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에세이 대표사진.png



점성술과 독심술을 하는 인도 요기

wy 0 2019.06.12

 

 

인도요기.jpg

 

1978년 늦은 봄이었다.

 

한국일보 장강재회장이 전화를 했다.

 

"최사장, 내가 재미있는 사람 하나 보낼 테니 만나보시오."

 

“재미있는 사람이라니요…누군데요?”

 

장회장은 대답 대신 허허 웃고 전화를 끊었다. 

 

그가 허튼 소리를 할 사람은 아니고 도대체 어떤 사람을 보내는 데 재미있다고 하는지 궁금했다.

 

한 시간쯤 후 비서가 들어와서 머리에 터번을 쓴 인도사람이 왔다고 한다.

 

‘웬 인도사람?’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동아건설 기획실 회의가 막 끝난 터라 회의실로 그 사람을 들어 오라고 했다.

 

얼굴의 반은 수염이 덮인 약간 지저분해 보이고 나이가 짐작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자리에 앉은 후 자기는 인도의 요가 수행자로서 세계를 여행하는데 한국은 처음이라며 자기 소개를 한다.

 

오늘 오전 광화문 호텔에서 보이는 큰 신문사를 찾아가서 자신을 소개하고 이번 여행의 취지를 설명 해 주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장 회장을 만나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터번 속의 가무잡잡한 얼굴이 빙그레 웃는데 눈동자가 맑았다.

 

처음에 신문사에 들어가니 로비에서 경비가 엘리베이터도 못 타게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는 요가를 하면서 세계를 돌아다니는데, 이 신문사에 자신의 기사를 좀 내 달라고 온 거라고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웬 인도 거지인가 했을 것이다.

 

경비 두 사람이 달려와 막무가내로 팔을 잡아 당기며 들여보내지 않았다.

 

그 때 마침 나이가 지긋한 사람이 들어오면서 이 광경을 보고 영어로 “미안하지만 이 시간에 신문사가 무척 바쁘다”고 말을 하는데 팔에 기브스를 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그 팔은 그저께 집에서 넘어져서 다친 거 아니냐고 했더니 이 사람이 깜짝 놀랬다.

 

그는 당시 한국일보 중역이었다.

 

집에서 운동을 무리하게 하다가 넘어져서 기브스를 했고, 그 사실을 가족들만 알고 회사 직원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당신이 어찌 아느냐면서, 자기 방으로 가서 차나 한 잔 하자고 하더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디선가 정보를 듣고 사기를 친다고 생각을 해서 이것 저것 물어 보았으나 인도사람이 놀랍게 계속 맞추자 바로 회장실로 데리고 갔다.

 

장회장도 몇 마디를 나눈 후 그의 능력에 놀라 평소 알고 지내던 내 생각이 난 것이다.

 

이 사람과 마주 앉은 나는 먼저 그의 여행 목적에 관해 물었다.

 

자기의 성은 싱(Singh)이고 나이는 30살이며 요가를 통한 세계 평화를 전파하기 위해 여행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목적에 동조한다면 얼마가 돼도 좋으니 자기가 관여하는 인도 요가 단체에 기부금을 내주었으면 고맙겠다고 한다.

 

일단 행색보다는 상당히 세계적인 비전을 가지고 여행을 하는 요기였다.

 

그건 잘 알겠는데 먼저 당신이 어떻게 장회장과 한국일보 사람들의 지난 일들을 알았냐고 물어봤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나는 사람의 마음을 읽습니다"

 

어떻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느냐고 했더니 자기는 정신을 집중하면 상대방이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것을 증명 할 수 있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이 “당신이 생각하는 것을 쓰면 나도 동시에 종이에 쓰겠다”는 것이다.

 

얼른 그에게 종이와 노란 미제 연필을 주었다.

 

종이를 테이블 위에 놓고서 하는 말이 “무엇에 대해 쓰는지는 알려줘야 마음을 읽기가 쉽다”고 한다.

 

약간 김이 샜지만 친구의 이름을 쓰겠다고 했다.

 

인도 요기 Mr 싱은 이제부터 정신 집중을 해야 한다며 눈을 슬며시 감더니 곧 다시 번쩍 떴다.

 

“한글은 모르니 영어로 쓰라”고 한 후 다시 눈을 감았다.

 

1분도 안 지났겠지만 이 사람이 이러다가 눈을 안 뜨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이윽고 부시시 눈을 뜨더니 나에게 이제 써보라고 했다.

 

나는 이 사람이 혹시 나의 움직이는 연필 끝을 보면서 글씨를 읽는 방법이 있나 하고 연필 전체가 안 보이게 왼손으로 가리고 내가 아는 사람의 이름을 썼다.

 

내가 쓰기 시작하자 이 사람도 거의 동시에 썼다.

 

여러 사람의 이름을 생각하다 내가 쓴 이름은 ‘kim young uck’ 이었다.

 

그가 쓴 종이를 받아서 보니 그가 쓴 이름은 ‘kim yong uck’이었다.

 

U자 한 자만 빼고 같았다. 

