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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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도신경 11 화 ★ 처음 만남

wy 0 2018.12.30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에는 청바지에 노란 티셔츠를 입은 젊은 여자가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저 학생이 선희입니까?”

 

관리인이 고개를 끄덕였고 서준이 급히 다가가서 15동으로 들어가려는 선희를 뒤에서 불렀다.

 

“오선희씨!”  뒤돌아 보는 그녀의 얼굴이 해맑게 느껴졌다.

 

“왜 본인이 안 나오고 다른 사람을 보냈어요?”

 

꾸짖는 듯한 서준의 말에 그녀의 어깨가 움츠려 들며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나하고 어디 가서 얘기 좀 해요.  이 근처 커피숍 어디 아는데 없나요?”

 

서준을 올려다 보며 잠시 망설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밖으로 좀 걸어나가면 스타벅스가 있어요.” 차분한 목소리였다.

 

두 사람이 아파트 단지를 나란히 걸으며 빠져 나갔다.

 

9월 초이지만 유난히 무덥던 여름이 일찍 끝나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날씨가 계속되었다. 


늘씬한 키에 다리가 길어 청바지가 어울리는 선희는 일급 패션 모델 같았고, 얼핏 누가 보면 다정한 연인이 저녁 산책을 하는 것으로 착각 할 듯 했다.

 

아무 말 없이 2-3분쯤 아파트 단지 건너편 상가 쪽으로 걸어나가니 초록색 스타벅스 마크가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 전 호텔에서 커피를 마셔서 그런지 서준의 코가 어디선가 풍기는 매콤한 냄새에 끌렸다.

 

떡볶이나 김밥을 파는 작은 가게를 막 지나친 것이다.

 

“저녁 안 했으면 커피 대신 떡볶이로 할까요?”

 

“네 저도 떡볶이 좋아해요.”  배시시 웃는 그녀의 볼에 작은 보조개가 생겼다.

 

일요일 저녁이라 손님은 몇 사람 없었고, 서준은 맥주 한 병과 매운 떡볶이 두 접시, 참치 김밥 2인분을 시켰다.

 

“날씨도 안 더운데 맥주보다 소주가 어때요?”

 

앞자리에 앉은 선희가 아무 스스럼 없이 말했다.

 

종업원에게 주문을 다시 하면서 서준은 오늘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방주와도 카페에서 맛있게 스파게티를 먹은 후 이런 사달을 일으킨 아이 아닌가.

 

'선희씨, 아무리 철이 없어도 그렇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위로금을 준 신목사를 성폭행범으로 신고할 수가 있나?'

 

대뜸 이런 말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꾹 참고 입안으로 삼켰다.

 

손준기에게 처음부터 너무 강하게 나간 것이 대화 자체를 결렬시켰으니 이번에는 천천히 부드럽게 접근하기로 했다.

 

“선희씨는 소주 한 병 정도 마시나요?”

 

“아니요, 반 병정도가 딱 좋아요.”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많이 마셔 본 여직원 같은 대답이었다.

 

종업원이 ‘처음처럼’을 탁자에 올려 놓았고 서준이 얼른 병을 잡아 선희의 잔에 부어주고 자신의 잔에 따랐다.

 

만나서 반갑다는 말을 할 상황도 아니어서 그냥 잔을 조금 들고 서로 눈을 마주친 후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선희는 눈을 꼭 감고 천천히 반쯤 마신 후 잔을 내려 놓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볶이가 하얀 접시에 담뿍 담겨서 먼저 나왔고 한 입 먹어보니 생각보다 맵지는 않았다.

 

어색한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선희였다.

 

“중기오빠 만나 보셨지요?”

 

“그 친구 영화 배우같이 잘 생겼는데 성질이 좀 급하더구만요.”

 

서준이 입술 가장자리에 묻은 고추장을 혀로 한 번씩 닦아 내었다.

 

“네, 사람은 좋은데 가끔 욱 할 때가 있어요.

 

사실 저는 고소는 생각도 안했는데… 준기오빠가 듣더니 제게 알리지도 않고…”

 

선희가 말을 끝내지 않은 채 남은 반 잔을 천천히 마시는 모습이 갑자기 가증스러웠다.

 

“아니 그럼 신목사가 선희양을 추행하려고 했다는게 사실이란 말이요?”

 

서준으로서는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며 한 말인데 그녀의 큰 눈이 금방 발개졌다.

 

그냥 놔두면 울음을 터뜨리며 뛰쳐나갈 듯 해서 한 마디 보탰다.

 

“내가 신목사와 20년 친구인데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한 말이에요.”

 

그녀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데 참치 김밥이 나왔다.

 

“김밥 위에 떡볶이 국물을 좀 부어서 드시면 맛 있어요.”

 

종업원의 친절한 설명이었다.

 

선희가 뛰쳐 나가는 대신 젓가락으로 천천히 김밥 하나를 집어서 입에 넣었다.

 

“지금 신목사가 구속되어 있는 것은 알지요?”

 

그녀가 서준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방주, 아니 신목사의 구속영장이 떨어진 결정적 이유가 뭐냐하면…” 

 

선희는 계속 고개를 숙이고 김밥을 우물우물 먹고 있었다.

 

“선희양에게 준 백만 원이에요. 

 

그러니까 돈을 주고 그런 짓을 하려 했다는 합리적 의심을 충족 시킨거지요.”

 

서준이 앞에 있는 그녀의 빈잔에 소주를 따라 주고 계속 말했다.

 

“하지만 그 돈은 신목사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위로금 아니었나요?”

 

“네 그건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의외로 선희가 선선히 수긍을 했다. 

 

어쩌면 일이 잘 풀릴 수 있겠다는 희망이 마음 한 구석에서 살짝 고개를 들며 목젖으로 넘어가는 소주맛이 부드러웠다.

 

“선희양이 그렇게 생각해 줘서 참 다행이네요.

 

신목사는 정말, 이런 말하면 어떨지 모르지만 요즘 보기 드문 순수한 목사입니다. “

 

선희가 앞에 있는 소주 잔을 들고 반쯤 마신 후 가벼운 한 숨을 내쉬었다.

 

“최선생님도 목사님이세요?”

 

“나는 '주간시사’ 기자에요.” 서준이 명함을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아 문화부 기자님이시군요. 저도 학교 졸업하고 신문사 기자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그게 꿈이었는데 꽃뱀 활동을 하고 있어서 못 한다는 느낌이 들었으나 지금 그것까지 질문 할 필요는 없었다.

 

“여하튼 지금 신목사가 하루 빨리 나오려면 당사자인 선희양의 도움이 꼭 필요해요.”

 

선희가 말 없이 휴대폰을 꺼내어 귀에 대는 바람에 서준의 말이 중단되었다.

 

“응, 오빠” 손준기의 전화인 것 같았고 은근히 긴장이 되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좌우로 몇 번 빠르게 움직인 후 서준을 살짝 바라 보았다.

 

“여기 잠깐 집 앞에서 친구 만나고 있어.” 

 

상대방이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는 듯 했고 서준은 입을 크게 벌리고 떡볶이를 한 개 통째로 집어 넣었다.

 

“응, 알았어.  내일 다시 상의 해.  오늘은 좀 늦을 것 같아.”

 

곧 전화를 끊은 선희가 먼저 말했다.

 

“준기 오빠에요. 최기자님 만난 이야기를 하네요.”

 

“그 사람이 신목사 아버지에게 합의금을 요구 한 사실을 알고 있지요?”

 

“어머, 무슨 합의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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