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가 기르던 강아지 이름이 아미다.
아미는 하얀 몸통에 양 귀와 엉덩이 부분에 까만 털이 있는 예쁜 강아지다.
시추와 나삽소 종 사이에 태어나서 크기는 시추만한데 시추보다 얼굴이 귀엽다.
누가 무슨 개냐고 물어보면 그냥 시추라 한다.
처음 데리고 올 때 7살이었는데 우리가 3번 이사를 하는 동안 12살이 되었다.
사람 나이로 치면 60이 넘었다는데 과연 동작도 굼뜨고 움직이기를 싫어한다.
이사 오기 전 집에서는 2층 계단도 오르기 싫어해서 우리가 들고 다녔다.
운동 부족이라 생각하여 아기 구루마에 태우고 산책을 나가서 돌아올 때는 걸어오게 했다.
강아지를 아기 구루마에 태우고 다니니 지나 가던 사람들이 놀라며 돌아본다.
아미는 음식 중 고구마를 가장 좋아한다.
고구마 냄새를 맡으면 꼭 왼쪽으로 빙빙 돌고 혓바닥을 낼름 거리며 달려 들었다.
왜 왼쪽으로 만 도는지는 아미 자신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사람이 먹는 음식을 주면 알러지가 생기고 털도 빠진다 해서 그 좋아하는 고구마를 끊었다.
얼마 전 이사한 후 아미는 더욱 힘이 없어 보이고 하루 종일 잠만 잔다.
밥도 거의 먹지 않는다. 알러지 때문에 병원에서 특별 주문한 밥이라 맛이 없는지 배가 고파야 겨우 먹는다.
하루 정도 안 먹다가 먹겠지 했는데 3-4일이 지나도 안 먹는다.
덜컥 걱정이 돼서 병원에 데리고 갔다.
수의사가 청진기로 진찰 해 보고 배도 여기저기 만져 보더니 밥을 바꿔주었다.
양고기 냄새가 나는 밥이라는데 아미도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그 다음 날부터 그 밥도 먹지 않는다.
너무 힘이 없어 보여서 오랜만에 고구마를 주었는데 그것도 안 먹는다.
아미가 고구마를 안 먹다니 그제서야 심각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 자세히 보니 먹은 게 없는데도 배가 불룩하고 숨쉬는 게 평소와 달랐다.
옆구리가 깊숙이 패인 것 처럼 들어 가면서 숨을 쉬는데 어떤 때는 약간 경련을 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그날로 병원에 다시 데리고 갔다.
며칠 전 아미를 본 수의사가 아닌 다른 수의사가 보더니 배에 물이 찼다고 하며 X-Ray를 찍자고 한다.
잠시 후 아미와 다른 건강한 개의 필름을 비교해 보여 주는데 아미는 물이 너무 차서 심장과 폐가 안 보일 정도다.
불과 일 주일 전 아미를 본 다른 의사는 도대체 무엇을 본 것인가?
아니면 1주일만에 이렇게 악화 될 수가 있는 것인가?
의사가 즉시 물을 뽑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하여 아미를 맡기고 집에 왔다.
그날 오후 아미를 데리러 갔더니 약 350cc의 약간 붉고 누런 액체를 보여준다.
모두 아미 배에서 나온 건 데 이것도 70%만 뽑은 것이라고 한다.
아미가 얼마나 중한 병에 걸렸는지 알게 되었다.
의사는 암일 가능성이 높고 수술하지 않으면 오래 살기 어렵다고 한다.
개가 암에 걸리는 이유를 들어보니 사람과 똑 같다.
나쁜 음식, 나쁜 공기. 운동 부족. 스트레스 등 때문이란다.
아미에게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가끔 아미가 쓰레기 통을 뒤지고 휴지를 찢는 말썽을 부리면 화장실에 가두기도 했는데 그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아내는 맛 없는 밥을 몇 년간 먹어서 그 스트레스 때문에 암이 되었다고 확신한다.
아미를 가끔 야단 친 딸 아이까지 모두 자기 입장에서 지난 과오를 반성한다.
아미의 상태를 일찍 발견하지 못한 것이 무엇보다 후회가 되었다.
혹시 새로 이사한 집의 석면때문에 그런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이렇게 빨리 암이 진행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마 이전 집에서 계단을 못 다닐 때부터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아미는 물을 뽑은 다음 날부터 생기를 되 찾고 음식도 어느 정도 먹기 시작했다.
가족 회의 끝에 이제부터 뭐든지 아미가 잘 먹는 것은 다 주기로 했다.
알고 보니 아미가 짜장면을 좋아하고 콩나물 국밥도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음 날은 청국장도 주니까 너무 좋아한다.
