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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도신경 41 화 ★ 마호타이 돌리기

wy 0 2019.04.20

 

마호타이.jpg

 

 이영숙차장이 6시에 퇴근을 하자마자 서준은 약속장소로 향했다.

 

시간이 넉넉해서 버스를 탔는데 야래향의 위치를 착각하여 한 정거장 전에서 잘 못 내리는 바람에 7시10분에 도착했다.

 

둥그런 중국식 식당 입구로 들어가니 넓은 홀에 벌써 손님이 거의 다 찼고 허변의 모습은 언뜻 보이지 않았다.

 

탕수육의 달콤하고 기름진 냄새가 식욕을 자극 하는데 긴 치마가 허벅지까지 길게 타진 중국 옷을 입은 종업원이 다가와서 상냥하게 말했다.

 

“예약이 없으시면 죄송하지만 1시간 이후에 자리가 나겠습니다.”

 

“혹시 허일만 변호사라고 예약이 없나요?”

 

“아, 허변호사님 예약된 방은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긴 복도 한 쪽 끝에 있는 방문의 일자형 손잡이를 내리자 가벼운 금속성 소리가 나면서 문이 열렸다.

 

안에는 크고 둥그런 식탁 의자에 벌써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조금 늦었어요. 미안합니다.”

 

“변호사보다 기자가 더 바쁜데 10분 늦었으면 양호한 거지.

 

여기 우리 선배이신 김승태 변호사님이네.”

 

허변이 서준에게 김변을 먼저 소개했다.

 

김승태 변호사는 곱슬머리에 눈이 서글서글한 호남형인데 그의 얼굴에서 선희의 모습은 별로 찾을 수 없었다.

 

만나서 반갑다는 인사를 한 후 김승태가 허변을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허변은 일만 열심히 하다 보니 이런 때 소개는 레이디 퍼스트인걸 모르네.”

 

“아닙니다. 선배님이 직접 우리 로펌의 자랑, 홍수진 변호사를 소개하셔야지요.”

 

“아 그런 깊은 뜻이 있었구만, 그럼 내가 소개하지.

 

이 쪽은 우리 로펌의 디바, 홍수진 변호사님, 미국 버클리 대학에서 공부했고 캘리포니아 검사보 경력도 있으십니다.

 

베이지색 원피스가 깔끔하게 어울리는 그녀는 뛰어난 미모는 아니지만 갈색 피부에 건강미가 돋보였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고 홍변이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데 귀밑까지 단정한 단발머리가 찰랑거렸다.

 

김승태가 탁자 위에 있는 마호타이를 원탁으로 돌리며 한 잔씩 따르기 시작했다.

 

독하면서도 산뜻한 귀리 향내가 방안을 진동했다.

 

 “마호타이 적폐를 한 입에 청산하자.”

 

건배를 제의한 김승태가 소주 잔보다 조금 큰 하얀 사기 잔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우리는 늘 그 시대의 중요한 손님이 원하는 구호를 외치며 건배했지.ㅎㅎ”

 

김변과 허변은 비운 잔을 턱 내려 놓았고 홍변은 입에 만 댄 채 눈썹을 찌푸렸다.

 

서준은 체면상 반 정도 마셨는데 독한 알코올이 식도를 짜릿하게 쓸어 내렸다.

 

“지금은 적폐청산이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뭐였나요?” 홍변의 질문을 허변이 받았다.

 

“그 때는 ‘창조경제를 위하여’ 를 주로 했지요.ㅎㅎ"

 

허변의 웃음이 끝나자 종업원이 메뉴판을 들고 들어왔다.

 

김승태가 메뉴판을 받지도 않고 샥스핀 수프, 해삼전복탕, 8품냉채를 단숨에 시켰다.

 

“요리부터 하고 나중에 짜장면이나 짬뽕을 시키지요.”

 

그 대목이 늘 갈등이지만.."

 

옆에 앉은 홍변이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한 때는 두 음식을 한 그릇에 칸을 나누어서 먹기도 했는데 그 것도 역시 뭔가 만족하지는 못했어요.

 

두 명의 애인과 동시에 데이트를 하면 느끼는 원초적인 불안감이랄까.ㅎㅎ”

 

허변이 얼굴에 비해 큰 둥그런 뿔 테 안경을 울리며 계속 말했다.

