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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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도신경 63 화 ★ 목사였던 평신도

wy 0 2019.07.06

 

 

한 시간 후 방주는 장충동 서라벌 호텔 로비로 들어서고 있었다.

 

올해가 며칠 밖에 남지 않았는데 연말 분위기는 별로 나지 않았다.

 

2층 발코니 벽면에는 “ Merry x-mas & Happy New Year!” 라는 글씨가 은박지로 길게 붙어 있었다.

 

로비 한가운데  초록색 잣나무 X- mas tree가 세워져 있는데 화려하게 포장된 선물 박스들과 크고 작은 은종들이 주위에 놓여 있었다.

 

노아의 방주가 잣나무로 만들어진 것도 아느냐면서 놀라는 고무혁의 모습이 떠 올랐다.

 

연초에는 김대표 면회를 가서 무혁이 좋아하는 김과 사과를 넣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넓은 창문이 있는 구석 쪽으로 가서 앉으니 곧 여종업원이 상냥하게 다가와서 주문을 받는다.

 

기다리는 사람이 오면 같이 시키겠다고 하니 공손히 인사를 하고 물러갔다.

 

창문으로 올려다 보는 하늘은 눈이 오려는지 회색 빛이 조금씩 진해지고 있었다.

 

구수한 원두커피 냄새와 영화 러브스토리 음악이 방주의 마음을 포근하게 만들었다.

 

잠시 후 입구로 들어오는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방주가 가볍게 손을 들어 위치를 알렸고 청바지에 노란색 캐시미어 스웨터를 입은 선희가 밝은 미소로 다가왔다.

 

“목사님, 고생 많으셨지요. 건강은 어떠세요?”

 

“선희가 보기에는 어때?”

 

방주가 상체를 곧게 피고 얼굴을 살짝 들어 보였다.

 

“잠시 기도원에 있다가 나오신 분 같아요.”

 

“공짜로 재워주고 삼시 세끼 먹여주니까 기도원보다 낫지.ㅎㅎ”

 

재소자 한 사람을 가두어 놓는 비용이 한 달에 2백만원이래.

 

전국의 수감자가 약 5만명이니까 2백만원 X 5만은 천억이지.  한 달에 천억..

 

적지 않은 금액인데 강력범인 경우는 반 이상이 재범이라고 하네.”

 

“재범율이 그렇게 높군요.”

 

방주가 뭐라고 대답을 하려는데 조금 전 왔던 종업원이 메뉴판을 들고 옆으로 왔다.

 

선희가 아메리카노 커피와 치즈케익을 주문했고 방주는 카푸치노를 시켰다.

 

“그 동안 나 때문에 마음 고생이 많았을텐데…”

 

“아니에요. 중기 오빠가 저도 모르게 고발 한 것을 나중에 알았는데 너무 늦었어요.”

 

“나도 알고 있었어..그 친구가 성격이 급하고 너무 고지식한 면이 있어서...”

 

“네. 그렇지만 제가 그날 목사님과 만난 이야기를 제대로 못해서 이런 사달이 난 거에요..

 

준기 오빠를 좀 멀리 하고 싶어서.. 목사님이 저를 좋아한다는 말을 한다는 게....”

 

선희가 살짝 숨을 고른 후 계속 말했다.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교회 청년부에서 목사님을 알았다는 이야기를 안 한 것이 후회가 되요.

 

아무튼 그 날 베로나에서 저에게 하신 말씀은 아직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어요.

 

목사님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으시지요? “  

 

선희의 얼굴이 살짝 붉어지고 짧은 침묵이 흘렀다.

 

두 사람의 분위기가 어색한지 종업원이 얼른 차를 테이블 위에 놓고 사라졌다.

 

방주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 했고 잠시 후 정면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물론이지.  내가 선희에게 프로포즈 한 건 하나님의 뜻이니까..

 

곧 내 생각을 아버지께 말씀 드릴 거야. 걱정 하지마”

 

그녀가 커피잔을 들었다가 다시 놓았다.

 

“우리 때문에 아버님이 너무 충격을 받으셨나 봐요.

 

죄송해서 어떡해요.”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지시겠지...

 

그보다 서준에게 미안해.. 내가 너무 딱 잡아떼어서...

 

우리 결혼 발표하기 전에는 이실직고를 해야지.”

 

“네, 그 동안 최기자님 덕분에 수습이 잘 되었고, 엄마에 대한 기사까지 크게 내주셔서 참 고마웠어요.”

 

선희가 치즈 케이크의 뾰족한 부분을 잘라 방주에게 건네주었다.

 

“지금 문교수님 만나고 오는 길인데 결혼 주례 부탁은 못 했어.

 

곧 영국에 가셨다가 2-3주 후에 오신다네. ”

 

“네.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중기 오빠가 계속 나를 감시하고 있어요.”

 

커피숍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키 작은 소나무들이 하얗게 눈으로 덥히기 시작했다.

 

잠깐 대화를 나누는 사이 소리 없이 푹푹 눈이 내린 것이다.

 

“나중에 내가 만나서 잘 설득을 해야지.

 

2-3 달 안에 무죄가 확정 될 테니까 그 때까지만 기다리면 돼.

 

선희와 배다른 형제인데.. 말이 안되지.”

 

그녀가 말없이 케이크의 뒷부분을 포크로 찍어서 입에 넣었다.

 

“12/31일 Y대학 교회에서 문목사님이 마지막 설교를 하시는데 같이 가서 인사 드리면 좋겠어.”

 

선희가 고개를 끄덕였고 방주가 코트 주머니에서 작은 박스를 꺼내어 그녀 쪽으로 밀었다.

 

“어머, 이게 뭐에요?  크리스마스도 지났는데.”

 

“산타가 올해는 좀 늦게 왔어. 한 번 열어 봐.”

 

리본을 풀고 조심스레 포장지를 벗긴 후 뚜껑을 여니 하얀 십자가 목걸이가, 볼록 솟은 고급 자주색 천 위에 누워있었다.

 

선희가 목걸이를 잡아 올려 자세히 보니 십자가 세로 대에 나사머리 모양의 카르티에 마크가 위아래로 앙증맞게 새겨져 있었다.

 

“너무 예뻐요. 감사합니다.”

 

“목에 한 번 걸어 봐. 잘 어울리나 봐야지.”

 

선희가 손을 목 뒤로 돌려서 익숙하게 목걸이를 걸었다.

 

그녀의 노란 스웨타 위에 앉은 하얀 십자가를 방주가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내가 그 동안 하던 십자가야.

 

나는 이제 목사라는 직업에서 벗어났어. “

 

“어머, 그럼 무죄가 된 후에도 사역은 안 하실 거에요?”

 

“그래야지. 이 역시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해..”

 

선희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목에 걸린 십자가를 내려다 보았다.

 

“스님들은 환속하는 분들도 많은데 목사님도 다시 평신도로 돌아 갈 수 있어야지.

 

나는 목사였던 평신도로서, 목사로서는 차마 못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커피숍의 유리창 밖으로는 눈이 펑펑 내리면서 회색 하늘이 한결 밝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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