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이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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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호스피스의 아버지 원주희 : 한국교회들은 대부분 잘 사는 방법, Well being에만 주력해서 Well dying에 …

wy 0 2019.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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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희목사는 사무실 한 켠에 딸린 작은 접견실에서 필자에게 앉으라고 권하며 본인의 의자에 방석이 있는 것을 양해해 달라고 말했다.  

 

엉덩이가 아파서 방석을 깔았다고 설명을 하는 그의 얼굴이 약간 마른 듯 싶었다. 

 

원목사는 어떤 질문에도 유머를 섞어가며 막힘 없는 대답으로 호스피스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최: 원목사님,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샘물 호스피스’는 어떤 곳인가요?  

 

원: ‘호스피스’는 임종을 앞에 두신 분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그 분들이 마지막까지 인간다운 대접을 받도록 도와주는 활동입니다.  

 

이것을 일반적으로 종교 밖에서 하는데 우리는 기독교 복음과 접목시킨 것이 특색입니다.  

 

왜냐하면 죽음 이후, 천국의 소망을 줄 수 있기 때문이지요. . 

 

환자들에게 예배는 선택 사항이지만 대부분 죽음 앞에서는 마음이 가난해지고 마음이 열려서 호스피스 병동은 복음의 황금 어장입니다.  

 

지난 달까지 약 만 칠백명이 다녀갔고 이 중 세례 받은 분이 2860명입니다. 

 

천국이라는 마지막 소망이 있어야 환자나 가족이 같이 힘이 나지요. 

 

 

최: 목사님은 죽음에 대하여 예전부터 많은 생각을 하셨지요?

 

원: 네, 제 개인적 경험이 몇 번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친구가 반에서 싸우다가 바로 죽는 것을 봤고 처음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후 ROTC 13기로 군대에 가서 고관절 부상을 당했는데 통증이 심해서 또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고관절은 맥박이 뛰는 곳이라 매우 아픈데 당시 저는 군대 병원 약제 과장으로 있으면서 저에게 직접 모르핀 등 많은 약을 썼지만 통증이 없어지지 않았어요. 

 

그러던 중 교회 분들이 와서 찬송을 하시니 통증이 놀랍게 가라앉았습니다. 

 

이 후 약국을 하며 돈을 많이 벌다가 폐결핵에 걸려서 또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지요..

 

이 때 하나님께서 ‘네가 이런 죽음에 대한 공포를 경험 했으니 호스피스 사역을 해보라’는 생각을 주셨습니다. 

 

3년간 버티다가 잠깐만 하려고 했던 일이 26년 되었네요.

 

제가 그 동안의 경험을 몇 년 전 책으로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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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말기 암환자들을 위한 호스피스 활동을 24년째 하시던 2017년 11월, 목사님의 몸에서 위암이 발견되었습니다. 

 

어떤 상태였나요?

 

원: 네, 체력이 막 떨어지는데도 3년을 건강 검진을 못 했어요.

 

샘물 호스피스일로 너무 바쁘게 지내다가 아무래도 몸이 안 좋은 듯 해서 검진을 했더니 위암 초기라고 하더군요.  

 

중앙대 병원에서 수술을 했는데 약간 깊어서 3분의2 절제했습니다. . 

 

초기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절제하는 게 보통인데 다행히 이 후 조직검사를 해보니 전이가 안 되었습니다.  

 

방사선과 항암치료는 안 하지만 식사를 많이 못해서 좀 마르고 힘이 없어요.

 

그래서 이렇게 의자에 방석을 깔고 앉아있습니다. 

 

 

최: 인생의 모든 길흉화복을 주관 하신다는 하나님이, 목사님에게 암이 걸리게 하셨다는 것에 충격을 받지 않으셨나요?

 

원: 저는 너무 행복했지요.

 

이번에 죽으면 이 어려운 사역을 끝내고 천국 가니까 좋고, 너무 지쳤을 때라.. 

 

그리고 또 살려주시면 암환자들 마음을 이해하고 더 사역을 하라는 뜻이니까 역시 좋았지요.

 

수술실 들어가면서 아내에게 이제 못 나오면 하늘나라에서 만나자고 하니까 아내가 얼굴이 환해지면서 좋아하더라고요.

