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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도신경 3화 ★ 음녀의 집

wy 0 2018.11.21

 

3) 음녀의 집  ▶

 

 서준은 반쯤 남은 미지근한 거피를 한 모금 마시며 방주가 했던 말을 생각 해보았다.

 

개신교의 신뢰가 정직과 연관된 문제이며, 새벽기도를 나오다가 불행을 당한 신도에게 미안하다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뜻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

 

치료를 위해 새벽에 병원에 오다가 교통사고가 나는 경우는 병원에서 사과를 하지 않는다.

 

본인의 과실이거나 운이 나쁜 것으로 치부하는데 교회도 마찬가지 아닌가? .

 

방주는 개인적으로 미안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교회 전체의 문제로 삼는 것은 과민한 반응이라 느껴졌다.

 

신문에 별로 나지는 않으나 새벽기도를 가다가 당하는 교통사고는 종종 발생했고 일요일 예배를 보러 가면서 나는 사고는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런 것까지 목사님들이 사과를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기도원 가다가 일어나는 사고는 왜 없겠는가. 

하지만 또 마음 한구석에 방주의 말이 옳다는 느낌이 있었다.

 

서준은 병원과 교회의 다른 점을 생각해 보았다. 

무엇이 병원에 오다가 나는 사고와 새벽기도의 사고를 다르게 만드는 것인가?

 

혹시 새벽기도를 하는 교회에는 그들이 주장하는 하늘에 계신 전능한 하나님이 없는 것이고, 병원에는 항상 의사나 간호사가 있는 점이 다른 것인가..

 

말하자면 오래 전부터 목사님들은 사실 하나님이 새벽기도를 나온다고 복을 주시는 분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교회의 발전과 운영을 위해 새벽기도를 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적어도 새벽기도가 집에서 드리는 기도보다 하나님이 더 잘 들으신다는 확신이 있는가?.

 

새벽기도는 전세계적으로 한국 기독교에만 있는 현상인데 속으로는 효과를 별로 믿지 않으면서 오직 교회를 위한 새벽 모임이라면, 방주가 지적한 인간의 정직과 진정성의 문제가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서준은 초등학교 2-3학년때 어머니를 따라 새벽기도를 나갔던 일이 생각났다.

 

영하 10도가 넘는  추운 겨울 새벽 4시반, 조용히 집에서 나와 어두컴컴한 골목길을 15분쯤 걸어내려 가면 하얀 건물에 십자가가 높이 달려 있는 새빛교회에 도착했다.

 

어머니는 서준의 얼굴을 당신의 두터운 마후라로 머리부터 덮어서 눈만 나오게 감싸 주셨다.

 

영화 벤허에서 유대 여인들이 얼굴을 가리고 험한 계곡을 다니던 장면과 비슷했다. 

마후라는 칼날같이 차가운 겨울 바람으로부터 얼굴을 보호하는 든든한 방패가 되었다.

 

눈이라도 내린 날에는 꽁꽁 얼은 길바닥이 매우 미끄러웠고 사람의 모습은 교회 입구 가까이에서나 볼 수 있었다.

 

서준이 먼저 어머니께 새벽기도를 한 번 따라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왜 그렇게 한겨울 이른 새벽, 어두운 길을 나서서 교회를 가시는지 또 새벽기도 예배는 어떻게 진행 되는지 궁금했다.

 

6시 반쯤 집으로 돌아오시는 어머니의 눈이 기도하면서 많이 우신 듯 부어있는 것도 걱정이었다.

 

어머니는 서준에게 졸리면 안가도 된다고 하면서도 내심 기특한지 한달 정도를 막내 아들의 작은 손을 붙잡고 새벽기도를 다니셨다.

 

교회 작은 예배당에 들어가면 어머니는 항상 뒤에서 3번째 장의자에 앉아서 기도를 시작하셨다. 

눈을 살짝 뜨고 옆을 보면 어머니는 무언가 간곡히 간구하는 게 있으신 것 같았다.

 

‘주여, 아버지' 하는 소리가 작게 들리지만 기도의 내용은 짐작하기 어려웠고 간혹 ‘용서’ ‘회개’ 같은 단어가 섞여 나왔다.

 

어머니가 평소에 서준에게 자주 언급하시던 성경 구절은 구약 '잠언' 말씀이었다.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 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라는 말씀과 ‘지혜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의 왼손에는 부귀가 있다’라는 구절은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직 어린 서준에게 조금 당황스러운 구절도 말씀하셨다.

