제가 알 방법이 없지요.

 

부활에 대해 어떤 신학자들은 두꺼운 책으로 설명하는데 그건 그들의 생각이지요.

부활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분은 예수뿐인데 부활에 대한 언급은 한 마디도 없어요.

 

저는 그 분께 어려서부터 청을 한 거는 있어요.

 

“당신이 부활을 해서 제자 몇 사람을 만난 기록이 있고, 하늘로 가셨다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당신이 하늘이 되신 것인데, 하늘은 예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지 않는가,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나도 만나야 되지 않는가” 이렇게 부탁을 했지요.

 

베드로나 마리아,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두 사람을 만났듯이 나도 만나 주시오.

이런 생각을 늘 했습니다.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예수의 말이 진실인지 알아보고..간디가 자기 자서전을 ‘진리실험’이라고 했듯이, 저도 나름대로 그 분의 말씀대로 살아보자는 실험을 했는데 제 나름대로 확인한 것은 진실 같아요.

 

그런데 내가 그 분을 만날 수는 없어요. 그 분이 어디 있는지 모르니까요.

그 분이 나에게 오셔야 만나지요.

교도소에 있는 사람이 밖에 나가서 누구 만날 수 없는 것처럼 ㅎㅎ

 

그런데…돌이켜 보면 여러 번 만났어요.

 

 

최: 엠마오 가는 길의 두 사람처럼 만나셨나요?

 

이: 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공통점은 만날 때는 잘 몰라요.

만난 뒤에 “아! 내가 만났구나” 하는 거지요.

 

저도 만날 때는 몰랐어요. 아주 재미있어요.

 

한 번은 아주 술 잔뜩 취한 노인네의 모습으로 만났고.. 

또 한 번은 노숙자의 모습으로 전철에서..

 

그런 어떤 관계, 이것이 있은 후에.. 아, 그분이었구나!  

이렇게 아는 거지요.

 


최: 선생님은 실례지만 번역에 대한 공부도 별로 안 하신 것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 책들을 번역하셨나요?

 

이: ㅎㅎ 저 사람이 트라베르소(바로크시대 flute)를 거의 혼자 독학해서 잘 하는, 그런 끼가 있듯이, 저도 혼자 한 거지요.

 

아마 어머니를 통해서 어떤 문학적 소양, 단어를 고르고 쓰는, 어떤 끼가 좀 있었던 같아요.

저는 번역이 그렇게 어렵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어요.

 

그대신 어느 출판사에서 번역 부탁을 할 때, 그 책을 읽어보고 ‘이건 내가 못하겠습니다’ 하고 돌려보낸 적은 있지요.

한국말도 어렵게 쓰는 사람이 있는데 영어가 그러면 내가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거지요.

 

제가 이해 할 만한 거만 옮기는데 어려울 게 뭐 있겠어요. ㅎㅎ

 

 

최: 가톨릭 신부 ‘리차드 로어’의 ‘위쪽으로 떨어지다’ 라는 책이 참 좋은데 선생님이 번역하신 한국어판이 나왔나요?

 

리: 네. 나왔습니다. 정말 좋은 책입니다.

 

위쪽으로 떨어지다.jpg

리차드 로어 지음. 이현주 옮김

 

유투브3-https://www.youtube.com/watch?v=DMWpgRu5dwg 

 

 

최: 그 동안 쓴 시 중에 특별히 기억나는 시가 있나요?

 

이: 음…별로 없는데요..잘 생각이 안 나요.

 

얼마 전에 어떤 사람이 어느 시를 이야기 해서, 익숙하다 싶었는데 나중에 보니 제 시더라고요.ㅎㅎ 

그만큼 잘 기억이 안나요.

 

그리고 저는 제가 시를 쓴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엄격하게 말하면 받아 적는 정도지요.

 

어떤 노래가 공중에 떠 돌아다니는데 그게 포착이 되면 받아 적는 정도..

어떤 때는 하루에 수 십 개 쓸 때도 있고, 몇 년 동안 하나도 못 쓸 때도 있고.. 

 

일부러 시를 써야지 하고 쓴 적은 없습니다.

 

아, 동요 하나가 생각이 나네요. 두 줄짜리에요.

 

"엄마 품에 갓난 아기

 

아기 품에 갓난 엄마"

 

 

최: 마지막으로 현재 우리나라가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양극화 현상이 심한데 선생님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제가 자세히 보고 있지는 않지만 대개 세상 돌아가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데..참 딱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사람이 정치를 하든, 대학교수를 하든, 농사를 짓든, 뭐를 한다는 것은 그것을 통해서 좀 더 성숙해지는, 그런 것에 의미가 있을 텐데…좀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한편으로는 이것들도 우리가 다 겪어야 할 일인가 보다 생각하죠.

 

제 개인적으로 봐도 평탄하고 순조로울 때는 발전이 없었어요.

나라 일도 그렇지 않을까요..이런 현상들을 겪으면서 더욱 시민들의 의식이 깨어나는 그런 역사가 일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그래서 희망적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탓하거나 미워할 생각은 없고요..

제가 1944년 생인데 계속 싸움판에서..민주화 투쟁하면서..여태까지 살아왔지만 개인적으로 누구와 맞서 싸운 적은 없어요..

 

우리나라도 이런 어려운 역사 속에서 조금씩 의식이 밝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요즘 젊은 아이들을 보면서 상당히 희망을 가져요.

 

 

최: 젊은이들과 대화를 통하여 많은 교감을 하시지요?

 

이: 제가 많이 배우지요.

 

우리 자랄 때는 어른이 시키면 그대로 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저도 학생들을 만나면 제 생각을 주입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왜냐하면 좀 어렵지만, 앞으로의 세상은 그들이 선택하고 만들어 나가야 하니까요.

 

제가 어렸을 때는 그렇게 커나가지 못했지요.

기성세대가 하라는 대로 해야 했고 “네 생각은 어떠냐?”라는 말을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어요.

 

그런 시절은 이제 끝났고 우리 젊은이들은 그들의 시대에서, 고민을 하고 고통을 받더라도 그들의 세상을 살아나갈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지요.

 

가장 희망적인 것은 지금 우리 젊은이들이 어른들의 말을 고분고분 잘 듣지 않아요.

물론 걱정스러운 면이 없지 않지만 그런 건 그야말로 기우지요.

 

'방탄소년단'을 보더라도 그 많은 젊은이들이 환호하는 것은 무언가 있어서 그런 거에요.

더 이상 우리 나이 먹은 사람들의 생각을 주입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로 들려요.

 

우리 어렸을 때는 감히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지요. 세상이 그렇게 많이 달라졌어요. 

 

최: 네, 선생님 생각이 그만큼 젊으신 것 같습니다.

 

이: ㅎㅎ 후배들이 저에게 아주 리버럴하다고는 합니다.

 

최: 네, 더 젊으신 거지요.

이현주선생님, 오랜 시간 여러 가지 말씀 감사합니다.

 

이: 네, 감사합니다.

 

유투브 4-https://www.youtube.com/watch?v=wyOYqcl13S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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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말씀과 밥의 집에서'  2019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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