 

아내도 ‘이 어려운 사역 그만 하는구나’ 라고 생각했겠지요.

 

우리는 늘 하늘나라에서 볼 준비가 되어있으니까요.

 

그리고 수술 끝나고 나와서 환자들과 대화하는데 환자들이 되게 좋아해요.

 

같은 암환자니까 자기들의 아픔과 처지를 잘 이해하고 말이 통한다는 겁니다. 

 

그 전에는 ‘당신 나 같은 고통 당해 봤어?’ 이런 태도인 사람들도 있었지요.

 

이제는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해요.

 

우리 주님의 성육신 사랑이 그래서 하신 거 아닌가 싶습니다.

 


최: 여기 지금 환자들이 몇 분이나 계신가요? 

 

원: 여기가 본래 90병상이 있어요. 

 

60병상은 호스피스 병동이고 30병상은 호스피스 법이 생긴 후에 일반 병상으로 바꾸었어요. 

 

60병상 이상은 허가를 안 해주는 법이 작년에 만들어졌기 때문이지요. 

 

또 간호사들이 하루에 3교대 해야 하는 법으로 바뀌니 근무시간이 단축되고 출퇴근이 어려워지면서 갑자기 20명이 그만두었어요.

 

복지부에 가서 설명을 한 후 2교대 까지는 하게 되었지만 간호사가 아직 부족해서 병상을 비워두고 있어요..

 


최: 샘물에서 한국호스피스 활동을 처음 개척하고 정착시켰는데 오히려 관련 법이 생기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군요. 

 

원: 네, 의약분업도 여기는 사방 몇 Km에 약국이 없으니까 예외로 해야 합니다. 

 

또 호스피스는 기술 보다는 삶을 나누는 일인데 연세 많으신 분들이 도움이 됩니다.

 

복지부는 이런 실상을 잘 모르고 경험 없는 자문 교수들 말만 듣고 정책을 만듭니다.

 

여기 들어오려는 대기 명단이 밀려 있는데 간호사가 없어서 못 받고 있습니다. 

 

사실 간호사는 한국 병원에 전체적으로 부족하고 요즘은 3D 직종이라 할 정도지요.  

 

건물을 늘리게 된 이유도 대기하다 죽는 사람이 많아서, 샘물 호스피스의 이사장이던 손봉호 장로님이 원래 크게 하는 것을 싫어하시는데, 여기 건물을 짓는 것은 허락 하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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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앉은 열 중앙에 손봉호장로 그 왼쪽에 원주희목사


최: 샘물 호스피스는 입원비가 하루 2만원이고 환자들을 가족처럼 돌보는 스태프가 많습니다.

 

의사, 간호사, 복지사 등 전부 몇 분이나 계신가요.


원: 사모들 빼면 206명 입니다. 

 

의사가 9 명. 간호사가 58 명인데 70명까지 되야 병동을 다 열 수 있어요. 

 

이 소식을 들은 미국에 있는 간호사 한 분이 곧 은퇴하고 여기 오신다는 분도 계세요.

 


최: 장지 문화를 바꾸려고 이 곳에 새로운 장지를 3천평 준비하고 계십니다. 

 

어떤 장지 문화가 문제인가요?

 

원: 장지와 관련 되어서 미신적인 문제가 많지요. 

 

조상의 묘를 잘 못 모셔서 저주 받아 암이 걸렸다거나, 후손들이 일이 잘 안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어요.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잘 못 하는 거에요.

 

심지어 어떤 환자는 막 죽어가면서도 며칠 전 조상의 묘를 이장을 해서 안 죽는다고 믿는 사람도 있었어요.  

 

조상의 죽음으로부터 노예 생활 하는 거에요.  

 

요즘 납골당이나 수목장 해 봐야 2-3대 지나면 오지도 않아요.  

 

여기서는 가로 세로 깊이 50 cm의 땅을 파서 유골 자체로 붓고 위에 잔디를 심는 방법입니다. 

 

백 평만 해도 천 명정도의 유골을 모실 수 있지요.

 

후손들에게 짐도 안주고 복음으로 자유케 하는 겁니다.

 


최: 어떤 복음으로써 자유케 하는 건가요?