 

'지혜가 또 너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계집에게서 구원하리니 음녀에게 빠지지 말라 

그녀의 입술은 꿀같이 달콤하지만 결국엔 지옥에 간다' 대강 이런 내용이었는데 어머니가 이 말씀을 하실 때는 은근히 노기까지 띄어서 음녀가 무슨 뜻인지 물어보지도 못했고 여하튼 나쁜 여자를 조심하라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서준은 어머니 옆에서 손을 모아 같이 기도를 했다.

 

'어머니가 무슨 기도를 저렇게 열심히 하시는지 모르지만 대단히 중요한 일 같으니 어머니의 기도를 하나님이 꼭 들어주세요.'라는 기도였다.

 

이렇게 각자 10분쯤 기도를 하고 있으면 목사님이 들어오셔서 비교적 짧은 설교를 하셨다.

 

이때쯤이면 늦게 오는 사람들까지 합쳐서 3-40명이 좌석의 반을 채웠다.

 

목사님의 설교와 간단한 기도가 끝나면 서준이 싫어하는 통성기도 시간인데, 모두 큰 소리로 자신의 소원을 간구하는 기도를 하나님께 올렸다.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하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면 방언을 하는 사람들의 혀 짧은 주문 같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이 때도 큰 소리로 기도를 하지 않아서 내용을 들을 수 없었고 어차피 예배당을 울리는 시끄러운 통성기도 소리로 옆 사람과 대화 자체가 불가능 했다.

 

이런 시끄러운 시간을 20분쯤 견디면 한 두 사람씩 일어나서 예배당을 나가기 시작한다. 

이때쯤이면 서준은 어머니가 빨리 일어나셨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6시쯤 예배당 문을 나와도 아직 사방이 깜깜했지만 추위는 조금 나아져서 마후라를 안하고 집으로 향할 때가 많았고 이른 아침 출근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어머니가 기도에서 행동으로 방법을 옮긴 것은 서준이 새벽기도를 슬금슬금 빠지기 시작 할 무렵이었다.

 

아직 추위가 한참이던 어느 겨울 새벽, 어머니는 서준을 깨워서 같이 나가자고 하셨다.

 

마후라로 무장하고 걸어 내려갔지만 교회로 들어가지 않고 큰 길까지 나가서 택시를 잡으셨다.

 

찬송가와 성경책이 든 어머니의 회색가방은 그날 따라 유난히 무거워 보였다.

 

여간해서는 택시를 안 타시는 살림꾼인 어머니에게 오늘은 다른 교회 가시냐고 물었다.

 

고개만 가로젓는 어머니의 얼굴이 심각해서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무언가 막중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 듯한 예감과 어머니가 어린 나를 참여시켰다는 자부심에 은근히 가슴이 설레었다.

 

새벽 택시는 찬 공기를 가르고 거침없이 달려서 한강 변 주택가로 접어들었다.

 

손에 든 작은 지도를 보며 장소를 확인한 어머니가 어느 골목 안쪽에 택시를 멈추었다.

 

새벽 공기는 하얗고 차가웠지만 상쾌한 느낌이 들었고, 골목 저편에 구둣방 아저씨가 벌써 점포 셔터를 올리고 있었다. 


 어슴푸레 동이 트기 시작했고, 어머니는 성큼성큼 골목 집들의 주소를 확인하며 어느 대문이 빨간 집 앞에 멈추어 섰다

 

그러고는 가방을 열어서 신문지 크기의 하얀 종이를 몇 장 꺼내어 대문에 붙이기 시작했는데 나도 옆에서 얼른 거들었다.

 

반듯이 잘 보이게 붙인 후 한 걸음 떨어져서 글자를 읽어보니 '이 집은 음녀의 집, 첩 년의 집이다'라는 글씨가 빨갛게 쓰여 있었다.

 

벽에도 몇 장 붙인 후 어머니는 가방에서 작은 돌멩이를 꺼내 집을 향해 던지기 시작했고 내 손에도 한 개 쥐어 주셨다.

 

약간 걱정은 되었지만 나는 학교 운동장에서 야구하던 솜씨를 발휘해서 열심히 몇 개 던졌다.

 

잠시 후 와장창~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아래 층 어느 방에 불이 켜지는 순간, 우리는 황급히 골목길을 빠져 나와 철수하였다. 

 

 날이 훤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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