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의 책을 기사를 통해 접하고 읽어보았습니다.
현 기독교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신학적 논쟁을 소재삼아 "새 사도신경"이라는 대안을 제시하셨습니다.
공감하고 지지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소설속에 이미 다루어 두었듯이 현 교계의 논란의 구설수에 휘둘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해박한 지식과 많은 참고문헌을 사용하셨기에 안심은 됩니다.
저는 경북 포항에서 살고있는 황림이라고 합니다.
40대중반의 남성이고, 학원사업을 하고있습니다.
20대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신앙생활과 함께 성화의 과정을 거쳐가면서 내적 번민이 많은 중생입니다. ㅎㅎ
작가님의 글에서 다루듯
저는 전통교단에 소속된 교회를 섬기고 있고, 그렇게 교리를 배우고 신앙생활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몇년전에 나도 모르는 사이 어떻게 어떻게 하다가 신천지에서 두어달 성경공부를 접하게 되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뭔가 이상해서 이래 저래 찾아보니 "신천지"였습니다.
바로 그만두고...
몇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기성교회는 신천지를 이단이라하고,
신천지는 기성교회가 이단이라하고...
나 같은 일반 성도, 소시민은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나?
성경은 어렵고, 난해하고, 읽기에 너무 어렵고
지금까지 누군가 가르쳐준대로 "그런가 보다"하고 믿고 있었는데
어떻게 해야 되나? 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닿았고
그럼 기성교회에서 배운 교리도 모두 내려놓고
신천지에서 주장하는 그들만의 교리도 내려놓고
원점에서 "성경"이 이야기 하고자 하는
성경의 "작가"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놓고 성경을 읽었습니다.
물론 성경은 한 시대에 한 작가에 의해서 쓰여진 책이 아니지만
인류문명과 함께 지금 우리의 손에 쥐어진 "한 권"의 책으로써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기 있지 않겠냐?
성경을 성경이라 하고 엮은 그이(?)가 의도한 바가 있지 않겠느냐?
라는 생각으로 성경을 읽었습니다.
제가 읽은 성경의 관점은 "인식과 문학적 구조"였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였느니라 "
누군가 그렇게 "인식"하였다는 것이였습니다.
성경으로 들어가는 "문"이였습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한권의 책으로써 "문학적" 관점과 구조를 가진 "고전"으로 접근했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읽고나니...
성경은 전통교단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죽어서 가는 천국"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성경을 읽고난 제 개인적 견해입니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마음 "이 병이 들었는데
(어떤 선택의 순간에 결정을 내리는 그 순간의 마음의 상태)
이를 설명하는 것이 에덴동산의 선악과 사건이고
(이는 마치 희망을 품고 살고 있는 인간들-판도라의 상자, 사랑에 빠지게 되는 - 큐피트의 화살 같은 그런 이야기)
그 후 사람의 욕심에 따라 어떤 결정을 선택함으로써 (원죄)
내가 의도하고 원했던 결과가 아닌 (죄의 삯)
삶을 살게 되어 불행하고, 갈등하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해결되었으니.
자기를 부정하고 (욕심에 따른 자기의 마음을 부정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의의 따라 행하면 된다. 였습니다.
이전의 구 창조물이 아닌, 예수안에서 새로 거듭난 새 창조물이다.
그러니 "행하라 " 행해서 선한 열매를 달아라
선한 열매를 달기위해 고난이 좀 따르겠지만,
천국이 예비되어 있다.
그러니 좀 힘들드라도 참고 "행하라" 였습니다.
이것이 제가 성경에서 읽어낸 메세지 였습니다.
성경은 죽어서 가는 천국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고.
지금 내가 딛고 있는 현재에 초첨이 맞춰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국은 이미 내 "마음"에 있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임재하는 곳. 그곳이 성전이고,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이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곳인데
내 "마음"이 하나님께서 통치 하시게 순종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런 차원에서
작가님의 새사도신경에 매우 공감합니다.
구원의 유무를 떠나
(" 너 구원의 확신이 있느냐?"라는 진부한 질문은 걷어 차 버리고)
예수님이 행하신 그 삶의 종적을 따라
현재의 삶을 살아내는 것 그것이 참된 구원이고, 천국이라 생각합니다.
작가님의 책 잘 읽었습니다.
*소설을 읽고 글을 보내주신 황림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