 

원: 기독교의 복음은 부활신앙이고 이것은 ‘나는 부활 할 테니 흙에 머물지 않는다.’는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것처럼 에녹, 모세, 엘리야 등의 무덤도 어디 있는지 모르고 흙에 머물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확히 어디라는 흔적 남기지 않고 여기 오지도 말라는 뜻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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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물 호스피스 병동 위쪽으로 마련된 3천평의 장지.


최: 여기는 어떤 분들이 묻힐 수 있나요?

 

원: 먼저 장례 법에 동의 해야 하고요, 샘물과 연관이 있어야 합니다. 

 

이 장지는 종교단체로 허가를 받았기 때문이지요. 

 

최종 시행 허가는 받았지만 아직 땅이 얼어서 4월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누가복음 16: 19,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 나오듯이 천국과 지옥의 양 쪽에 있는 사람 모두 한가지 목표밖에 없습니다.

 

“지옥은 나 같이 안되게 예수 믿어라.”  

 

“천국은 나 같이 되게 예수 믿어라.”

 

 


최: 일반 교회에서는 호스피스 문화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원: 한국교회들은 대부분 잘 사는 방법, Well being에만 주력해서 Well dying에 무관심합니다.

 

목사님 자신들도 Well being만 해서 죽음 앞에서 흔들리는 경우가 많아요

 

Well being 에서 Well aging과 well dying의 연결이 전혀 안 되어 있는 것이지요.

 

여기에 입원한 목사님의 침대 옆에 처음 믿는 사람은 찬송 부르는데 목사님들이 오히려 힘들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과해야 부활을 맞이하는데 잘 먹고 잘 사는 법만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아침에는 부활하고 자기 전에는 천국 간다는 삶, 이런 하루 하루를 사는 것이 영원한 삶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최:  찬송가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을 가장 좋아하는 계기가 있으셨나요?  

 

원: 제가 좋아하는 찬송이 몇 개 있어요. 

 

처음에 제가 하나님 앞에서 기쁨이 넘칠 때는 ‘예수 나를 위하여’ 라는 찬송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약국 이름 ‘보배약국’을 거기서 따왔어요. 

 

‘보배 피를 흘리신’ 이라는 찬송가 가사가 나오지요.

 

또 신학공부가 너무 힘들어서 ‘날 대속하신 예수께’ 부르며 신학을 했어요.

 

이 찬송 3절 ‘날 자유하게 하신’이 좋아서, 여기 건물 이름을 다 그 찬송에서 따 왔습니다. 

 

자유, 평화. 온유 이런 이름들이지요. 

 

그리고 호스피스 시작하면서 동네 주민들이 암 병원 있으면 암 걸린다고 몰려와서 막 쫒겨 다니고, 장의사 자격증 따서 시신을 직접 처리하던 어느 날이었지요.

 

너무 힘들어서 “오늘 이 사역하고 가자, 오늘 나도 죽자, 환자 먼저 보내고 나도 죽자” 라는 생각을 하는데, 그 때 이 찬송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을 부르게 되었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rco1vI3Gr4c

 

저는 제가 떠나면 장례식은 하지 말라고 했어요. 

 

매일 자기 전에 장례 하는데 뭐 하러 또 하나요.

 

그리고 바로 장기 기증하고 화장해서 여기 동산에 그냥 어디라고 기억도 말고 뿌려주고, 그 대신 내 신앙을 기억 해 달라고 했지요.

 

혹시 제가 임종이 가까워지면 여기 안장로님에게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연주 부탁 할 지도 몰라요. (서울시향 더블 베이스 수석인 안동혁 장로가 인터뷰에 동석했다.)

 


최: 여기서 임종하는 분들이 한 달에 몇 명이나 되나요? 

 

원: 천국으로 이사 가는 분들이 한 달에 60-70명됩니다.  

 

복지부에서 놀래는 것이 많은 분들이 가시면서 샘물 호스피스에는 거의 불만 신고가 없다는 거에요.

 

이게 시스템으로 해왔으니 되지 지금 그냥 하면 안됩니다.

 

여기 스태프들이 모두 자기 분야에 전문인이고 매우 바쁘지요.

 

하루에 두 번 예배를 보는데 환자들의 방에서도 TV, 라디오로 나옵니다. 