완전히 한국 강아지의 본색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이렇게 약 8일정도가 지나자 다시 배가 빵빵 해지며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아미로서는 몇 년만의 즐거운 8일이었다.
다시 9일 째 수의사를 찾았다.
그녀는 이 병원에는 초음파가 없어 확실한 진단이 어려우니 다른 큰 병원에 가 보라며 바로 시간을 잡아 주었다.
큰 병원에 가보니 건물 자체가 서울의 종합병원 같이 시설이 좋았다.
고급 대리석 바닥에 강아지 응급실과 구급차를 따로 운영하고 있으며 수의사도 병에 따라 담당 전문의가 여럿 있었다.
한국에 이런 곳이 있다면 위화감이 클 것이다.
로비에서 아픈 개들의 수술을 기다리는 개 주인들 중 우는 여성이 많았다.
옆에서 위로하는 사람들까지 마치 서울의 어느 종합 병원 중환자실에 온 것 같았다.
아미를 맡기고 한 시간 가량 기다리니 담당 수의사가 수술복 처럼 퍼런 옷을 입고 나왔다.
'이 상태라면 하루 입원시키고 암을 확인하기 위해 여러 가지 조사를 해야 된다'고 한다.
그렇게 하는데 대강 어느 정도 경비가 드는지 물어보니 30분쯤 후에 계산을 해 왔는데 약 3000불이다.
이것도 확실 한 것은 아니고 미진한 부분이 있으면 더 정밀조사를 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1주일 입원 시키고 경비는 만불 정도라고 한다.
물론 아미를 살린다는 보장은 할 수 없다고 덧 붙였다.
우리는 일단 아미를 다시 데리고 가겠다고 하니까 그럼 지금 당장 배의 물이라도 빼줘야 위급상황을 넘길 수 있고 여러 조사는 안 해도 하루는 병원에 있어야 안전 하다는 것이다.
아미를 찾으러 다음 날 오후에 가니 로비에 앉아서 울고 있는 여자아이들이 있었다.
자기들 끼리 하는 말을 들으니 집 앞에서 놀던 개가 차에 치였고 지금 수술 중인데 이 개가 죽으면 자기는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며 슬피 운다.
사람 사이보다 사람과 개 사이가 더욱 각별하게 보였다.
로비에서 기다리던 중 아미를 데리고 나오면서 의사가 하는 말이, 물을 빼면서 보았는데 확실히 암이라고 한다.
혹시 암은 아닐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작은 희망이 완전히 사라졌다.
'3000불 정도 들여야 확인 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라는 말은 묻지 않았다.
이제 아미에게 강한 스테로이드를 써야 한다며 들고 나온 약을 우리에게 주었다.
그래도 한국계의 이 수의사가 신경을 많이 써주어 의사 상담비를 깎아 주고 약도 며칠 분을 더 주었다.
아미가 다음 날은 좀 피곤 해 하더니 약을 먹은 이틀 째 부터 옛날의 아미로 돌아왔다.
뭐든지 잘 먹는 것은 물론 우리가 외출하면 따라 나간다고 야단이다.
막 뛰어다니고 우리와 장난도 하자고 덤빈다.
아미가 어렸을 때 며느리가 몰래 작은 가방에 넣고 백화점을 가곤 했었는데 다시 작은 가방에 들어가겠다고 난리다.
스테로이드가 아미를 다시 회춘시켰다.
아미가 활력 있고 건강해 보이니 일단 그러면 되었지 싶었다.
사실 동물도 인간도 건강하게 잘 먹고 편하면 일단 기본적으로 행복한 것이 아니겠는가..
언제 어떻게 생이 끝날지 잘 모르는 것도 마찬가지이고..
아미는 지가 암에 걸린 지 모르니까 맛있는 것 많이 먹고 활발하게 살 수 있을 때까지 사는 거다.
이런 면에서 혹시 사람보다 나은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을 빼고 새 약을 먹인지 1주일이 지났는데도 아직 활기가 있고 배도 별로 안 부른다.
밤에 잠을 좀 못 자는 것 같긴 한데 그 정도면 큰 병원에 다녀온 보람이 있었다.
이렇게 한 달에 1-2번 정도만 물을 빼면서 한 반년만 살아도 아미는 말년을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았다.
물 뺀 지 보름 정도가 되니 다시 좀 안 좋아졌다.
작은 병원에 가서 이번에는 경험이 많은 남자 의사를 만났다.
x- ray를 찍어 봤는데 물은 별로 많지 않으나 무언가가 많이 늘어나서 배가 빵빵 하다고 한다.
