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생사生死와 싸우다가, 생사에 죽었다가, 생사로 살게 된다.
생사와 싸운다는 것은 생사에 끼어 있다는 말이요,
생사에 죽는다는 것은 생사를 넘어섰다는 것이요,
생사로 산다는 것은 생사가 그대로 생명의 필수가 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생사와 싸우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생사가 언제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사는 것이 좋을까, 죽는 것이 좋을까 하고 고민해 보지 않은 인생이 있을 수 있을까.
사람은 혈기 왕성한 젊은 시절에 마음껏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고민은 젊은이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고민이란 별것이 아니다.
인생의 의미를 찾는 일이다.
사람은 삶의 의미를 찾기까지는 언제나 마음에 안심이 없다.
삶의 의미를 찾기까지 인생은 고민하기 마련이다.
있는 힘을 다하여 생사와 싸워가는 것이다.
그러노라면 싸움이 끝날 때가 있다.
그때 생사는 이미 생사가 아니다.
생사가 죽고만 것이다.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면 생사는 없어지고 만다.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다.
인생은 생사의 싸움 끝에서 죽어도 좋다 하고 눈을 꼭 감는 때가 있다.
그때가 바로 생사를 넘어서는 때이다.
이때부터 생사는 문제가 안 된다.
죽을 테면 죽고, 살 테면 살아라.
그보다도 사람에게는 할 일이 더 중요하게 된다.
인생의 할 일을 발견한 것이다.
이 할 일을 위해서 인생은 생사를 이용하게 된다.
삶이 일에 도움이 되면 살고,
죽음이 일에 도움이 되면 죽는다.
생사는 결국 구원의 도구요,
사랑의 수단이 되어 버린다.
나는 죽을 능력도 있고, 살 능력도 있다고 한다.
그것이 십자가요 부활인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에게는 사는 것도 사랑이요,
죽는 것도 사랑이다.
살아야겠으면 살고, 죽어야겠으면 죽는다.
백 번 살아서 구원하고, 천 번 죽어서 구원하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다.
생사는 그들의 생명이 되었다.
생사는 영원한 생명의 한 토막이다.
올 때는 오고, 갈 때는 간다.
오고 가고, 살고 죽는 것이 그대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진리로 자유롭게 하리니>서문 - 1985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