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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선택’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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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이라는 단어는 언론에서 금기어로 되어 있다.

대신 극단적 선택이란 단어를 쓴다.

언제부터인가 극단적 선택이란 말이 자살과 동의어가 되었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조카인 이 모 씨가 살던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

당시 47세였던 그는 필자의 조카사위였다.

오래전 도쿄 데이코쿠(제국) 호텔에서 모두가 부러워하는 결혼식을 올렸다.

그의 부모인 이창희 회장 부부와 삼촌인 이건희 회장 부부를 비롯한 삼성 가족들이 여럿 참석했고,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은 물론 다른 가족들도 참석했다.

 

화목하고 축복이 넘치는 결혼식이었고 유명 가수들과 연예인들도 참석했다.

이창희 회장은 훤칠하고 수려한 용모에 세련된 매너가 돋보였다.

몇 년 후 지병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일찍 떠났는데 그의 두 아들이 새한미디어를 이끌다가 IMF를 만났다.

둘째 아들 이 모 씨가 세상을 등진 것은 회사가 무너졌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 저명인사 중 여러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언뜻 떠오르는 사람들만 해도 노무현 전 대통령, 유명 여배우 최 모 씨, 현대, 삼성, 두산 등 재벌회사의 회장들, 행복 전도사 최 모 씨 등이다.

 

자살은 인간만이 하는 행동은 아니라고 한다.

동물 중 개나 말, 고래 등도 자살이라고 할 수 있는 행동을 하는데 왜 개가 물에 일부러 빠져 죽고 고래가 해변으로 나와 죽는 것일까?

개의 자살은 150년 전 영국 신문에 아래와 같이 발표된 바가 있다.

"이 검은 개는 며칠 동안 움직임이 줄어들더니 어느 날 스스로 물에 뛰어든 뒤 가라앉으려고 애썼다.

구조된 뒤에는 묶여 지냈으나 풀려나자 다시 물에 들어가기를 여러 차례 거듭한 결과, 마침내 나중엔 머리를 물에 처박아 단호하게 목적을 달성했다."

이 개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는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다.

 

말도 활동이 줄어들고 먹이를 안 먹다가 갑자기 높은 골짜기에서 뛰어내려서 죽는 경우가 가끔 있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고래들은 대개 집단 자살하는 행태를 보이는데 인간이 바다에서 많은 활동을 하면서부터 고래의 자살이 늘고 있다.

사람 다음으로 지능이 높은 고래는 특수한 저주파를 내보내 서로 소통하는데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소음(잠수함이나 석유 시추 진동 등)의 증가는 고래들에게 청각 장애를 일으킨다.

즉 아무리 애써도 자신의 말에 반응하는 동료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면 고래는 극심한 외로움에 빠져 자살을 한다는 설이 있다.

 

그러면 인간은 어떤 경우에 자살을 시도할까?

우선 자살은 심한 정신적 육체적 괴로움에서 탈피하는 방법으로 행해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평생 쌓은 명예가 실추되는 아픔을 피하고자 자살을 택했을 것이다.

두산 박 모 회장의 유서에 의하면, 회사가 어려워지고 부채를 감당할 수 없자 그런 극단적인 행동을 했다.

탤런트 최모 씨는 사채 루머로 본인의 명예가 실추된 고통을 감당키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행복 전도사 최 모 씨는 정신적 고통보다는 심한 육체적 고통을 견디기 어려워 자살을 한다고 유서에 썼다.

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으로 방송에서 행복의 지혜를 전파했던 행복 전도사 최 모 씨.

그녀의 유서에는 700가지 통증이 나온다.

아무리 행복 전도사라 해도 오랜 기간 심히 아프고 회복될 희망이 없을 때 인간의 감정은 극히 약해지고 위태롭게 된다.

인간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끝이 안 보이는 심한 고통을 감내하기 힘들면 그 회피의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한다.

 

자살을 하는 이유가 속죄를 하기 위해서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자기의 실책으로 소속 단체에 큰 손실을 입혔다거나 대대로 내려오는 사업이 무너지게 되면, 그 책임을 자살로써 갚으려는 생각을 한다.

반면에 자기의 결백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자살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억울하게 모함을 받을 경우 자살을 함으로써 결백이 증명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는 자살을 희생정신의 일부로 생각하는데, 회사나 교회의 비리를 안고 자살하거나, 폭력배들이 자살하면서 조직과 연결고리를 끊는 경우도 있다.

또 오래 몸져누워 있거나 식물인간이 될 가능성이 있으면, 주위 가족들에게 큰 부담을 안겨준다는 생각에 본인이 스스로 산소 호흡기를 빼는 등 자살 시도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의외로 자살하는 사람 중에 우울증 외에는 특별한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우울증을 가벼이 여길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자살과 밀접하게 관련되기 때문이다.

