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제를 사는 것도 아니고, 오늘을 사는 것도 아니고, 내일을 사는 것도 아니다.
사람은 하루를 산다.
아침을 살고, 대낮을 살고, 저녁을 살고, 한밤을 산다.
어제를 그리며 사는 것도 아니고, 내일을 위해서 사는 것도 아니고, 오늘에 쫓기며 사는 것도 아니다.
하루를 사는 것뿐이다.
하루 속에는 아침과 저녁이 있을 뿐, 어제와 내일은 없다.
하루 속에는 지혜와 사랑이 있을 뿐, 삶과 죽음은 없다.
하루 속에는 진리와 생명이 있을 뿐, 몸과 마음은 없다.
하루 속에는 어짊과 옳음이 있을 뿐, 있음과 없음은 없다.
세상에 새 물이 있을 리 없지만, 아무리 더러운 물이라도 땅 속을 오랫동안 거쳐 나오면 어느새 새 물이 되는 법이다.
일체 의식적인 것이 끊어져 버리고, 오랫동안 무의식의 세계를 헤매고 가다가 초의식의 세계로 터져 나올 때,
어제니 오늘이니 내일이니 하는 것이 다 떨어져 나가고, 오직 하나의 하루살이가 시작되는 것이다.
마치 깊은 단잠을 자고 깨는 젊은이처럼 사람에게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자기가 있는지 없는지도 잊어버리고,
자기가 사는지 죽는지도 모를 정도로 살아가고 있을 때가 있는 법이다.
얼핏 보면 바보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위대한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런 것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
오직 하나의 삶을 찾아서 가고 또 가고 찾아가다가, 나중에는 가는 데 지쳐서 가는 줄도 모르고 가고 있을 때,
돌연 바위가 터지고, 인연이 끊어지고, 꽃과 잎이 떨어지고, 몸과 마음이 떨어져 나간 후,하나의 참삶으로 터져 나온다.
낡은 세상을 깨쳐 버리고 새로 나온 새 사람,
그것이 하루살이다.
하루를 사는 것뿐이다.
하루 속에는 삶도 죽음도 없고, 몸도 마음도 없다.
다만 일체의 상대가 끊어져 버리고 하나의 절대가 빛날 뿐이다.
인생은 본래 하루살이다.
하루살이가 하늘살이요,
하늘살이가 하루살이다.
월간 思索 제 53호 (1975년 3월 1일)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