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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도신경 64 화 ★ 손준기의 과거

wy 0 2019.07.10

 

조니워커블루.jpg

 

이세벨의 VIP 손님인 정여사는 조니워커 블루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

 

그녀는 스카치에 물을 타지 않고 '온더락스'를 즐기는, 여자로서는 드물게 보는 술꾼이었다.

 

정여사는 부천시 중심가의 작은 백화점을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았는데 지하 식당가에서 일식당을 직접 운영하고 있었다.

 

60이 다 된 나이에도 몸매가 30대 같지만 성형수술을 많이 해서 볼이 새끼 여우 같이 당겨져 있었다.

 

그녀는 S호텔 헬스클럽에서 지우스를 처음 본 순간 솟구치는 삶의 의욕을 느꼈다.

 

개인 트레이너로 몇 차례 배운 후 그의 안내로 이세벨을 알게 되었다.

 

“지코치, 얼음 한 덩이만 더 넣어줘.”

 

정여사의 민감한 혀는 스카치가 얼음과 섞이며 알맞게 녹는 때를 정확히 안다.

 

온더락스 스카치 잔을 크게 돌리는 그녀의 손길이 오늘따라 얼음 녹는 속도가 느린 것을 보채는 성싶었다.

 

지우스가 투명한 플라스틱 집게로 얼음 통에서 동그란 얼음을 집어서 그녀의 스카치 잔에 퐁당 떨어뜨렸다.

 

진한 호박색 액체 속으로 몇 줄기 길고 연한 실크의 파장이 피어 올랐다.

 

지우스는 이세벨의 윤마담에게 매우 귀중한 존재였다.                                                                                                                                                                                    

A급의 호스트일뿐 아니라 헬스클럽에서 가르치는 돈 많은 여성들을 손님으로 데려오는 일석이조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지우스라는 이름도 윤마담이 그리스 최고의 신 제우스를 생각하고 지어준 이름이다.

 

본명인 손준기도 재미있지만 아무래도 이런 직종에서 일하기에는 가명이 편리하고 말썽이 없다.

 

지우스의 유일한 문제점은 너무 성격이 직선적이라 자신을 무시하는 손님들에게 화를 참지 못하는 것인데 돈 많은 중년 여성들은 이런 성격을 오히려 남성답다며 좋아했다.

 

반년 전 윤마담이 S 호텔 헬스클럽에서 지우스를 처음 봤을 때 잘 키우면 5년은 쓸만하다고 생각 했다.

 

처음에는 이세벨에서 일하는 것을 꺼려했지만 3천만원을 현찰로 주면서 1년만 해보라는 그녀의 권유에 준기는 1주일에 한 번 나가는 조건으로 수락했다.

 

한 번이 3-4번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윤마담에게 털어놓은 지우스의 과거는 불우했다.

 

그의 기억은 고아원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유일한 혈육으로 이모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녀는 한 달에 한 번은 꼭 고아원에 찾아와서 어린 소년을 돌보아 주었다.

 

지우스의 생일이나 x-mas 같은 때는 선물을 보내왔다.

 

그가 12살이 된 후부터 이모가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그런 시간이 반 년이 지나자 지우스는 이모를 만나기 위해 어느 날 고아원을 몰래 빠져 나와 그녀가 있는 곳을 찾아갔다.

 

작년 생일 선물로 받은 소포에 적혀 있는 주소가 유일한 단서였다.

 

그가 물어 물어 찾아간 곳은 유성 온천 입구에 있는 작은 여관이었고, 거기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준기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가 들은 소식은 너무나 어이없고 슬펐는데 반년 전 이모가 동네 개에게 물려 이틀 만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동안 이모라고 알고 있던 여자가 사실은 엄마였고, 준기의 아버지는 당시 집권당의 3선 국회의원 김모씨라는 것이었다.

 

명문대학 비서학과을 나온 이모, 아니 엄마는 10여년 전 국회의원 김모씨의 여비서로 근무했었고 임신한 사실을 알고서는 조용히 그만두었다.

 

엄마는 때가 되면 김의원이 준기를 아들로 받아들인다는 약속을 철석같이 믿었다.

