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3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내전의 위기는 2025. 4,4. 11시22분 헌재의 윤석열 파면 결정으로 일단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그것으로 내전이 종식된 것이 아니다. 심리적 내전이 유혈(流血) 내전으로 비화할 수 있는 위기를 넘겼을 뿐이다.
탄핵 정국이 조기 대선 정국으로 바뀐 것은 이 선거 과정을 통해서 적대와 증오의 오래된 뿌리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은 것이다.
이번 선거는 한국 민주주의가 질적인 진화를 이룸으로써 적대와 증오를 넘어서 통합과 상생의 정치로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최근 몇 차례의 정권교체를 거치며 나타난 퇴행적 편가름을 벗어나지 못하고 내전을 심화시켜 나라를 쇠락하게 할지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식민지를 겪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상태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급속히 이룸으로써 세계인의 경탄을 받은 나라가 이런 위기를 만나고 있는 원인은 무엇이며, 그 현상의 본질은 무엇인가?
나는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의 국가 비전과 국가 전략을 세우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치가 그것을 견인하기는커녕 오히려 퇴행시켰다. 그래서 한국 정치를 4류라고 한다.
퇴행은 담론(이념)과 도덕(정치문화)의 양면에서 나타난다.
한국은 1인당 GDP가 일본을 넘어섰고, 남북 간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하였다.
그런데 현실과 유리된 낡은 관념과 정서로 편을 갈라 이미 사라졌거나 의미 없어진 귀신(鬼神)을 불러내어 ‘토착 왜구’니 ‘종북 좌빨’이니 하며 싸운다.
그것도 여론을 주도하는 일부 지식인과 종교인, 정치인과 운동가들이 앞장서서 자기중심적인 그리고 집단이기주의에 사로잡힌 확증편향의 광기(狂氣)를 뿜어 낸다.
인간 사회에서 이해 관계와 추구하는 가치가 다른 진영 간의 갈등과 대립은 정상적인 현상이며, 이 갈등은 그 해결 과정에서 사회를 진보시키는 역할을 한다.
지금의 심리적 내전 상태는 정상적인 진영 간의 갈등이 아니라서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내전을 종식시키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남북이 두 국가체제로 평화 공존하다가 여건이 무르익으면 통일로 나아가는 한반도 전략은 지정학의 저주를 벗어나는 민족의 큰 그림이다.
대한민국이 퇴행적 내전을 끝내고 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이고 애국적인 좌우 보혁 세력 간의 연합 정치와 협동 정치를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세계 패권의 재구성을 둘러싼 열강의 싸움에 휘말리는 지정학의 덫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명으로 세계를 선도하는 21세기의 새로운 선진국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민족의 The Next Peninsula(로마 제국이 이탈리아 반도에서 출발했다면, 미래 문명은 한반도가 중심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향한 큰 꿈이다.
근대화 시기 우리 공동체 안에서 이미 움텄던 꿈이다.
‘만국활계남조선(萬國活計南朝鮮)’이 그것이다. 달라진 상황에 맞게 고친다면 ‘만국활도대한민국(萬國活道大韓民國)’이다.
우리가 남북 간의 평화와 한국의 정치 혁명에 성공한다면, 민족의 큰 꿈은 비로소 달빛이 아니라 햇빛 속으로 나오게 될 것이다.
이 시대 한국의 정치 혁명은 중도(中道)가 사상 문화와 정치의 영역에서 주류(主流)로 되는 것이다.
심리적 내전을 겪고 있어서 해방 후 정국을 연상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동안 우리가 장만한 밑천들이 있어서 나에게는 지금이 지난 수백 년의 역사를 통해 이 혁명의 성공에 가장 근접한 시기로 보인다.
이 땅에서 ‘중도’가 정치 무대에서 주류가 되어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조선(朝鮮)은 망했고, 독립운동이나 해방공간이나 건국과정에서도 연합(聯合)이나 협력보다는 격렬한 대립으로 결국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야 했다.
운 좋게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함으로써 2차대전 후 독립한 나라 가운데서는 유일하게 세계 10대 부국(富國)의 민주주의 국가로 나라의 위상을 세울 수 있었지만, 오늘 또다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외부 요인보다는 우리 내부의 원한(怨恨)과 증오를 중도의 철학과 정치로 해소하지 못한 업보(業報) 때문이다.
중도는 양극단으로부터 두들겨 맞는 허약한 중간 지대가 아니다.
우리가 제대로 중도를 주류로 만들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중도’라는 말이 이렇게 비치고 있을 뿐입니다.
중도는 양극단을 두들겨 시대 정신의 과녁을 정조준하는 사상이며 정치다.
