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보는 각도에 따라서 여러 견해가 있을 것이다.
나는 인문운동가의 관점에서 오래 전부터 '정명'(正名) 즉 시대의 요구에 맞게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것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을 총론적 원인으로 보고 있다.
다른 말로 정합성 있는 '종합 철학'의 부재 또는 '현실과 유리된 관념 체계' 등을 난맥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나라의 정치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잘 해보려는 의지의 순수성을 통째로 폄훼할 생각은 나에게는 없다.
오히려 안타까울 뿐이다.
이정표가 제대로 안되면, 아무리 애를 써도 옳은 방향으로 가지 못한다.
험산준령을 만나 고생을 하게 되어 있다.
평소 피력해 오던 견해를 두 가지만 이야기해 보겠다.
첫째, 미ㆍ일 ㆍ중ㆍ러 등 세계열강과 부딪치는 지정학적 위치에서 당당하게 자주적 입장을 취하기 위해서는 그 자주적이기 힘든 원인으로 되는 남북 대립과 적대를 해소하는 것이 근본이다.
70년 동안 체제의 이질성이 '민족'이라는 동질성보다 훨씬 커지고, 상대방에 대한 불신과 공포가 커서 실제적으로 진정한 대화가 어려운데, '통일'이라는 관념적 목표에서 벗어나지 못하니까 꼬인다.
실제와 관념의 괴리다.
'남북관계는 통일을 전제로 한 특수관계' '일민족 일국가' '우리 민족끼리'라는 현실과 유리된 관념에서 벗어나 ‘남북 두 국가 체제'를 우리가 주체적으로 제안하고 남북이 일반국가관계를 정립하고 평화공존 하면서, 핵 문제나 남북경제협력 등도 북쪽에 당당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어정쩡한 입장이다 보니까 남북의 현실에 비추어 당당해야 할 한국이 오히려 수세에 몰리는 현상을 빚고 있고, 남북 관계도 더 불투명하게 된다.
국가 대 국가라는 현실적 바탕을 뚜렷이 하면, 지금의 실정으로는 허위의식이 되기 쉬운 어정쩡한 '민족 공조'나 '통일' 등을 내세우는 것보다 실질적으로 남북 관계를 진전시킬 수 있다.
둘째, 내정은 '실질적 연정'을 분명한 목표로 하는 것이다.
이른바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서로 적대하는 것으로는 나라의 미래를 열어갈 수 없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교역국가로서 총생산력의 확보ㆍ양극화 이중화의 극복을 위한 사회적 대합의와 개혁ㆍ인류적 위기에 대응하는 새로운 문명 전환을 향한 여러 정책과 교육 대개혁의 세 목표가 국무회의의 한 테이블에서 조정 융합되지 않으면 미래를 열어갈 수 없다.
이제 바통을 이어받을 정치주체는 이런 관점을 명확히 하고, 진보ㆍ보수 ㆍ녹색 등의 정치 세력은 시대의 요구에 맞게 자기 정체성을 새롭게 세워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상대를 '척결' '청산' '배제'의 대상으로 보는 오랜 정서에서 벗어나 현재 발생하고 있는 장애를 제거하는 '정상화'라는 목표로 바꿔야 한다.
사실의 세계는 상호의존인데, 관념의 세계에서는 배척하고 있는 상태를 벗어나는 것과 과거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상태를 벗어나는 것은 표리의 관계에 있다.
미래를 향해야 한다.
아마 아직 이런 견해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나 집단도 많을 것이다.
나도 이런 저런 사정들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내 생각이 틀림 없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종합 철학'의 부족이나 미숙, 제대로 된 '이정표' 부재가 난맥상의 원인으로 보여와서 이것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어떤 세력이 집권하더라도 위에 말한 두 가지를 심사숙고하기를 바란다.
새벽의 단상이다.
인문운동가 이남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