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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전환을 위하여, 소박한 삶의 풍요 - 이남곡

wy 0 2023.11.14


단순 소박(素朴)한 삶은 자유롭고 풍요(豊饒)로운 삶입니다.

 

단순 소박한 삶은 가난한 삶이 아닙니다.

부자유를 참아야 하는 불편한 삶이 아닙니다.
원시로 회귀하는 삶이 아니라 새 문명의 삶입니다.

달빛 아래 사랑하는 사람과 와인을 들며 멋진 음악에 취하는 낭만의 삶입니다.

 

비교 경쟁감이나 우열감(優劣感)에 방해받지 않고, 잘하는 일(소질)과 하고 싶은 일(직업)이 일치하는 자아실현의 삶입니다.

이웃과 자연과 사이좋은 삶입니다.

자유롭고 기쁜 삶입니다.

거품이 가라앉은 진실한 삶입니다.

 

예술적 감성과 우애의 정을 깊고 넓게 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최고의 능력입니다.

돈으로 진정한 우애와 감성을 살 수 없습니다.

단순 소박한 삶 속에서 더 잘 키워집니다.
과학 기술과 SNS가 많이 도움이 됩니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과 친교를 나눌 수 있고, 지구의 모든 아름다움이 내 감성을 깨웁니다. 하물며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과 사계절이 뚜렷한 어머니 나라의 자연은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아침에 눈을 떠 머리맡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손가락만 터치하면 들을 수 있다는 것,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사람과 사람, 나라와 나라의 경계가 점차 사라져 사랑과 평화가 강처럼 흐르게 될 것입니다.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것에서도, 이름 모를 산새의 지저귐이나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데서도, 그 감각의 순도가 높아져 세상이 있는 그대로 최고의 예술이 됩니다.

사람들은 우주 자연계 안에서 자신이 지닌 특성을 가장 잘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자본주의가 그 황금기를 지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생태계 파괴, 기후 변화, 장기적 불황, 대량실업, 양극화의 심화 등 복합적 위기 앞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쇠퇴 몰락의 길로 직행하리라고 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현재 인류의 일반적 욕망과 의식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를 인위적으로 철폐하려는 노력이 실패한 원인입니다.

고도의 과학 기술과 의식(意識)의 진화 등으로 자본주의를 보다 인간적이며 생태 친화적인 제도로 바꾸려는 노력이 노동과 자본의 양방향에서 진행되고 있고, 계속될 것입니다.

 

오늘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인류 역사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이 무엇일까?’ 그것을 인류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잘 살릴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입니다.

 

개인을 해방하고 이윤 동기와 경쟁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그 많은 모순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생산력을 고도화했습니다.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는 나라나 지역이 지금도 많지만,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나라들에서는 적어도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을 갖추었습니다.

 

한국은 그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그런 나라에 들었습니다.

절대빈곤을 벗어난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자유 즉 물질적 결핍으로부터 생존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아가 사회적 자유관념계의 자유를 확대할 수 있는 물적 토대를 갖추는 것이 됩니다. 이것을 적극적으로 살리는 길의 하나가 단순 소박한 삶을 즐겁게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 길이 자신의 자유를 확대하고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것을 자각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하나의 대세(大勢)로 되는 것입니다.

 

물론 혼자 사는 노인이기에 가능하겠지만, 나는 100만 원도 안 되는 연금으로 자유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매달 25일만 되면 의심의 여지 없이 내 통장에 연금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한국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선물입니다.

그리고 나 자신의 노력이라면 관념계의 자유탐진치로부터의 자유를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다는 것 정도입니다.

 

누구나 행복을 원하고 있기 때문에 별난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이타적인 것도 아니고 굳이 말하자면 나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동기가 더 강하겠지요.

자발적으로 단순 소박한 삶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큰 자유를 누리는 것으로 됩니다.

해보면 압니다. 바로 증명됩니다.

값비싼 아파트· 자동차· 명품 등에 대한 소유 소비 욕구와 보수(報酬)나 사회적 지위로 평가되는 직장이나 직업에 대한 비교우열감(優劣感)으로부터 벗어나 보십시오.

자유의 새로운 경지가 열리는 것을 금방 경험할 것입니다.

 

내가 논어를 사람들과 함께 즐겨 읽는 것은 물질()의 일차적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는 바탕에서 행복과 자유의 확대를 정신의 성숙()에서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정신의 성숙이 무엇인가에 대해 논어 학이편에 나오는 자공(子貢)과 공자(孔子)의 대화입니다.


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子曰, 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가난하면서도 아첨함이 없으며, 부유하면서도 교만함이 없으면 어떠합니까?”

좋은 말이다. 그러나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며,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

 

빈이락 貧而樂부이호례 富而好禮라는 두 방향의 정신적 성숙이 뒤따라야 진정한 행복이 온다는 것은 인간과 사회를 깊게 통찰한 탁월한 견해라고 생각합니다.

빈이락(貧而樂)은 공자 당시에도 가난을 즐기라는 말이 아니고 부득이한 가난이라면 정신적 가치를 찾아서 즐기라는 말이지만, 물질 위주의 소비문화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생태적 재앙으로 되는 현대에 와서는 다른 의미로 더욱 빛을 발합니다.

 

절대 빈곤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나 사회가 진정한 인간의 가치에 눈을 떠 물질에 대한 집착이나 욕망이 자연스럽게 감소하게 되어 나타나는 단순 소박한 삶자발적 가난이라기보다 자발적 풍요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빈이락(貧而樂)'의 현대적 살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의 방향은 많이 가진 사람들이 필요한 몫을 충족시키고 여유가 있는 것을 '나누고 풀어놓는 것을 좋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이호례(富而好禮)'입니다.

실제로 이것도 해보면 바로 알게 됩니다.

부자로서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길이 바로 가까이 있다는 것을.

 

불평등과 양극화를 막기 위한 제도적 노력은 마땅히 계속되어야 하지만, 부유층의 정신적 성숙이야말로 세상을 평화적으로 진보시키는 아주 중요한 동력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그리는 대동 세상은 부유한 사람들의 자산을 탈취(奪取)하여 평준화하는 것으로는 절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왕 나온 김에 한 발 더 나가 보지요.

자본주의의 태생과 함께 발생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가난한 사람들이 자주적으로 자립하는 연대 조직으로 협동조합을 구상하고 실천했던 로버트 오웬은 사업에 성공한 부자(富者)였습니다.

물론 여러 사정으로 그의 이상이 당시에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지만, 나는 보다 새롭고 풍부해진 모습으로 추구되어야 할 이상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협동조합 등을 통해 시장에 당당히 진출하고, 더 나아가 상당한 규모와 생산력을 갖춘 중견 기업들이 노사 관계를 변화시켜 협동기업으로 전환한다는 소식들이 들려오면, ‘부드럽고 즐거운 우리 시대의 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자본주의가 평화적으로 무리 없이 인류의 생존과 행복을 위한 방향으로 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가슴 설레는 꿈을 어디선가 시작해 보지 않으시렵니까! (IPKU 기고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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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곡 인문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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