지금의 시대정신은 묵은 원한과 증오를 내려놓고 ‘중도 연합정치’를 통해서 대한민국이 기적적으로 이룩한 밑천을 살려서 21세기 문명의 선도국으로 도약하는 것이다.
급박하게 진행되는 정치 일정 속에서 중도(상생과 통합)가 주류로 되는 신기원의 정치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당당하게 선택지로 나설 수 있어야 한다.
적대적 공생의 기득권 양당 체제와 퇴행적 정치문화로는 한국과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중층의 위기를 넘어설 수 없다.
연합정치가 성공하도록, 진영의 창조적 재구성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연합정치의 성공은 이상이 아니라, 절박한 현실적 요구다.
정파나 진영의 이익을 넘어 진정으로 나라와 공동체의 운명을 생각한다면, 이 길을 통하지 않고는 더 이상 앞으로 나가기 힘들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현실에 바탕을 둔 건강한 진영 간의 이념이나 정책을 둘러싼 투쟁이라면 얼마든지 원칙 있는 타협을 할 수 있고, 나아가 변화된 현실과 위기 가득한 미래에 대한 공동 대응으로 적대 관계를 보완 관계로 발전시킬 수도 있다.
지금 ‘체제 전쟁’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일부 지식인이나 종교인 그리고 그들에게서 머리를 빌리고 있는 정치인들이다.
사실의 세계에서 보면 과거 좌우 대결에서 체제 전쟁은 우파(자유민주주의)의 승리로 끝났다.
그것을 확신하지 못하고 이미 사라진 귀신(鬼神)과 싸우려 한다면 우파의 정체성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리고 좌우(左右)는 고정되는 것이 아니다. 수구적인 좌파도 있고, 진보적인 우파도 있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서로 부딪치는 가치와 이념은 상당 기간 대립 투쟁할 수밖에 없는 면이 있지만, 피를 부르는 투쟁(체제 전쟁)이 아니라 건강한 경쟁과 보완 관계로 바뀌는 것이 역사의 진보다.
내가 주장하는 중도 연합정치는 외형상으로는 탕평 인사를 통한 거국내각과 비슷할지 모르나, 그 내용은 지금까지의 좌우 이념이나 정책이나 정강(담론)들을 세계의 변화된 현실에 맞게 창조적으로 재구성하고, 권력 투쟁을 위주로 하는 정치문화를 그 뿌리에서부터 바꾸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 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대기업과 부유층의 사회적 책임과 양보를 이끌어낼 수 있는 보수 정당과 노동의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해 기득권 노조의 양보를 설득할 수 있는 진보 정당들이 문명 전환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향해 함께 노력하는 정치문화와 제도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것을 촉진하는 것이 지식인이나 종교인의 양심과 지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의 지식계는 어떤가?
나는 이런저런 매체를 통해서 정치에 관여하는 한국 지식계(知識界)를 접하면서 조선 선조(宣祖) 당시의 사림(士林)을 보는 것 같은 안타까움을 느낀다.
내가 이정철의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를 한국 지식계에 추천하는 이유는 물질과 제도가 상전벽해로 바뀐 것 같은데, 지식계는 450여년 전의 조선 사림(士林)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선한 지식인이라고 스스로는 굳게 믿고 있었을지 몰라도, 실제로는 자기중심의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아 잔인하게 척결하려고 하였다.
영정조 시대의 노력이 있었지만, 이 폐단을 근본적으로 넘어서지 못한 채 결국 조선은 망국(亡國)의 길을 걸었다.
함께 살 수밖에 없는 동반자를 생각이 다르다고 척결 배제하려는 사고(思考)야말로 자타(自他)공멸(共滅)의 원흉이다.
한국 지식계(知識界)가 이 뿌리 깊은 폐단을 넘어서지 않으면, 이중 삼중의 위기의 시대에 한국은 그동안 피와 눈물로 장만한 귀한 밑천들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결국 쇠퇴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이것이 눈에 보이기에 나는 중도(中道) 혁명을 간절한 심정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중도(中道)는 어떤 고정된 정치적 입장이나 태도가 아니다.
사람들이 많이 오해하는 것은 중도(中道)를 양극단의 중간에 있는 입장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선거철이 되면 중도 확장의 정치공학적 접근을 너나없이 한다.
중도와 통합이 인기 있는 말이 된다. 그리고 선거가 끝나면 다시 낡은 정치로 돌아간다.
중도는 그런 류의 것이 아니다. 확증편향에 사로잡히지 않고 진실을 찾아가는 그 태도가 중도의 출발점이다.
나는 이것을 지적(知的) 혁명으로 본다. 한국 지식계는 450년 전의 사림(士林)에서 벗어나는 지적 혁명을 보편적으로 이룩하지 못했다.
