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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는 표절이 아니다: 안익태를 지우면 카라얀, 쇼스타코비치의 음악도 들으면 안된다. - 문성모

wy 0 2020.08.22

 

안익태 애국가.jpg

애국가 -

 

안익태가 당시 친일을 했지만, 그는 애국도 했고, 애국가는 표절이 아니다. 

 

이 글은 문성모 박사의 어린이용 서적 《우리나라 애국가 이야기》(신간 예정)의 내용 중 일부이며저자의 허락을 받은 것임을 밝힙니다.

 

“선생님, 안익태 선생님을 친일 음악가라고 하던데요?”

성민이가 예상치 못한 질문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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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웅 광복회 회장

 

“안익태 선생을 친일 음악가라고 하는 것은 맞는 말입니다. 그의 1938년 이후 활동에는 일본의 강압에 협조한 활동이 많이 있습니다. 그 시대에 살던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의 안타까운 아픔이고 비극입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는 조국에 대한 애국심이 꺼지지 않았다고 보아야 합니다. 

 

안익태 선생은 일제강점기에도 애국가 곡을 작곡하고 <한국환상곡>을 만들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에는 애국적인 것들이 아주 많습니다. <논개>, <애국지사추도곡>, <한국무곡>, <국기경례곡> 등을 들 수가 있습니다.”

 

김성숙 선생님은 다시 긴 한숨을 쉬시고는 설명을 계속하셨다.

“안익태 선생은 우리나라가 낳은 최고의 음악가입니다. 당시의 우리나라 형편을 고려할 때, 아직도 그와 같이 폭넓게 전 세계적으로 활동한 지휘자나 작곡가는 현재까지 없습니다. 

 

그는 6·25전쟁을 전후로 ‘한국의 음악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감당했습니다. 

세계가 신생국가인 대한민국을 모르고 있을 때, 안익태 선생은 아프리카 대륙을 제외한 모든 대륙을 돌면서 한국환상곡을 지휘하고 한국을 전 세계에 홍보하는데 열정을 쏟았습니다. 

그러니 안익태 선생을 평가하는 일은 친일과 애국이라는 양면을 다 고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성숙 선생님은 잠시 설명을 멈추더니 칠판에 큰 글씨로 다음과 같은 음악가들의 이름을 쓰셨다.

 

1. 카라얀

히틀러의 나치 정권에 적극 협력한 지휘자

 

2. 푸르트뱅글러

히틀러의 나치 정권에 마지못해 협력한 지휘자

 

3.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히틀러의 나치 정권과 서로 이익을 공유한 작곡가

 

4. 쇼스타코비치

스탈린의 소련 공산당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작곡가

 

“여러분, 이 음악가들의 이름을 들어보셨나요? 이분들은 세계 최고의 지휘자나 작곡가들이지만 모두 나치 정권과 공산주의 독재정권에 협력한 사람들입니다.”

 

“선생님, 카라얀은 유명한 지휘자였지요? 아빠가 말씀해주셨어요.”

한결이가 자랑하듯이 대답을 하였다.

 

“네, 맞아요.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서 독일에서 활동한 최고의 지휘자입니다. 그는 음악적 출세를 위하여 나치당에 가입하는 등 나치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였고, 지휘자로서 최고의 위치에 올랐습니다. 

카라얀은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음악은 음악일 뿐’이라며 오직 출세를 위해 나치에 협력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두 번째 이름을 가리키며 다시 설명을 이어가셨다.

“카라얀의 선배 지휘자인 푸르트벵글러도 처음에는 나치의 음악 정책에 저항하다가, 결국 제국음악협회 부회장직을 맡으며 나치와 타협하였고, 베를린필하모니의 지휘자로 활동했습니다. 

그러나 카라얀과는 달리 푸르트벵글러는 마지 못해 나치에 협력한 것뿐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세 번째 이름을 가리키며 설명을 계속하셨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나치 시대의 최고의 작곡가였습니다. 그는 작곡가로서 나치 정권을 적절히 이용해 자신의 실속을 챙긴 현실주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슈트라우스는 1933년 자신이 제국음악협회장으로 추대되자 나치의 정책을 ‘독일 내에서 음악을 통일시키려는 훌륭한 정책’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당시 히틀러는 최고의 음악가인 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였고, 슈트라우스도 나치를 이용해 최고의 작곡가로서 활동하는 협력관계였습니다. 

 

슈트라우스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개막식 축제를 위해 <올림픽 찬가>를 작곡해 나치 정부의 국제적 이미지를 좋게 하였지만, 다시 오페라 <평화의 날>을 작곡해 나치 정권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마지막 이름을 짚으시며 설명을 이어갔다.

“마지막에 있는 쇼스타코비치는 러시아에 옛 이름인 소련이 공산화되고 가장 악독한 독재자인 스탈린이 정권을 잡았을 때 공산주의에 협력한 작곡가입니다. 

