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의 옛 이름은 콘스탄티노폴리스(콘스탄티노플)였다.
이 도시에는 소피아성당이 있다.
소피아 성당
이는 원래 동로마 시절 기독교인 정교회의 성당이었다.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1세의 아들인 콘스탄티누스 2세에 의해 건립된 이 대성당은 지금 이슬람 사원이 돼 있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오스만제국의 술탄 메흐메드 2세는 이 정교회 성당을 파괴하거나 불태우지 않고 그냥 이슬람의 모스크로 사용하기로 했다.
건물에 설치돼 있던 십자가를 떼어내고 성화(Icon)는 회칠해 가렸다.
그리고 미나렛(Minaret)이라는 네 개의 첨탑을 세워 이슬람의 사원으로 만들었다.
1923년 터키 공화국이 수립됐고 서방 기독교 국가들의 요청에 따라 소피아성당의 벽화를 비롯한 기독교 유산이 차례로 복원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예배당이 아닌 박물관이 되었지만 소피아성당의 공간에는 정복이 아닌 공존의 기운이 관광객에게 무언의 교훈을 주고 있다.
술탄 메흐메드 2세는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후 “그리스도인이 믿는 하나님은 없다. 알라만이 존재할 뿐이다”라고 선언했다.
이렇게 ‘복음’의 카테고리에서는 전쟁과 파괴와 살육이 있을 뿐이다.
그런 ‘지우기’ 정신으로는 소피아성당이 파괴되고 무너져야 한다.
그러나 메흐메드 2세는 ‘문화’의 카테고리를 구분할 줄 알았다.
‘지우기’가 아닌 ‘덮어쓰기’로 공존의 역사를 창출한 것이다.
성당의 DNA를 살려 이슬람 사원으로 생명을 이어가게 한 것이다.
근본주의화 돼버린 우리 한국교회의 지금 신앙 형태라면 어떠했을까.
아마도 소피아성당은 살아남지 못하고 잿더미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파괴하고 죽이는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아는 ‘지우기’ 마인드로는 ‘문화’의 가치를 살려낼 수 없다.
본래 소피아성당의 자리는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 다른 이교도의 예배당이 있던 곳이었다.
당시 기독교는 이교도의 터전에 ‘덮어쓰기’의 정신으로 성당을 세웠다.
그리고 성당은 다시 모스크가 되었고 이제는 박물관이 되어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 한국교회 역사에서도 읽을 수 있다.
옛날 선교사들이 선호하던 교회당 터는 서낭당이 있던 언덕이었다.
옛 교회들이 언덕에 많이 위치한 이유는 그곳이 서낭당 터였기 때문이다.
선교사들은 귀신을 섬기던 서낭당 터에 왜 교회를 세웠을까.
차라리 그곳을 불사르고 파괴하고 초토화해야 하지 않았을까.
아니다. 교회당은 ‘복음’이 아니라 ‘문화’이기에 ‘지우기’가 아닌 ‘덮어쓰기’로 기독교 문화의 영역을 확장해야 한다.
우리는 성탄절을 12월 25일로 지키고 있다.
이것은 로마의 태양신 축제의 날을 그리스도 축제의 날로 바꾼 것이다.
즉 로마의 이교도 축일인 동지절(冬至節)을 성탄절로 의미를 전환한 것이다.
동지는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의 시작이므로 AD 274년 로마의 군인 황제 아우렐리아누스는 12월 25일을 ‘정복되지 않는 태양의 축일’(Dies Natalis Solis Invicti)로 제정, 공포했다.
이 ‘솔 인빅투스(Sol Invictus)’ 축일인 12월 25일을 기독교가 공인한 후인 4세기 중반부터 로마교회는 성탄절로 공식화했다.
4세기 기독교인은 왜 로마의 태양신 축일인 12월 25일을 성탄절로 ‘덮어쓰기’ 했을까.
왜 지워버려야 할 그날을 그리스도의 축일로 의미 전환을 했을까.
우리보다 무지해서도 아니요 거룩하지 못해서도 아니다.
그들은 ‘지우기’가 아닌 ‘덮어쓰기’로 새 역사를 창출했다.
그리하여 12월 25일을 온 세계의 성탄절로 만든 것이다.
세상을 복음화하는 첩경은 문화적 ‘덮어쓰기’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문성모 목사(한국찬송가개발원장)
더미션(https://www.themission.co.kr)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