 

김모의원은 몇 년이 지나도 엄마를 부르기는커녕 유명 여배우 김모씨와 스캔들을 일으켰고 그녀와의 사이에 딸이 있다는 소문까지 들렸다.

 

김의원으로부터 양육비가 끊기자 엄마는 여관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려나갔고, 자신의 비밀을 같이 일하는 아줌마에게 털어놨지만 아들인 준기가 어느 고아원에 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찾아왔다며 준기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지우스는 이 후의 일에 대해서는 별로 말이 없었다.

 

몇 년 전 김모 의원을 찾아가서 친자 소송을 했다는 언급을 했지만 그 결과는 말하지 않았다.

 

“윤마담, 요즘 지코치가 아무래도 애인이 생긴 것 같아.

 

헬스클럽도 가끔 빠지고 좀 이상해.

 

어머!  목에 이 반창고는 뭐야?”

 

정여사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지우스의 목을 손가락으로 살짝 만지며 물었다. 

 

“칼에 찔렸습니다.”

 

“칼이 아니고 여자 드라큐라겠지 ㅎㅎ."

 

두 사람의 대화에 윤마담이 끼어들었다.

 

“지우스는 애인 없어요. 

 

여기서 일하는 동안은 그건 규칙이에요.”

 

대답은 이렇게 하면서도 윤마담은 속으로 불안했다.

 

지우스가 얼마 전 자신의 본명을 아는 기자가 찾아온 후부터 결근을 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지코치, 연말에는 뭐 할거야?” 

 

지우스가 얼른 답변을 안 하자 정여사가 온더락스 잔을 오른 손으로 살살 돌리며 얼음이 녹는 속도를 재촉했다.

 

“친구하고 교회에 갈 것 같습니다.”

 

정여사가 과장된 동작으로 울상을 지으며 윤마담을 쳐다보았다.

 

“그거 봐, 애인이 생겼다니까, 사실은 윤마담에게도 비밀이었는데 지코치를 우리 백화점 식품부 매니저로 오라고 했어.

 

여기서 마음에 안 맞는 이상한 여자들에게 시달리며 상처 받느니, 지금부터라도 새 생활을 시작하면 좋잖아.

 

윤마담만 양해하면 그렇게 할 거 같은데..”


"흐흐, 지코치를 아주 들어 앉힐 생각이시네요. 그럼 우리 가게는 어떡하고요?”

 

“그거야 내가 적절히 배상을 해 줘야지. 그런 걱정은 말고 지코치를 놓아줘요.”

 

정여사가 조니워커 블루 병을 두 손으로 잡고 윤마담의 잔에 가뜩 부어주었다.

 

“내가 지코치를 백화점으로 데려오려는 건 일을 좀 배우게 한 다음에 분식집이나 빵집 하나를  떼어 줄려고 그래.

 

어차피 아는 사람 줄 바에는 내가 예뻐하는 사람 줘야지."

 

정여사가 얼음이 적당히 녹은 술잔을 들어 한 입에 반쯤 마셨다.

 

“내가 아직 젊어 보이지만  내년이면 벌써 60이야..

 

요즘 자주 느끼는 건데 인생은 꿈속의 드라마 같아.

 

미국의 어느 유명한 소설가가 ‘오리진’이라는 소설을 썼는데, 책의 주제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느냐’ 라는 거래요.

 

그건 최희준이 ‘하숙생’에서 벌써 노래 한 거잖아.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느냐~’

 

그 최희준도 얼마 전 갑자기 갔지만..”

 

눈을 지그시 감고 정여사가 하숙생을 반쯤 부르는 동안 지우스가 술잔에 스카치를 더 따랐다.

 

“사실은 나도 12월 31일이 마침 일요일이라 교회를 갈까 해.

 

그 동안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를 회개해야지.

 

또 지우스가 내년에는 우리 백화점으로 오게 해달라고 두 손 모아 빌어야지.”

 

정여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손중기의 입에서 나온 말이 두 여자를 놀라게 했다.

 

“제가 내년 봄에 결혼 합니다. 

 

오늘이 이세벨도 마지막이고.. 정여사님도 그 동안 감사했어예.

 

죄송합니다.  모두 하나님의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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