좋지 않은 소식이다 암이 더 커진 것 같다.
조금 뺀 물을 다시 시험실에 보냈다. 결과는 역시 암인데 어떤 암인지 알 수 없었다.
이 의사는 서로 힘들기 전에 안락사 시키는 방법도 있다고 넌지시 권한다.
일단 이제부터는 암약과 스테로이드 약을 교대로 먹이기로 했다.
암약은 너무 독해서 이틀에 한 번만 식사와 같이 먹여야 한다.
이 약을 먹는 날은 아미의 활동이 줄어든다.
아미가 8일쯤 지나자 다시 배가 벌럭벌럭 하면서 보기가 안 좋다.
그래도 아직 식욕도 있고 별로 힘들어 하지는 않는다.
음식도 청국장은 계속 잘 먹는다.
콩나물 국밥은 싫증이 났는지 안 먹는다.
이렇게 보름 정도 지날 때마다 물 빼주기를 해 주며 5번째 되던 날,갑자기 아미가 숨도 쉬기 어려워하고 밤새 기침을 했다.
내가 일이 좀 있어서 아내가 아미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아내가 전화로 아미가 죽었다고 했다.
약간 울먹이는 목소리로 수의사를 바꿔준다.
수의사도 영어로 오늘 아미가 죽었다고 한다.
가슴이 철렁했다.
드디어 아미가 갔구나.
그런데 좀 이상해서 다시 잘 들어보니 오늘 물을 빼다가 심장이 멈춰서 죽었었는데 CPR이라는 것을 해서 살려 냈다는 것이다.
심폐소생술이라고 하던가..
아내도 당황한 나머지 잘 못 알아 들은 거다.
여하튼 아미는 잠깐 죽었다가 살아났다.
아미가 사람이라면 천국에 잠깐 다녀온 기행을 쓸 수도 있을 텐데..
사람도 병원에서 죽었다고 한 후 나중에 다시 살아났다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아미를 집으로 데려온 후 옆집 사람에게 아미에 대해 말해 주었다.
너무 어이 없어 하면서 자기가 대신 처리 해 주겠다고 한다.
어떻게 매번 몇 백 불씩 주면서 물을 빼느냐고.. 사람도 아니고 낫지도 않을 거면서...
어떻게 할거냐고 했더니 거북이처럼 방생 해준다고 한다.
L.A 2번 고속도로 위로 가서 산속에 놔 두고 오면 된다고 한다.
겨울이라 너무 추워서 그건 좀 어렵겠다고 했다.
며칠 지나니 아미가 또 빌빌거린다.
먹지도 못하고 밤에 잠을 못 자서 낮에는 서있다가 비틀거리며 존다.
이제 누워 있지도 못하고 잘 앉지도 못 한다.
서서 졸다가 넘어지면서 깨면 다시 일어선다.
옆구리부분이 생선 아가미처럼 벌떡거리며 입을 벌리고 숨쉬는 것을 몹시 괴로워한다.
내일은 보내줘야겠다.
병원에 전화 하여 안락사주사를 놓기로 다음 날 오후 4시로 약속했다.
다음 날 갑자기 아미가 활발하게 집 안 구석구석을 뛰어다니며 논다.
고구마도 잘 먹는다. 도저히 병원에 갈 수가 없다.
설마 아미가 전화를 엿 들은 것은 아닐 텐데.. 아미가 힘들어 하면 데리고 가기로 했다.
다시 1주일 정도가 지나자 이제 아미가 너무 힘들어한다.
물을 빼 준지 2주 만이다. 저녁 5시 30분에 병원약속을 했다.
저녁이라 피곤도 하고 다음 날 갈까 해서 오전 시간 약속을 하려 하니 오후 3시 밖에 안 된다.
그 동안 아미가 너무 힘들 것 같고 오늘 밤에 집에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루 생명을 연기 할 까 했는데 그냥 가기로 했다.
병원에서 안락사에 대한 여러 장의 종이에 사인을 하는데 간호사의 얼굴도 굳어있었다.
이러한 과정도 강아지의 체중에 따라 무거우면 더 비싸다.
또 옆에서 입회하면 돈을 더 내야 하고 화장 후 뼈를 가지고 오면 또 몇 백불 더 줘야 한다.
아미는 12년을 살다가 2009년 12월 16일 저녁에 갔다.
마지막 2-3달은 힘들었지만 먹을 것은 신나게 먹고 갔다.
아미는 태어나서 7살까지는 며느리와 그 후 5년은 우리와 살았다.
안녕 아미…
아무리 유순하고 영리한 강아지라도 강아지는 이제 키우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