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에세이 대표사진.png



김재윤 의원을 추모하며

wy 0 2021.07.01

Screenshot 2021-06-30 at 21.48.14.jpg


교도소 간수들은 하루에 점호를 3번 한다.

기상, 출력, 폐방 점호인데, 이 외에도 수시로 하루에 2-3번 감방 안을 들여다본다.

 

그들은 방안에 있는 사람들 중 혹시 누가 아픈지, 취침 시간이 아닌데 누워 있는 지 살펴본다.

이런 일에 익숙한 그들의 발걸음은 빠르고 정확하다.

 

어느 늦은 밤, 독거 7하 13방을 들여다본 간수가 즉시 방문을 따고 들어갔다.

안에 있는 수용자가 누워 있는 게 아니라, 거꾸로 서 있는 것이었다.

방안의 사람은 김재윤 전의원이었고 그의 특기인 국선도 수련을 하는 중이었다.

 

간수의 놀란 얼굴을 잠시 거꾸로 바라본 김재윤은 자세를 바로 잡으며 말했다.

“5분 더 계속 할 겁니다. 무슨 문제가 있나요?”

 

“방 안에서 운동하면 안됩니다.”  

“이건 운동이 아니라 참선인데요. 요가나 같지요~”

고개를 갸웃거리던 간수가 조용히 문을 닫았다.

 

김재윤 의원을 처음 본 것은 2016년 1월 어느 추운 겨울이었다.

오늘 신입 한 사람이 오는데 야당 국회의원이라는 소문이 7하 복도에 돌았다.

소지들이 새로 들어올 사람의 방을 부지런히 청소했다.

 

오후 4시경, 복도 입구가 열리고 다부진 체구에 수려한 인상의 수용자가 긴 푸대자루를 어깨에 메고 들어왔다.

부드러운 미소로 마주치는 사람마다 목례를 하고, 악수를 청하는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다음 날부터 필자가 김재윤 전의원에게 신입교육을 하였다.

하루의 일과에 대한 설명과 생필품 구입 방법 등이었다.

이후 약 2년 반을 자유가 없는 공간과 시간의 굴레에서, 우리는 거의 매일 만났다. 

 

처음 인사를 나눈 후 얼마 안되서, 우리는 운동시간에 서로의 이야기를 터놓을 만큼 친해졌다.

김재윤은 제주 서귀포 출신으로 탐라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MBC의 ‘물음표’라는, 책을 소개하는 프로에 출연하여 이름을 알리게 된다.

 

2004년 제주에서 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내리 3선에 성공한다.

39살에 국회의원이 되어 50살에 감옥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는 소위 입법로비 사건에 연류 된 3명의 국회의원 중 한 사람이다.

 

김재윤은 이 사건을 설명하면서 몹시 억울해 했다.

자신은 상품권만 조금 받았는데 4년형을 받았다는 것이다.

 

더우기 1심에서 무죄판결이 난 천만원을 받았다는 피의사실이, 2심에서는 판사가 유죄라 판단하여 1년이 늘어났다.

김재윤은 2심에서 벌금이나 집행유예를 기대했는데 올려치기를 당한 것이다.

 

대법원은 유무죄만 다루고, 10년 이상의 형에 대한 형기 조정만 하기 때문에 2심이 그대로 확정되었다.

자신이 박근혜 정부에 각을 세워 비판을 하니 이런 일을 당했다는 것이다.

너무 분하고 억울하여 단식을 시작했는데 무려 33일을 했다.

 

20여일 후에는 병원에 실려가,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

국회의원 세 사람에게 뇌물 공여를 했다고 자백한 김모 예술 대학 이사장은, 당시에는 기소도 안 되었고, 나중에 집행유예가 되었다.

뇌물을 주었다고 자백한 사람의 진술서 외에는 어떠한 물증도 없는 재판이었다.  

 

김의원 입법우수의원 images.jpg

2005~2010년 연속 입법 우수의원으로 선정

 

김재윤은 감방 안에서 ‘물구나무서기’도 했지만 시를 많이 썼다.

국문과 출신으로 대학에서 강의를 했었고, 2021년 1월에는 정식으로 등단하여 시인이 되었다.

 

그는 종종, 초록색 대학노트에 쓴 시들을 나에게 보이며, 시에 대한 품평을 부탁했다.

 

어제 강남성모병원, 故김재윤 의원의 빈소에 다녀온 후, 그의 시 몇 편을 적어 놓은 나의 초록색 노트를 찾았다.

 

 

묏자리

 

저기가 내 묏자리야

시체가 되어 고향 땅에 도착했네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 했네

 

고향 사람들은 화툿장 또는 소줏잔 들어 나를 반기고 바람은 내 이름 연호하네

친척들은 서둘러 멍석을 깔고 유언장을 펼치네

 

도 아니면 모인 인생 살고 싶었지

몸을 던지고 또 던져봐도 개 같은 세상이었지만 개인 날이라 여겼지

 

딸 아들 잘 되라고 죽은 듯이 참고 살았지

어떤 것들은 시간이 흘러야 이해할 수 있고 어떤 것들은 스스로 깊어져야 알 수가 있지

죽음은 완성된 삶일까?

 

내 옷가지 태우는 저기가 내 묏자리야

 

 

 

 

방은 살아 있다

 

나는 방에 갇혀 있고 방을 만들며 산다

 

방의 크기를 정하고 방을 채우고 방을 비우고 방을 떠나기도 하고 방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일어남과 사라짐이 함께 사는 방에서 오래된 기억과 실랑이하고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지금도 고맙고 부족해도 고마운 내 인생의 방에 내가 살아 있다. 

 

 

김재윤 의원이 출소한 후, 김모 예술대학 이사장이 그에게 용서를 빌었다.

 

출소 후 김모 이사장과 통화 내용

 

김재윤: 만나자는 이유가 뭡니까?

김모 : 저로 인해서 큰 고초를 겪게 해드려서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어요. 제가 죄송하다는 말로 용서를 구하는 게 제일 빠른 것 같아서.

 

김재윤 : 용서를 구한다고 그러면, 사죄한다고 그러면 끝나는 거예요? 진정 용서를 구하는 게 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세요.

김모 : 죄송합니다.

 

김재윤 : 용서를 구한다고? 나한테 용서를 구할 자격이 있어요?

김모 : 제가 그 상황에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김재윤 : 무슨 상황이요? 얘기해 봐요. 얘기해 봐요 그 상황이 뭔지.

그래서 막 나한테 다 뒤집어씌우고 살고 싶어? 진실을 말해!

( KBS ‘시사직격’ 방송 내용  2020 10 9 ) 


 

김재윤 의원은 2018년 8월에 만기 출소했다.

마포의 일식당에서 반갑게 만났다.


[회전][크기변환]20180907_125057.jpg

 

필자는 그의 어머니에 대한 시에 곡조를 붙히겠다고 약속했었다.

나중에 이 노래를 들은 김재윤 의원은, 잘 부르지 못한 노래를 좋아했다.

 

어머니 등 위에 - 시 김재윤 / 곡 최원영

 https://www.youtube.com/watch?v=409oGz5imG8 

 

 

따스하고, 정의로운 김재윤 스테파노 의원님의 명복을 빕니다.

 

최원영 올림.  2021 7 1

 


PS 김재윤 의원이 옆 방 분에게 써 준 시 - 부용꽃

[크기변환]KakaoTalk_20210703_160806367a.jpg


 

 

State
  • 현재 접속자 2 명
  • 오늘 방문자 60 명
  • 어제 방문자 239 명
  • 최대 방문자 868 명
  • 전체 방문자 273,197 명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