사실 자살자의 반 이상은 우울증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5명 중 1명이 걸릴 정도로 흔한 동시에 잘 치료하면 감기처럼 나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우울증 환자의 20~30% 정도만이 치료받고 있으며 나머지는 방치되는데, 결국 이런 사람들이 자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살에 관한 어느 이론도 가장 근본적인 질문, 즉 비슷한 상황에서 누구는 자살하고 누구는 그렇지 않은 이유를 확실히 설명하지 못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조이너 교수는 '왜 사람은 자살하는가'라는 책을 발표했다.

그는 우울증을 앓는 사람 중에서 자살에 성공하는 사람은 반드시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킨다고 주장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죽음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고립되었다거나 남에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었다고 느낄 때 죽고 싶은 심정이 강력하게 들게 된다.

또 하나는 자살에 성공한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자살하고 싶어도 행동에 옮기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로 강물은 너무 차고, 아파트는 너무 높고, 수면제는 한꺼번에 먹기 힘들다.

 

자살 성공률이 높은 사람들은 군인과 의사다.

총을 맞아 보았거나 동료가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한 군인들은 자신의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 들인다.

의사들 역시 환자의 고통과 죽음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죽음을 떠올리게 되므로 자살 비율이 일반적으로 높다.

 

조이너 교수는 사회적으로 소외감을 느끼면서 고통에 무감각한 사람일수록, 자살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주변에서 자살할 만한 사람을 미리 예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주위에 사랑을 나눌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고, 인생의 의미도 찾을 수 없으며 작은 희망도 포기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근래에 한국에서 자살한 유명인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의 유서에서 암울한 심경을 잘 드러냈다.

즉 주위 사람들에게 고통만 주니 부담스럽고 건강이 나빠 책도 못 읽으니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 유서 전반부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위대한 음악가 베토벤은 32살에 청력을 잃기 시작하면서 유서를 썼지만(1802) 실행하지는 못했다.

 

-베토벤의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후반부

 

선천적으로 타고난 예술적인 자질을 충분히 발휘하기도 전에 죽음이 닥쳐온다면, 그리고 나의 운명이 너무나 가혹하기에 죽음이 그렇게 일찍 찾아온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좀 더 늦게 찾아와 주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그러나 그래도 나는 만족하리라.

죽음은 나를 끝없는 고뇌로부터 해방해 주지 않겠는가.

죽음이여! 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오라.

나는 너를 용감하게 맞으리라. 그러면 잘들 있거라.

 

베토벤도 자살을 결심한 이유가 죽음이 끝없는 고뇌로부터 해방해 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자살을 실패한 사람들에게 대부분 나타나는 현상은 자기가 실패한 것을 안 순간 대단히 기뻐했다는 것이다.

너무 힘들어 자살을 시도했었지만 실패한 후 생각해 보니, 인생에 작은 의미도 찾을 수 있었고, 실낱같은 희망도 다시 보이더라는 것이다.

죽음에 가까이 가보면 삶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것인가.

 

마지막으로 최근 많은 논쟁거리인 안락사에 대해 생각해 보자.

몇 년 전 호주의 유명 생물학자 구달 박사(David Goodall)는 심각한 질환이 없는데도 안락사를 택했다.

그의 나이 104세였다.

 

그는 병들어 고통이 있기 전에 행복하게 죽겠다며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안락사가 허용되는 스위스로 가서 스스로 주사의 밸브를 열고 생을 마감했다.

100세가 넘은 나이에 병들고 제 기능을 못 하는 몸 때문에 사는 것이 더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느끼고 스스로 인생을 마감한 구달 박사.

 

그는 생물학자로서 평생을 학문에 헌신했으며, 자신의 선택이 논란을 일으킬 것을 알면서도 이를 통해 안락사에 대한 논의를 촉진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마지막 순간에 베토벤의 교향곡 9합창을 들은 것도 상징적이다.

이 곡은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찬미하며, 인류애와 희망을 노래하는 곡이다.

구달 박사의 선택은 개인의 자율성과 삶의 마무리에 대한 깊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안락사라는 복잡한 윤리적 문제를 다시 한번 공론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결정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모든 사람은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또한 안락사는 비교적 고통과 불안 없이 준비된 평온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든 생명은 고귀하며,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를 부정하는 행위라고 믿는다.

특히 건강상 심각한 문제가 없는 사람이 안락사를 선택하는 것은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고, 이것이 허용되면 사회적으로 약자나 노년층에게 부담스러운 존재라는 압박을 느끼게 해 원치 않는 안락사를 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은 어느 쪽의 입장에 더 공감하는지?

 

철학자들의 죽음에 대한 명언을 몇 개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죽음은 존재하지 않고, 죽음이 오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 에피쿠로스 (Epicurus)

 

삶을 두려움 없이 산 사람에게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다.” - 키케로 (Cicero)

 

죽음은 우리 각자에게 고유한 가능성이다. 그것을 수용함으로써 우리는 진정으로 존재한다.”

-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

 

팔십년전거시아 (八十年前渠是我) 팔십년후아시거 (八十年後我是渠)”

80년 전에는 저것이 나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저것이로구나

- 서산대사 휴정 

 

* 한국 생명의 전화: 1588-9191, www.lifelin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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