 

전혀 의식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환자들도 다 압니다.

 

근데 이상하게 아픈 사람보다 안 아픈 사람이 갑자기 떠났다는 소식이 많아요.

 

저는 늘 유언장을 비닐봉투에 싸서 몸에 지니고 다닙니다.  물에 빠질 위험도 있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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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목사가 작성한 유언장 요약 (매년 1/1 내용을 갱신)

 

최: 평생을 살면서 많은 재산을 남기고 가는 사람도 있고, 탁월한 지식을 남기는 사람도 있지만,원목사님은 호스피스 활동을 통한 '헌신의 삶'을 남기고 있습니다.  

 

원: 오히려 제가 여기서 호스피스 교육을 받은 거지요. 

 

이것을 하면서 저나 제 가족이 늘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삽니다.

 

우리는 딸만 둘인데 어릴 때 염을 같이 했으니까요.

 

둘 째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 신학공부를 시작했으니까, 그 때부터 환우가 세상 떠나면 딸들에게 "인사 해, 천국 가셨으니까" 하고 봉고차로 같이 시신 모시고 고속도로로 나가서 영구차로 인계 해 주었지요. 

 

둘째 딸이 이화여고 들어가면서 이화여고 학생들이 호스피스 봉사하러 오기 시작해서 22년 째 오고 있어요.

 

학생들이 오면 환자들이 아주 좋아하세요. 

 

청소년 아이들이 죽음을 알면요, 삶이 달라져요. 

 

애들이 오면 냉동실 청소부터 시켜요.  

 

애들이 어딘지 모르고 들어가서 나중에 알게 되지요. 

 

아까 예배 보던 강대상 뒤에 커튼을 치면 냉동실이 되는데 시신 4구를 모실 수 있는 장소에요.  

 

예배당에 냉동실 있는 곳은 세계 최초겠지요.

 

여하튼 죽음하고 씨름하고 삽니다. 죽음에 별 거부감이 없어요.

 

제가 감사를 잊어버릴 때도 환자들을 보면 감사가 회복 되요.

 


최: 지금 오른 손으로 배를 살짝 만지시는데 위가 좀 아프신가요? 

 

원: 아픈 게 아니라 밥을 먹으면 잘 안 내려가서 좀 부담이 있어요.

 

하루에 조금씩 다섯 끼 먹어야 해요.

 

저는 곧 가시는 분들에게 더욱 건강식을 해 주고 싶어서 예전에는 농사까지 지었어요. 

 

매끼가 마지막 식사 될 수 있으니까요, 나와 내 가족이 여기 살다 간다고 생각하지요..

 

식사값은 따로 안 받아요. 

 

간혹 왜 음식 값을 안 받느냐고 하는 분에게는 나중에 하나님께 받겠다고 하지요.

 

 

최: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이 참 힘든 길이지만 계속 건강하시고 하나님이 맡기신 귀한 사명을 오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원: 네 저는 여기서 기어 다닐 수 있는 한 기어 다니다가 갈 때 되면 천국으로 이사 가야지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목사님의 기도로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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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희 목사님과의만남’  2019  3  4  용인 샘물 호스피스에서  http://www.hospic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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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물 호스피스 건물 - 이현옥 복지사의 안내로 둘러본 샘물 호스피스의 건물들은 하얀 벽에 붉은 지붕으로 유럽 휴양지같았고 자유, 평화, 온유 등 각 동이 모두 연결되어 있어서 효율적이었다.  .

그녀는 원목사님은 뭐든지 시작하시면 주위에 도움이 많고 잘 진행 된다.

목사님이 재정을 투명하게 운영하시는 것은 물론 한 달에 강의료만 천 만원이 넘어 나오는데 모두 샘물에 기증하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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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가족과 봉사자들에게 식사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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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11시 예배 - 대강당에서 환우 몇 분과 복지사, 자원봉사자들이 예배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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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11시 예배 특별 연주- 클라리넷: 정형외과 의사 윤웅섭장로, 더블베이스: 서울시향 안동혁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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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 병상에서 찬송가를 연주하는 안동혁장로.

 

2019 샘물 바자회- 문의: 김명숙전도사 010 5389 9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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