 

발음상 그렇게 쓸 수 있는 일이었다.

 

당시 미국에 있던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씨였다.

 

일부러 서울에 있는 친구들의 이름은 쓰지 않았다.

 

감탄하고 있는 나에게, 그는 자기 얼굴에 땀을 보라면서, 이런 일을 할 때는 너무 힘들어서 땀을 많이 흘린다고 했다.

 

방안이 덥지도 않은데 그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는 게 보였다.

 

그러면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고 한다.

 

이 사람이 혹시 나에 대해 조사를 하고 왔나 하는 생각을 해봤으나 도저히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장회장을 만난 것도 예정에 없던 일이고 한국일보에서 우리 회사까지 바로 걸어 왔다는데 어떻게 내가 생각하는 미

국에 있는 친구의 이름을 미리 알 수 있겠는가..

 

당신은 미래도 아냐고 했더니, 모든 인간은 자신의 별이 있는데 그 별을 알면 미래를 알 수 있다는 점성술사 같은 말을 한다.

 

내 아내가 첫 출산을 몇 달 앞 뒀는데 아들이냐 딸이냐고 물었다.

 

당시에는 산부인과에서 성별 검사를 하는 게 쉽지 않았고, 또 굳이 알고 싶은 생각도 없었으나 갑자기 궁금증이 발동했다.

 

역시 정신을 집중하더니 조금 후에 아들이라고 한다.

 

그럼 내가 앞으로 자식을 몇 명 가질 거냐고 했더니 2남1녀라 한다.

 

다음 질문으로 내가 장수 할 수 있느냐 했더니 그건 지금 잘 모른다고 하면서, 그 이유는 인간의 별은 보통 10년에 한번씩 하늘에서 바뀌는데, 그 바뀌는 것을 정확히 알려면 시간이 좀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별자리.png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안이 벙벙한 나에게 한 마디 덧붙이는 말이 나를 더 당혹하게 했다.

 

자신의 별이 곧 바뀌는데 이 별은 건강에 아주 나쁜 별이기 때문에 2-3 년 안에 자기는 틀림없이 죽는다는 거다.

 

그래서 죽기 전에 이런 여행을 한다고 했다.

 

언뜻 불쌍한 사람으로 보여 요가협회에 기증하게 하는 작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당신이 그렇게 점성술을 잘 하면 '제갈공명도 위연이 촛불을 끄는 바람에 오래 살지는 못 했지만 그래도 무슨 방도가 있을 것 아니냐?' 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너무 길어서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 사람을 데리고 공사 입찰을 다니면 다른 회사 입찰가를 알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떠 오르며 실소를 지었다.

 

다음 질문으로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했더니 다시 정신 집중을 했다.

 

“당신이 지금 하는 일을 계속 하지는 않을 것이며, 앞으로 여러 가지 일들을 하면서 어려운 일도 있겠지만 결국 잘 될 거다” 라는 것이다.

 

‘그렇게는 나도 말 할 수 있겠다’ 라는 말이 입 안에서 맴돌았다.

 

그쯤 되니 더 궁금한 것도 없고 다른 손님이 올 시간이라 그 정도로 하고 연락처를 받은 후 다음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자기는 광화문에 있는 작은 호텔에 있는데 건강상 늘 걸어 다니기 때문에 한 시간 전에만 연락하면 언제든지 오겠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인도 요가협회 기증 문서를 잊지 않고 나에게 주며 잘 읽어보라고 했다.

 

넓은 회의실에서 일어나며 Mr싱이 나에게 물었다.

 

"이 방에서 나가는 문이 어디요?"라고

 

나는 순간적으로 대답을 하기가 어려웠다.

 

'아니 그것도 모르냐'고 해야 할지,

 

아니면  '내가 생각 할 테니 맞춰 보라'고 해야 할지..

 

망설이다가 그냥 밖으로 나가는 문을 안내 해주면서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했다.

 

며칠 후 갑자기 해외 출장을 나가게 된 나는 돌아와서 그 호텔로 연락을 해봤다.

 

그 인도 사람은 이미 체크아웃 했다고 해서 한국일보에 알아보니 며칠 전에 출국 했다고 한다.

 

그가 말한 첫 번째가 아들이라는 것과 내가 아들 둘에 딸 하나를 둘 거라는 것은 맞추었다.

 

내가 건설회사를 떠나 다른 일들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의 말이 모두 맞다면 그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

 

아니면 본인의 별자리를 잘 못 집었거나 혹은 제갈공명보다 나은 방도를 써서 아직도 어디선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맞추며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터반을 쓰고 얼굴에 수염이 더부룩한 사람을 보면 인도 요기 Mr 싱이 생각난다. 

 

세월이 40년이 넘게 흘렀고 내 별자리도 몇 번 바뀌었을 것이다.  

 

내 마음의 별자리는 얼마나 바뀌었을까....

 

 

 

State
  • 현재 접속자 4 명
  • 오늘 방문자 193 명
  • 어제 방문자 302 명
  • 최대 방문자 884 명
  • 전체 방문자 298,606 명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