아무리 현학적(衒學的)인 언사를 구사하더라도 지적 혁명을 거치지 못하면 그것은 나쁜 정치를 만드는 허사(虛辭)에 불과하다.
물질ㆍ제도ㆍ사람(의식)의 유기적 연관 속에서 역사는 변화한다. 나는 그 중심이 사람 쪽으로 옮기고 있다고 본다.
중도의 정치 혁명을 위해서는 제도와 사람이 준비되어야 한다.
그중에서도 더 결정적인 것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인간 의식(意識)의 진보가 물질과 제도의 진보를 견인하는 시대로 되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팬덤이나 알고리즘에 빠지지 않고 자주적으로 '나는 어떤 삶을 원하는가?' '나는 어떤 나라,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그렇게 하기 위해서 나는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해야 하는가?'를 묻고 또 물어야 한다.
후보로 나서는 정당과 정치인들은 이런 국민의 물음에 부응하는 비전과 정책으로 당당하게 경쟁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와 국민에 대한 도리이며 신성한 의무다.
이 과정에서 '낡은 진영의 벽을 넘어서는 사람들 간의 결합과 연대'가 감동적 사건으로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자체가 지금까지의 퇴행적 권력투쟁에서 벗어나는 정치문화의 출발이며, 나아가 한국 정치 혁명을 성공시키는 동력으로 될 수 있다.
비록 두 달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고도의 집중과 협력을 통해서 지금까지 상상해 본 일이 없었던 새길을 열어 갈 수 있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축적된 밑천과 잊어본 적이 없는 오래된 큰 꿈이 있다.
심리적 내전을 극복하고, 지정학의 족쇄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을 21세기 새로운 문명과 새로운 질서를 선구적으로 개척하는 나라로 만들어 보자.
내전을 종식하고 전환과 통합의 새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정치 보복의 악순환 같은 퇴행의 원인으로 작용한 현행 헌법을 반드시 개정해야 한다.
차기 정부는 연합정치와 협동정치가 제도적으로 가능한 개헌(改憲)과 선거법 개정 등을 통해 제7공화국의 출범으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헌법 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박한 과제다.
비상계엄과 같은 망동(妄動)으로 촉발된 지금의 선거 국면이야말로 개헌의 적기(適期)다. 되돌릴 수 없는 일정을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의 권력 분산과 책임총리제를 채택하는 권력 분립과 대통령 선거에 결선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내용으로 먼저 개헌한 다음 그 헌법에 따라 차기 정부를 구성하고, 보다 정교한 2차 개헌을 차기 정부의 출범과 구체적 일정 속에서 이루어지도록 공약으로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실은 축제가 아니라 전쟁 같은 선거를 치루어야 할지 모르겠다.
불가피한 싸움이라면, 중도가 주류로 되는 정치 혁명을 위해 나는 양심과 지성에 부끄럽지 않게 한 표의 주권을 행사할 것이다.
퇴행적인 진영 싸움은 말리고,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흥정은 붙이면서. 중도가 몸통이 되어 건강한 좌우 보혁의 양 날개로 날아오르는 꿈을 꾼다.
윤석열 전(前) 대통령의 망동(妄動)으로 이번 선거는 실제적으로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주인공이 되는 선거로 되었다.
이 대표 스스로 자기 정체성을 중도 보수라고 밝히고 있고, 탄핵 심판이 이루어진 날 국민들에게 대통합의 정치를 약속하는 메시지를 낸 바가 있다.
국민의 힘은 계엄 옹호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채택함으로써 당선 가능성이 있는 자당 후보를 내기 힘든 상태를 자초하였다.
그럼에도 지금까지의 양당 중심의 선거가 이루어진다면, ‘누가 더 나쁜가’를 두고 다투는 네거티브 선거가 전쟁처럼 치러질 것이다.
비록 축제 같은 선거는 아니더라도, 비전과 정책을 두고 경쟁하는 포지티브 선거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어야 연합과 협동의 정치에 대한 전망이 뚜렷해 질 수 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양당 후보 이외에 중도 연합정치를 표방하는 경쟁력을 갖춘 제3의 후보가 등장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세 진영이 정책 경쟁을 하는 가운데, 차기 정부의 구성과 협치에 대한 창조적인 상상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제3의 후보는 당선 가능성 여부를 떠나서, 심리적 내전 상태에 있는 정치를 상생과 협동의 정치로 전환하는데 그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원포인트 개헌이라도 해서 결선 투표제를 도입할 수 있다면, 차기 정권은 보다 튼튼한 지지 기반에서 안정적으로 내전을 극복하고 전환과 통합의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중도는 양극단을 두들겨 시대 정신의 과녁을 정조준하는 사상이며 정치다.'
- 이남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