 

“오늘 식사는 우리 로펌 홍보활동의 일환으로, 언론사 관계자들과 회식을 하는 자리에 자네가 나온 거니까 비싼 요리 더 시켜도 돼. ㅎㅎ”

 

서준이 자신의 잔에 반 정도 남아있는 마호타이를 비우고 김변에게 돌리자 마자 김변의 빈잔이 다시 앞으로 왔다.

 

“중국 사람들의 역사적 발명품 중 이렇게 원탁으로 돌아가는 식탁이 제일 대단해.”

 

김변이 원샷을 하면서 말했다.

 

서준은 속이 쓰려서 계속 마시기가 어려운데 마침 방문이 열리며 샥스핀 수프가 들어왔다.

 

잠시 조용한 가운데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후룩, 쩝 소리만 간간히 들렸다.

 

홍변과 눈이 살짝 마주친 후 서준이 입을 열었다.

 

“LA에서는 오래 사셨나요? 요즘 TV에 산불이 대단하던데요.”

 

서준이 앞에 있는 빈 잔을 허변에게 돌리며 시선은 홍변에게 고정했다.

 

“국민학교 아니 초등학교 1학년 때 이민 갔으니까 20년 이상 살았지요.

 

산불 난 곳은 제가 잘 알아요. 벨 에어라는 부촌인데 UCLA 바로 옆 동네에요.”

 

홍변이 서준의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경쾌하게 대답했다.

 

“어려서 가셨는데 한국 말을 너무 잘 하시네요.”

 

평범한 칭찬에 그녀가 활짝 웃었다.

 

“어려서부터 LA 한인교회를 다녔거든요.

 

저하고 같은 나이에 이민 왔지만 교회에 안 다닌 친구들은 한국말이 서툴러요. ㅎㅎ”

 

허변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면서 끼어들었다.

 

“홍변은 스패니쉬도 수준급이야.

 

나중에 노래 방에서 '베사메무쵸'를 부르면 그 노래 가사가 막 몸으로 느껴져서 정신 차려야 해.

그 노래가 kiss me much라는 뜻이잖아.”

 

허변이 시선을 김변으로 옮기며 계속 말했다.

 

“김 선배님, 두 사람을 이대로 놔두면 곧 둘이서 노래방으로 갈 것 같으니까 이제 그 이야기를 잠깐 하시지요.”

 

허변이 안경을 올리며 김승태에게 말했다.

 

서준은 오늘의 자리가 역시 단순히 소개팅은 아니었구나 싶으면서 약간 긴장이 되었다.

 

김변이 막 입을 열려는데 방문이 열리며 노란 중국 옷을 입은 여종업원이 큰 접시의 8품 냉채를 탁자 중앙에 올려 놓았다.

 

잘게 썬 노란 해파리와  반투명한 오리알, 기름기 많은 소고기 장조림과 옆으로 길게 반을 자른 큰 새우가 알록달록한 색깔을 뽐내며 골고루 섞여 있었다.

 

30cm는 되는 듯한 상아 색깔의 긴 젓가락으로 김변이 먼저 냉채 몇 가지를 고른 후 서준에게 젓가락을 돌렸다.

 

음식을 한 입 얼른 삼킨 후 김변이 입 근처를 손수건으로 닦았다.

 

“주간시사 정치부에 박민 기자라고 있지요?”

 

“네. 일간지에 2년 있다가 우리 회사로 온 기자입니다.”

 

“후배님이 잘 아시나?”

 

마호타이 한 잔을 쭉 들이키는 김승태의 양미간에 세로 주름이 깊게 새겨졌다.

 

“저는 개인적으로 친하지는 않고 우리 문화부 차장이 정치부에 오래 있어서 잘 알 겁니다."

 

 김변의 입 안에서 해파리 냉채가 꼬드득 소리를 내었다. 

 

“박당이가 우리 아버지 사생활을 몇 달 전부터 조사하고 다녀요.

 

최근에는 옛날 여자 관계까지 치사하게 들쑤시고 다니네.

 

어느 여대생이 아버지의 친 딸이라나 뭐라나..

 

몇 년 전 어떤 미친 놈이 친자소송을 했는데 DNA검사 결과 근거 없는 일로 밝혀진 적도 있었지...

 

미안하지만 우리 후배님이 좀 도와 줄 수 있을까?”

 

김승태가 자신의 빈 잔을 다시 서준의 앞으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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