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과 골프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로 무척 재미있다.
골프를 시작하여 어느 정도 공이 잘 맞으면, 골프에 몰입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야말로 앉으나 서나, 머리 속은 작고 하얀 공을 치는 생각뿐이다.
미국 어느 시골, 오래된 동네 골프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Tom과 Bob은 같이 골프를 친지 60년 째다.
어느 화창한 가을 날 아침.
그날도 두 노장 골퍼들은 아침 7시에 1번 홀에서, 우드3번으로 가볍게 치고 나갔다.
보통 4시간 정도 걸리는 라운드를 그날은 더 오래 걸리는 것 같았다.
샌드위치를 같이 하려는 친구들이 18번 홀에서 그들의 라운드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드디어 두 사람이 들어오는데 Tom이 Bob을 끌면서 들어오고 있었다.
친구들이 가까이 가서 보니 Bob이 의식을 잃은 것 같았다.
Tom이 하는 말이 "Bob이 2번홀 그린에서 putting 을 하자마자 쓰러져 정신을 잃었는데, 3번 홀부터 이 녀석 끌고 다니면서 끝까지 치느라고 혼났다"는 것이다.
바둑도 그 삼매경에 대해 많은 일화가 있다
옛날에 어떤 양반이 바둑을 무척 좋아했다.
이웃집에 가서 바둑을 두고 있는데,
집에서 하인이 다급하게 달려와 말했다.
"나으리, 댁에 불이 났습니다 !"
주인은 하인의 얼굴을 볼 생각도 않고 바둑판만 보며 이렇게 말했다.
"댁에 불이 났다니, 그것 참 안되었네 그려."
바둑과 골프의 두 번 째 공통점은 바둑은 훈수를 하고 싶고, 골프는 같이 치는 사람들의 스윙에 대해 한 마디 하고 싶다.
'바둑 어느 정도 두시나요?' 하고 물어볼 때
'훈수 안 할 정도는 됩니다' 하면 1급이라고 한다.
요즘은 인터넷 대국이 많아서 환경이 좀 바뀌긴 했지만, 그 만큼 훈수를 안 하는 게 어렵다는 말이다.
내가 이렇게 쉽게 보는 수를 이 사람은 왜 모르나 하는 답답함과, 자기의 깊은 수 읽기를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서로 상승 작용을 한다.
골프는 다른 사람의 스윙에 대해 한 마디 하는 단계가 각각 다르다.
점수 100을 깬지 얼마 안 되면, 몇 홀 돌기도 전에 옆 사람의 스윙에 대해 한마디 해준다.
90 정도를 치게 되면 꾹 참고 있다가, 동료가 물어 보면 얼른 한마디 해준다.
싱글이 되면 누가 물어봐도 잘 대답을 안 해준다.
프로나 선생은 누가 물어보면 대답을 해준다. 돈을 받고 ~
골프 스윙에 대해 많이 알면 알 수록,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하기가 어렵다.
One point lesson은 당장은 효과가 날 수 있지만, 얼마 안 가서 무너지기 때문이다.
세 번 째 공통점은 둘 다 언뜻 보기에는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골프를 오래 친 사람들의 스윙도 초보자와 비슷하게 보일 수 있다.
나도 조금만 연습하면 얼마 안 가서 저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때는 내 스윙이 더 멋진데 점수는 이상하게 안 좋다는 생각도 든다.
골프스윙은 얼핏 단순해 보이고, 2초 이내에 모든 것이 끝나기 때문이다.
골프의 가장 치명적인 유혹은, 어쩌다 참 잘 맞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Putter의 경우, 2미터 정도의 putter를 나는 넣었는데, 싱글은 못 넣을 때가 있다.
다른 어떤 운동도 실력 차가 월등한 상대방을 이길 수가 없다.
내가 수영을 박태환보다 잘 할 수 없고 역기를 장미란보다 더 들 수 없다.
그러나 골프는 싱글이 90을 쳤는데 나는 89를 칠 수 있고, 프로가 OB 난 홀에서 나는 버디도 할 수 있다.
바둑도 초반 어느 정도 까지는 그 수가 그 수 같고, 나도 조금만 공부하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옆에서 수를 보면 어떤 때는 고수들도 엉뚱한 실수를 한다.
그러나 중반 이후의 수 싸움과 끝내기에서 피를 말리는 수순을 생각하면, 그 경지가 얼마나 높은지 헤아리기 힘들다.
골프와 바둑은 언뜻 보기에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고, 조금만 하면 될 것 같은 함정이 있다.