스탈린은 쇼스타코비치에게 공산당 혁명을 찬양하는 음악을 작곡하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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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쇼스타코비치는 살아남기 위하여 마음에는 없었지만, 교향곡 2번 <10월에>, 교향곡 3번 <5월 1일> 등 스탈린의 공산당 정부가 요구하는 곡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생님, 스탈린이 그렇게 악독한 독재자였나요?”

예은이가 손을 들고 질문을 하였다.

 

“그럼요. 스탈린은 공산당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2,500만 명 이상이나 죽인 역사상 가장 악독한 공산주의 독재자였습니다. 우리나라 인구 절반에 해당하는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인 것입니다.”

 

선생님은 설명을 계속 하셨다.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에 굴복하여 독재자 스탈린을 찬양하고 공산당을 홍보하는 음악을 많이 만든 작곡가로 ‘스탈린상’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이 비록 공산당에 굴복하였지만, 그의 음악은 공산주의에 물들지 않게 하려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죽기 직전에 자신의 제자이자 친구였던 유명한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모두 음악의 전사들이야. 어떠한 바람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아 인간을 옹호해야 하는 전사들 말이야.”

 

김성숙 선생님은 여기까지 설명을 하고 다시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지셨다.

“여러분, 위의 네 명의 음악가들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역사상 가장 악독하고 사람을 많이 죽였던 독재자 히틀러의 나치 정권과 스탈린의 공산당 정권에 굴복하고 협력하였던 비겁하고 비난받아야 하는 음악가들인가요? 

 

아니면 살아남기 위하여 독재정권에 협력은 하였지만, 훌륭한 음악적 유산을 인류에게 남긴 위대한 작곡가요 지휘자들인가요?”

 

“선생님, 이 네 사람 중에도 출세를 위해 아주 적극적으로 협력한 사람과 마지못해서 협력한 사람을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진이가 대답을 하였다.

 

“아주 좋은 대답입니다. 이 네 사람 중에 카라얀이 가장 노골적으로 출세를 위해 나치 정권에 가담하고 협력하였습니다. 그리고 쇼스타코비치는 악독한 스탈린의 폭정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마음에는 없으나 가장 적극적으로 많은 작품을 만들어 낸 비운의 작곡가입니다. 

푸르트벵글러와 슈트라우스는 할 말은 하면서 나치 정권에 협조하여 자신의 이득을 챙긴 인물들입니다.”

 

선생님은 다시 조금 멈추시더니 설명을 이어갔다.

“여러분, 중요한 것이 있어요. 이 네 사람에 대하여 독일이나 러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 사람들의 평가입니다. 오늘날 이 네 사람의 음악가들을 친 나치주의자나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들이 역사상 가장 악독한 독재정권에 협력한 일은 비난받아야 마땅하지만,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을 이해하고, 훌륭한 음악을 만들어 인류에게 봉사하고 공헌한 음악가로서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 네 사람은 오래 살았지만, 전범자로 처형되거나 사회적 비난을 받은 일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남긴 위대한 음악적 활동과 작품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은 이분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보내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다시 카라얀의 이름을 가리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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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베르트 본 카라얀

 

그의 음반 판매량은 생전에만 1억 장을 훨씬 넘어섰고, 죽은 후에까지 합하면 2억 장도 넘는다고 합니다. 나치 정권의 협력자라는 부정적 평가와는 별개로, 그를 위대한 음악가로 남게 한 독일인들과 세계인들의 자세에서, 우리는 어려운 시대를 살다 간 역사적 인물을 평가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크기변환]안익태 부인과 세 딸.jpg

부인과 세 딸, 스페인의 안익태 거리에서

 

“선생님, 애국가를 작곡하신 안익태 선생님에 대하여 더 사랑하고 존경해야 할 것 같아요.”

보미가 대답하였다.

“그래요. 안익태 선생님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살았던 많은 역사적 인물들을 치우치지 않게 평가하고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공부하면서 언급했던 이름 중에도 윤치호, 이광수, 허영숙, 주요한, 김인식, 신흥우, 김은호, 최남선과 같은 분들이 친일 논란에 휩싸여 있지만, 그들의 민족을 위한 공로와 정치가, 문학가, 음악가, 화가 등 각 분야에서의 업적도 높이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선생님, 안익태 선생님은 왜 스페인에서 돌아가셨나요?”

지명이가 질문을 하였다.

 

“안익태 선생은 부인이 스페인 출신이라고 아까 제가 말했지요? 그래서 마지막 생애를 부인과 함께 스페인 마요르카에서 지냈어요. 그가 살던 집이 안익태 선생 탄신 110주년에 맞추어 <안익태 기념관>이 되었습니다. 

안 선생님은 마요르카에서 총 232회나 교향악단을 지휘하며 문화예술 진흥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입니다.”

 

문성모(Dr. Phil.)

 

(전 서울장신대 총장강남제일교회 목사)

 

 강남제일교회: http://www.gjchurch.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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