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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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기쁨2: 말없이 눈물을 글썽이며 가시밭길을 가는 사람아 내 어찌 그대의 추운 가슴을 ~

wy 0 2020.01.21

허청거리며 걸어가던 나는 얼마 가지 못해서 다시 토했다. 배낭을 내려놓으며 아우한테 먼저 가라고 했지만 투덜대던 아우는 내가 못미더웠던지 내 등을 더 세게 두드렸다. 얼마나 세게 두드렸으면 다리가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비는 아까보다 더 세차게 내렸다. 아니, 내리는 것이 아니라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비 맞을 힘도 없어서 아예 드러눕고 말았다

빗줄기가 사정없이 내 얼굴을 때렸다. 하지만 그 비가 아니었다면 나는 죽었을지도 모른다.

사정없이 쏟아지는 빗줄기에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썼다. 아우가 껌벅이는 내 눈을 보고는 조심스레 나를 일으켰다.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다시 허청거리며 걸었지만 또 얼마 가지 못해서 토하고 말았다. 저절로 누워버린 나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눈이 풀어졌다

가 나를 쏘아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헛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길에서 자면 어떡하느냐는 걱정의 목소리였다. 노인이 배낭을 내려놓고 무언가를 꺼내 뚜껑에 따르더니 그것을 내 입술에 대고 마시게 했다. 뭔가 정겨운 것이 내 목을 지나가고 있었다. 코냑이었다. 그것 때문인지 몰라도 얼마 뒤 나는 다시 일어나 걸었다

 

노인은 보이지 않았고 아우는 한숨을 푹푹 쉬며 내 뒤를 따라왔다비는 멎었지만 저체온증에 걸린 나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해 질무렵 연하천 산장이 눈에 들어왔다. 산장이 얼마나 반가웠으면 보자마자 쓰러지고 말았다. 아우가 산장 주인에게 무언가 얘기하자 산장 주인은 자기 방에 군불을 때기 시작했다. 산장 주인의 배려로 나는 따끈한 방에 누워 몸과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연하천 산장.jpg

 

한밤중에 눈을 떴다. 하루 종일 굶은 탓에 배가 고팠다. 하지만 고요를 깨트릴 수가 없었다. 아우는 잘 자고 있는지? 정신이 돌아온 나는 오늘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나에게 코냑을 준 노인이 떠올랐다.  문득 그 노인이 하느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나타나서 코냑을 먹이고 사라졌으니.

 

! 그것이 문제로다. 아니다, 술이 문제가 아니라 술을 마신 사람이 문제로다. 아무리 좋은 술이라도 날마다 마시면 몸이 망가지는 법이다. 술을 제대로 마시려면 먼저 술을 존경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셔야 하는데 나는 그 규칙을 어기고 내 몸을 학대하고 방치했다. 술을 먹여 사람을 죽게 만드는 어떤 영화 장면이 떠올랐다. 나도 나에게 술을 먹여 서서히 죽게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캄캄한 어둠 속에서 노여움으로 가득 찬 산신령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 같은 놈은 산에 오를 자격도 없으니 앞으로 산에 오지 마라.”

그 말을 듣고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앞으로는 노래를 주지 않겠다는 말이 아닌가. 그동안 산신령이 던져 주는 노래를 많이 받았는데 이 일을 어쩐담? 나는 산신령한테 잘못했다고 빌었다. 다시는 안 그럴 테니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산신령이 말했다.

 

하늘이 주신 몸을 학대하고 망가트렸으니 하늘을 배신한 거지. 제 몸도 사랑하지 못하는 놈이 무슨 노래를 만들겠다는 거야?”

혼란스러웠던 어둠이 지나가고 새벽이 밝아 왔다. 조심스레 산장 문을 나서는데 눈앞에 초록이 펼쳐졌다. 어제 내린 비로 온 산이 초록이 되고 내 마음도 초록으로 물든 것 같았다. ‘, 하늘은 이런 식으로 용서를 하는구나!’

 

얼마나 황홀한지 눈물이 절로 나왔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노래 하나가 날아와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어느새 나는 충전이 되었고 불호령을 내렸던 산신령도 나를 용서한 것 같았다.

사랑이면 다 용서가 되는 줄 알았던 나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내 몸 내가 다 망가트려 놓고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로 용서를 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어쩌면 우리 인생에서 사랑이라는 말은 필요 없는 말인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말에 속아서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늘은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는 것이다. 용서를 받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라. 얼마나 예쁘고 아름다운가. 하지만 하늘은 용서를 하고도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는다. 비에 씻긴 저 산의 초록을 보라. 누가 기뻐하는가. 하늘은 그저 푸를 뿐, 초록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기뻐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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