네 번째 공통점은 상대방에게 지거나, 예상대로 안되면 열을 엄청 받는다.
골프는 그야말로 나와의 싸움이다.
동시에 그 골프장을 설계한 사람과의 싸움이다.
하지만 어느 경지에 이르지 않고서는 같이 라운드 하는 상대방의 점수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특히 내기 골프를 많이 하는 분들은 그 스트레스가 대단하다.
골프를 하다 심장마비나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
필자의 지인 한 분도, 10여 년 전 50대 초반의 나이로 그린에서 퍼팅 도중 쓰러진 후, 회복하지 못한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골프는 기복이 심한 운동이다.
어떤 날은 이상하게 잘 되고, 어떤 날은 어떻게 해도 안 된다.
어떤 매너 나쁜 골퍼가 그 날 따라 더 공이 안 맞았다.
평상시에도 자기 화를 주체치 못하여 채를 던지는 일은 다반사고, 어떤 때는 채를 부러뜨리는 일도 있었다.
같이 치던 사람들이 조마조마 하면서 이 친구가 언제 성질이 나오나 걱정하고 있었다
마지막 홀에서 연속 OB를 두 번 내고, 아연 샷으로 엄청 뒤땅을 친 후, 4 퍼터를 하더니 드디어 화가 폭발, “내가 앞으로 골프 또 치면 X새끼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골프 백을 아예 연못에 던지겠다고 선언 한 후, 누가 말릴 사이도 없이 그린 옆에 있는 작은 연못에 풍덩 던져버렸다.
친구들이 멍한 사이에 화가 잔뜩 나서 주차장 쪽으로 몇 걸음 가더니 곧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친구들은 그가 마음을 바꿔서 골프 백을 다시 찾으려나 보다 생각했다.
역시 예상대로 바지를 무릎 위까지 걷고 연못으로 성큼성큼 들어간 그는 골프 백을 찾아서 가지고 나왔다.
그러더니 백 옆의 지퍼를 내리고 자동차 열쇠를 찾은 후 다시 백을 연못에 던지고 가버렸다.
바둑은 승부를 겨루는 상대가 바로 앞에 있다.
인터넷 바둑을 둘 때는 상대방이 안보여서 직접적인 자극이 약하지만, 어떤 바둑이라도 지는 사람은 열을 좀 받는다.
특히 다 잡은 대마를 실수로 놓쳐서 졌다거나, 다 이긴 바둑을 끝내기에서 물러나다 한 두 집을 지면 열을 받는다
한 판만 더 두자는데 상대방이 싹 일어나면 더 열이 난다.
사실은 정석을 잘 모르고 수 읽기를 못해서 지는 것인데, 꼭 내가 기본적으로 머리가 나빠서 지는 것 같다.
충분히 이길 수 있는데 꼭 한 수 실수로 지는 것처럼 느낀다.
그래서 바둑을 두다가 중간에 물러달라고 승강이가 벌어지면서, 흥분하여 바둑판을 엎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이렇듯 바둑과 골프는 사람들에게 천국과 지옥을 오가게 만드는 특성이 있다.
그러면 어떤 생각으로 바둑과 골프를 해야 좋을까.
우선 골프는 ‘운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프로가 아닌 한, 골프는 인생이 아니다.
골프를 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골프를 칠 만큼 건강하고,
시간 여유가 있고, 경제적인 여유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삼박자가 갖추어진 사람이 어디 그리 흔한가.
돈이 있으면 그 돈 관리하느라 시간이 없고, 시간이 많은 사람은 경제력이 없고, 둘 다 있는 사람은 어디가 아프거나, 어느새 노년이 되어 골프를 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이러한 골프를 운동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경쟁으로 전락시켜, 스스로 스트레스를 높일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즐겁게 골프를 치는 사람이 골프의 고수다.
바둑은 ‘게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프로가 아닌 한, 바둑은 인생이 아니다.
게임은 어떠한 룰이 있는데 이 룰에 따라 많이 배우면 고수가 되는 것이다.
바둑을 둬서 졌다고, 내가 상대방보다 기본적으로 머리가 나쁜 거나 인내심이 모자란 것이 아니다.
또한 성격이나 성품과도 별 관계가 없다.
승패 보다는 둔 바둑을 열심히 복기 하는 사람이 바둑을 진정 즐기는 사람이다.
그러면 승율도 저절로 높아진다.
바둑과 골프, 즐기는 사람이 잘 하는 사람보다 더 고수다.
바둑은 게임이고 골프는 운동이다.
조훈현 국수와 지도대국 - 1986년 장충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